복숭아
선선한 바람에 괜히 기분이 설레오면서도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만 같아 조금은 묘해요.
한 여름 부엌에 모여있던 복숭아 생각에 그려본 그림, 아래에는 몇 해 전 추억의 우리 농산물 이야기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복숭아>란 글이에요. 오늘도 모두 수고 많으셨고, 예쁜 밤 되세요. 안녕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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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내 동생은 어릴 적 여름방학만 되면 엄마와 함께 고속버스를 탔다. 창밖으로 슥 하고 지나가는 나무들을 보는 게, 버스에서 먹는 천 원짜리 김밥 한 줄이 시골 외할머니 댁으로 가는 나름의 즐거움이었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외할머니 댁으로 가는 게 아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복숭아 과수원으로 바쁘게 또 버스를 타고 갔다. 엄청 많은 복숭아나무들이 모인 곳에서는 달고 향긋한 향기가 났다. 주름진 종이에 싸여진 커다란 복숭아들도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제 손 보다 조금 큰 목장갑을 끼고, 복숭아를 따기 시작했다. 아기 엉덩이를 닮은 복숭아는 아주 여리기 때문에 정말 아기 엉덩이처럼 조심스럽게 다뤄야했다. 나는 계속 허리가 굽으신 할아버지를 따라 다니면서 복숭아를 땄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 아이가 괜히 할아버지를 쫓아다니면서 귀찮게 해드린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 당시에는 내가 조금이라도 도우면 우리 할아버지의 허리가 더 이상 휘는 일은 없을 것 같았으니까...
노란 플라스틱 박스에 담아온 복숭아들은 근처에 있는 직판장에서 포장을 했다. 크기가 비슷한 것끼리 골라내는 일은 짝 맞추기 게임 같았다. 골라낸 복숭아들에게는 꽃 같은 보호 캡으로 옷을 입혀 주었고, 네모난 상자에 열을 맞춰서 넣었다. 박스 위에 비닐을 덮어주고, 판매자 명란에 할아버지 성함을 또박 또박 쓰는 게 포장 과정의 끝이었다. 나름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판단이 들면 나는 수돗가로 갔다. 팔 다리에 끈적하게 붙어 있는 복숭아털과 땀을 씻어 내면서 눈으로는 상처 난 복숭아들 중에 제일 예쁜 복숭아를 골랐다. 그리고 깨끗이 씻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새참 또한 복숭아인 것이다. 나는 아직도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도 그때만큼 맛있는 복숭아를 먹어본 적이 없다.
우리 외할아버지는 2년 전에, 우리 외할머니는 올해 여름에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는 복사꽃이 필 무렵에 눈이 시렸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집 근처 슈퍼 가판대에 나와있는 복숭아 상자를 보면 눈이 시렸다. 어릴 적 외가댁에 다녀오면 그날은 일기장이 빼곡했는데, 이제 내 일기장이 복숭아로 가득 차는 일은 거의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