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MTB 연합 라이딩

산악자전거는 내 성격도 바꿨다.

by 권영학
한국최고의 연합라이딩.

1993년 겨울 산악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모아 흥을 주고 싶었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인맥, 정보력이 동원된 한국에서 처음 있는 선수, 동호인들의 모임이었다.

첫 모임을 주선하며 참가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첫 번째이고 다음이 즐겁게 탈 수 있는 코스이며 마지막 장식이 맛있는 식사다.


이 행사를 하기 위하여 몇 번의 답사와 식사, 그리고 교통편의 제공까지 기획하게 되었다.

참가모집 대상은 서울 수도권 인원들이었고 당시 대중교통이 자전거를 가지고 이동하는데에는 불편했었다.

내 주변 회원들을 모았고, 연합사이클 남성현사장님께 부탁을 드렸으며 에이스클럽의 활동으로 알려진 한흥사이클 강대성 사장님께도 전화를 드려 부탁했었다.

처음에는 잘 모여지지 않았으나 계속된 설득으로 우리는 최종 38명의 참가자를 만들 수 있었다.


나는 버스를 전세 냈고, 자전거를 수송할 차량을 당시 상도동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친형에게 부탁해 운전과 차량을 부탁했었다.

모든 라이더가 모이는 장소는 용산역“이다.

서울에서 모여 이동할 수 있어야 하는 라이더가 대상이기도 했지만 당시 지방에서 활동하는 동호인들을 불러들일 능력이 없었다. 나는 고작해야

서울, 수원, 인천이었으며 집결지는 ‘용산역“ 까지 올 수 있도록 하기에도 벅차긴 했었다.

수원에서 기차를 타고 용산으로, 인천에서 기차나 지하철로 용산까지 모여 용산에서 버스를 타고 경기도 가평으로 가는 일정이었다.



화물트럭에 자전거를 싣고 있는 모습.

나는 모든 행사 진행은 주도했으며 그날 참가한 나의 친 형님(권영우)이 잔 심부름을 해 주었고 야외생활 편집장, 하용민실장 님 이 도와줬었다.

우리 버스는 용산을 출발하여 가평에 우리를 내려줬고 대회를 제외하면 처음으로 산악자전거 동호인이 많이 모인 자리다.

대회가 아닌 라이딩으로 많은 인원들의 선두와 후미 라이더를 보면 멋지고 대단했었다.

나에게 주행사진이 없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내 등 뒤로 김규만원장님(굿모닝한의원)이 보인다.

당시 비나 눈은 없었으나 영하의 날씨라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도로 위에 서릿발이 보인다.

라이딩 거리는 54킬로 정도인데 대부분 비포장으로 되어있었고 특별한 사고는 없었지만 펑크, 체인 끊어짐 정도가 있었고 탈 없이 라이딩을 마칠 수 있었다.

당시 참가비용이 18,000원이었다.


전세버스, 점심식대, 화물트럭 유류비용 등을 참가 비용으로 정산했었다.

점심은 닭갈비를 미리주문해서 먹을 수 있도록 했는데 워낙 많은 인원이 예약한 상태라 식당 주인으로부터 몇 번의 전화 확인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라이딩 후 식사 자리에서 즐거운 레크레션, 이라도 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코스를 안내하며 쉬다 가다를 반복했다.

인원이 많다 보니 우리 버스는 서울 용산역“에 내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늦어져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다시 각자의 집에까지 가야 했기 때문에 몸은 바삐 서둘렀고, 어둠 속에서 자전거를 챙기며 한겨울의 찬기운이 몸을 움츠리게 했었다.

모두를 안전하게 집으로 돌려보내고 나는 마지막을 챙겼다.

모두가 떠난 자리 허전함과 안전하게 무엇 인가를 해 냈다는 뿌듯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 요즘 그런 행사를 다시 한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본다.

그러나 그 시절에 맞는 자전거 타기 행사를 주최 진행 했던 사람으로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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