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글 Sep 23. 2022

끝말잇기

손바닥과 손바닥 사이


어젯밤 자려고 알밤이랑 누웠는데

"자기 싫어 또 무서운 꿈 꿀까 봐."

"무슨 꿈 꿨는데?

"죽는 꿈. 죽기 싫어."


알밤이는 더 어렸을 때부터 죽기 싫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넌 걱정 안 해도 돼. 한참 남았어." (아 뒷말 붙이지 말걸) 역시나 "한참 뒤에는 죽어?" (그럼 사실대로 말할 수 없어서) "걱정 안 해도 돼."로 얼버무리는데 "만약 지구가 터지면?" 하고 또 물어보면 "지구는 절대 안 터져." 하고 일단 수비하고는 "혹시 지구가 터지면 저 옷장 안에 들어가 있으면 돼."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덧붙이니 "나는 지구 터질 때까지 살 거야. 지구가 터져도 옷장 안에 들어가서 살 거야." "그래 엄마도 너 똥 닦아줘야 되니까 같이 들어가자." 하며 원더 키디 같은 대화를 주고받고는 했다.


어제도 둘에서 누워 코를 파며 죽음에 대한 앞뒤 없는 끝말잇기를 시작했다. 자기 전이므로 나는 최대한 아름다운 죽음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양보할 수 없는 미션이 있었다. 오호라. 십자가가 만든 아름다운 발명품 '천국' 이 생각났다. 자신 있게 "죽어도 괜찮아. 죽으면 천국 간대."(그럼 빨리 죽고 싶다는 무시무시한 말을 할까 봐) "재밌게 살고 나면 더 재밌는 천국으로 간대." 하며 추가 토핑을 얹었더니 "천국 가기 싫어. 그냥 여기서 살래." (그러고 보니 혼자 가는 천국은 너무 낯설겠는데.) 그래서 "엄마 먼저 가 있을 테니까 나중에 와. 그럼 거기서도 손 잡고 자자." (말하고 나니 되려 내가 너무 슬프고 무서워지는 찰나에) "근데 엄마가 어떻게 알아?" (ㅋㅋㅋ) "엄마도 사실 안 죽어봐서 들은 이야기야. 사람들 다 죽음은 원래 다 이야기로만 들어서 아는 거야."(그러다가 내가 더 선호하는 힌두교 발명품 '환생'이 번뜩 생각나서) "아! 근데 죽고 나면 다시 태어날 수도 있대. 알밤이 말고 다른 모습으로 태어난대. 흙으로 태어날 수도 있고 바람으로 태어날 수도 있고..." 드디어 마음에 들었는지 " 알밤이는 곤충으로 태어날래." "무당벌레?" "응." "칠성 무당벌레?" "응." (아 성공했다 하고 있는데) "근데 흙으로는 어떻게 다시 태어나? 거기서 어떻게 살아? 어떻게 갑자기 흙으로 태어난다는 거야? 흙은 엄마가 없잖아." (이야기를 쥐어짜느라 허공에서 팔을 휘저으며) "그 있잖아. 흙은 나무 같은 게 썩어서 되는 거잖아...." (너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 거둬들이고) "그... 알밤이 너 이야기를 상상하면 그 이야기가 있어 없어?" ( 없다고 할까 봐 잘못 말했나 싶었는데) "있어. " (다행이다.) "그래. 이야기가 상상으로 살아있는 것처럼 흙에서도 상상으로 사는 거야." "말도 안 돼."(어쩔 수 없다. 엄마의 한계다.) "일단 한번 태어나면 상상할 수 있으니까 죽어서도 천국에 가든 다시 태어나든 어쨌든 영원히 사는 거야, 알밤이도 일단 태어났으니까 영원히 살 거야." 하며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아침밥 먹고 착한 표 받을 수 있으니 자야 된다고 서둘러 궁디팡팡해줬고 영원히 산다는 마지막 말에 그나마 안심이 됐는지 말도 안 된다며 몇 번 중얼거리다가 금방 잠이 들었다.  


그렇다. 언젠가는 나도 죽고 알밤이도 죽고 남편도 죽고 우리 어무니 아부지 동생 시어무니 시아부지 제부 제부 가족들 다 없어질 것이다.

편의상 자주 까먹고 사는 우리의 죽음을 기억해내니 꼭 잡은 알밤이와 나의 손 틈 그 작은 틈 사이로 모든 중요한 고민 사소한 고민이  우리 집 업소용 청소기의 맹렬한 흡입력으로 빨려 들어가고 구름 전등의 노란빛이 쨍해진다. 잠들기 직전이라 순간이 영원이지 하는 뻔한 말 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고, 다시 일어났는데도 그 말 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변명하고 싶다. 순간이 영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들이 읽어 준 앤 카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