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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글 Sep 19. 2022

인색한 범인

후렌치파이 살해 현장

지금 내 옆에는 후렌치파이를 까먹고 난 껍데기들이 후렌치파이 박스에서부터 점진적으로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다. 마치 지금 다 먹지 않으면 과자들이 다 도망이라도 갈 것이라 생각한 듯 폭발적으로 흡입한 후 급하게 내 급한 마음을 외면한 현장이다. 저 후렌치파이 껍질들은 1주일은 된 것 같고 1주일 동안 전시장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처럼 책상 위에 꼼짝도 않고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머리가 복잡할 때 오줌이 마려운 것처럼 단 것을 찾는다.

내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에 한몫하는 친근한 악당이 설탕이다. 단 것을 먹고 나면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 하지만 혀가 단 것을 맞이하는 그 순간의 평화일 뿐이고 진짜 내 마음 상태는 후렌치파이들이 집단 살해되어 있는 책상이 더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엉성함과 너저분함, 부분적으로 철두철미하면서 작은 것을 열렬하게 챙기는 내 비대칭 얼굴이 부끄러우면서도 자랑스럽다. 웃겨서 자랑스럽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이 미숙한 모습에 넌덜머리가 나는데 그때의 흔한 병증은 매우 인색해지고 쪼잔 해지며 예쁜 것들에 질투의 눈을 흘기는 것이다. 이 인색함은 내가 서른다섯이 넘어서야 깨닫게 된 (언젠가 엄마는 예전부터 나의 인색함을 다 알고 있었다는걸 눈치채고 경악했다.) 나의 치명적인 단점이지만 스스로에게 꽤 너그러운 나는 그래도 이걸 알게 된 게 어디냐며 정신승리를 한다. 인색하다는 건 사람에게 인색한 게 크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시간에 인색한 마음이 그 뿌리이다. 내 시간을 한 줌도 내어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 때 세상 모든 것에게 인색해진다. 인색한 상태가 지속되면 잠이 몰려온다.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는 않은데 또 시간을 어떻게 써야 될지는 계획이 없을 때 잠이 쏟아진다. 그리고 시간을 움켜쥐고 분배를 하지 못하니 작은 일에 시간을 쓰지 않는다. 그 결과 <후렌치파이 살해현장> 기획전시를 1주일 동안 책상 위에 올려 두고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나마 알맹이를 다 도둑맞아서 다행이다. 대학생 때 친구가 건네준 위로의 말이 기억이 난다. 

"넌 너저분한데 더럽지는 않아." 

나의 인색함을 알고도 남아준 나의 몇 안되는 친구들에게 후렌치파이를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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