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롤모델은 누구입니까?
순성장과 역성장
커피챗을 하다 보면 커리어 코칭을 주제로 대화를 자주 하게 된다. 본인의 커리어가 고민인 사람도 있고, 팀원들의 커리어 조언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람도 만난다. 비슷한 주제로 여러 번 이야기하다가 글로 정리해 본다.
순성장 vs. 역성장(Reverse Growth)
회사에서 쓰는 용어 중에 '역기획'이라는 단어가 있다. 역기획은 순기획의 반대말이다. 순기획은 예를 들자면 '지금 A, B, C가 문제이니 이 이슈들을 해결하면 X% 성장할 수 있다' 같은 발상이다. 현재에서 시작해서 미래를 그리기 때문에 순기획이다. 역기획은 엔드이미지에서 시작한다. 되고자 하는 모습이 있고, 현재 우리 상태와의 갭을 어떻게 메울지 고민한다. 골을 정해놓고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기 때문에 역기획이다. 되고자 하는 모습이 세상에 없던 것이라면 퍼스트 무버가 된다. 퍼스트 무버는 멋있어 보이지만, 실제로 누구도 걷지 않은 길을 갈 수 있는 회사는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은 누군가를 쫓아가야 하는 패스트 팔로워이다. 그런데 쫓아가는 입장에서는 누구를 쫓아가는지가 중요하다. 업계 선도회사들이라고 다들 똑같은 사업구조를 가진 것도 아니고, 핵심역량도 다르다. 회사가 걸어온 길에서 지금 모습이 될 수밖에 없었던 특수한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와 핏이 맞는 회사를 골라서 따라가야 역기획의 의미가 있지, 엉뚱한 회사를 참고하면 오히려 사업이 망가질 수 있다. 실제로는 우리와 딱 맞는 선도 사례가 없어서 A 회사의 X 측면, B회사의 Y 측면, C 회사의 Z 측면을 합쳐서 가상의 엔드이미지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역성장(reverse growth)'은 내가 만든 말이다. 원래 역성장(negative growth)은 말 그대로 마이너스 성장을 의미하지만, 순기획-역기획의 관계로 순성장-역성장을 정의해 보자. 순성장은 지금 나에 초점을 맞춘 성장이다. 내가 어떤 커리어를 밟아왔고, 어떤 강점이 있으니, 이를 더 발전시키면 어떤 모습이 될 수 있겠다 하는 접근법이다. 역성장은 되고자 하는 모습을 정해놓고 현재 내 모습과 갭을 고민한다. 역성장을 하려면 롤모델이 필요하다. 직장 상사일 수도 있고, 업계에 존경하는 선배일 수도 있다. 정말 위인전에 나오는 인물일지도 모른다.
롤모델이 누구인가?
사회초년생들은 좋아하는 일이 뭔지 모르겠다, 뭘 잘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직장생활을 어느 정도 한 사람들은 이대로 계속하던 일 해도 되는지, 회사에서 독립하면 어떨지, 인생의 2막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같은걸 궁금해한다.
이런 건 순성장 관점의 고민이다. 사람마다 케바케라 나도 답은 없다. 다만 조언을 주자면, 순성장으로 답을 모르겠다면 역성장 관점에서 고민해야 한다. 역성장의 기본은 롤모델이다. 회사 안에 배울만한 상사가 있다면 찾아가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어떤 준비를 했고 무엇을 배웠는지 물어봐야 한다. 업계에서도 한두 다리 거치면 롤모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회사와 마찬가지로 개인의 롤모델도 한 명이 아닐 것이다. 이 사람의 이런 측면, 저 사람의 저런 측면을 배우고 싶다 생각하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커리어에서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하는지 기준을 세울 수 있다.
나는 롤모델인가?
팀원들의 커리어 코칭이 어렵다는 고민도 많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상대방에게 자신을 롤모델로 제시할 수 있을지 한번 생각해 보자. 내 인생이 나름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나의 커리어, 내가 했던 경험들을 알려주며 '나만 믿고 따라와'를 시전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나 스스로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후배에게 뭔가 다른 길을 조언해야 하는데, 그럼 내가 안 해본 경험을 제삼자 입장에서 해줘야 한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서로 남 이야기가 되고, 맞는 말이라도 별로 안 와닿을 수 있다. 요즘 MZ세대는 예전과 문화가 다르다, 회사에서 임원이 되는 것에 별 관심이 없다, 그런 케이스도 있겠지만, 팀원들의 커리어 코칭이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는 본인의 커리어에 만족하는 리더가 줄어들어서라고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솔직히 말하자면 팀원들에게 커리어 조언을 '나서서 해줘야' 한다면 이미 멘토링이 잘 되기 어렵다. 당신이 존경받는 리더라면 후배가 먼저 찾아와서 물어본다. '팀원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또는 보는 내가 답답해서)' 먼저 불러다 앉혀놓고 이야기해야 한다면, 또는 서로 귀찮은데 인사팀에서 시켜서 커리어 코칭을 해야 한다면 아무리 좋은 말을 해줘도 효과가 별로 없을 것이다. 커리어 코칭은 논리보다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감정이 훨씬 크게 작용하는 영역이다.
나는 운 좋게 직장 생활 초반부터 좋은 리더들을 많이 만났고, 그중에 몇 분은 지금까지도 알고 지내며 롤모델로 생각하고 있다. 회사 생활을 할 때에도 롤모델이 있었고, 밖에서 내 사업을 할 때에도 존경하는 분들이 있었다. 반대로 내가 롤모델이 될 수 있냐고 생각하면, 나는 특이한 삶을 살아와서 누군가 내 커리어를 따라 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창업을 해봤다든지, 회사를 다니면서 책을 쓴다든지 하는 특정한 경험들은 그래도 남에게 조언할 수 있다.
당신은 누구를 롤모델로 삼고 있는가? 또 당신은 누구의 롤모델이 되어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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