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아래 뫼, 이로다 태산 오양컵

한국인 최초 중국에서 진행되는 산악자전거대회에 참가하다.

by 권영학
1993년 중국 오양컵 대회 참가임원 및 선수 박수민(MTB연맹부회장) 노기탁선수, 권영학선수, 조동안선수.

중국 산둥성 자전거연맹 초청으로 가게 된 대회였다.

중국 산둥성 ‘태산‘ 산악전거를 타고 처음으로 찾은 중국 산악자전거대회.

산악자전거를 타면서 계속 이어지는 국제대회다.

일본, 미국과 더불어 이번에는 중국이다.

몇 번의 국제대회와 한국 대회경험을 바탕으로 대회에 출발선에서 조금의 여유가 생겼다.

1992년 코렉스 산악자전거대회 이후 1년 만에 나에게 많은 변화가 생겼다.


당시 한국 MTB/BMX연맹 박수민 부회장을 단장으로 조동안선수, 권영학선수, 노기탁선수. 가 참가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베이징 공항에 내려서 미리 우리를 마중 나온 가이드와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차량은 미니버스였는데 나는 당시 몇 시간을 달리면 도착하는지 알지 못 한채 몸을 실었다.

버스는 도심을 벗어나며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버스는 달리고 있다.

비포장에 길이 얼마나 좋지 않은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졸다가 의자 팔걸이에 머리를 올리면 비포장에 차가 일렁이며 망치로 치는 듯한 충격에 졸다 깨다를 반복한다.


대략 몇 시간 달려 새벽 2시경? 우리가 탄 버스는 엔진 소리가 조용해지며 버스가 정차했다.

아마도 시경계를 지나가야 하는 검문소"를 통과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탄 버스가 정차하며 버스문이 열리는 소리에 우리는 어설픈 잠에서 깨어났다.

가이드가 내려가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더니 다시 버스로 돌아왔다.

박수민 부회장에게 경계근무자들에게 무엇 인가를 주자는 이야기였다.

당시 박수민 부회장은 담배를 피웠는데 담배가 없냐는 이야기였다.

몇 갑의 담배를 넘겨주고 우리는 고 곳을 통과할 수 있었다.


등번호 1번을 받고 출발을 준비 중인 노기탁선수.


어둠이 살짝 것치고 넓은 공원 마당에서 여럿이 모여 중국춤 공연을 하는 모습에 도착했음을 인식했다.

우리가 탄 버스는 근사해 보이는 호텔 정문에 멈춰 섰다.

긴 밤을 버스에서 새우고 아침에 버스에서 부스스 눈을 부비며 기상을 한 격이다.

시합은 내일 아침이고 우리는 하루 전 도착했다.

호텔에 도착해 방을 배정받고 자전거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호텔에서 제공해 주는 식사는 내 입맛에 맞지 않아 전혀 어떤 음식도 먹을 수가 없었다.

도착한 호텔에서 몇 시간 있으며 강한 냄새에 머리가 아파 왔으며 나는 식사를 전혀 못했다.

호텔 방 안에는 보온병에 따듯한 물이 있었는데 그 물에서도 냄새가 역해 마실 수가 없었다.

우리의 가이드는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하는 나를 위해 어떤 것을 좋아 하나 물었고, 나는 빵을 먹고 싶다고 했더니 밀가루 빵을 몇 개나 들고 방으로 왔다.

빵에 냄새는 없었으나 그냥 밀가루 냄새나는 보통 빵이었다.


출발 전 조동안선수, 노기탁선수, 뒤로 필자가 준비하고 있다.


나는 그 빵도 먹는 둥 마는 둥, 배는 여전히 고팠다.

대회에 참가하는 전체인원 파티가 오후에 있었다.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와 파티장소는 다른 호텔이었다 버스를 타고 몇 분 이동해 옆 호텔에 도착했고 중국식으로 거한 상이 차려졌고 큰 회전테이블에서 내 입에 맞는 음식을 충분히 먹을 수 있었다.

꽤 오랜 시간 파티를 끝내고, 관광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태산 제일 높은 곳까지 가는 안내 여행을 할 수가 있었다. 안내를 맡았던 분은 여자 한분과 남자 한분이 우리를 안내했다.

버스를 한참 동안 타고 태산 어느 케이블카 주차장에 도착했고 우리는 바로 케이블카를 타고 반대편 산 봉우리에 도착했다.

당시 가이드의 이야기로는 세계 계단 뛰기 대회가 열리는 곳이라고 했었다.




대회날 아침 대회장에 도착했는데 비가 내리고 날이 추웠다.

대회당일 아침 바가 추적추적 내렸다.

출발 시간이 되고 비는 그치지 않았다.

빗 속에서 출발을 준비해야 했다.

당시 기억으로 노기탁선수의 자전거를 유심히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중국 선수들은 몇 명을 제외하고는 생활 자전거 수준이었고 장비로 따지면 한국팀의 장비를 따라올 수 없었다. 나는 자이언트 카덱스 1을 탔고 노기탁 씨는 클라인(미국브랜드)을 탔었다.

노기탁 씨는 일본 시합에서 구입한 텐션 디스크바퀴를 사용했는데 당시 한국에는 사용하는 사람도 없었고

중국 시합에서도 볼 수는 없었다.


출발선에서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


비가 오는 중 우리는 출발을 했다.

평지를 삥 돌아 산을 넘어오는 단순한 코스였던 것 같다.

당시 내 기억으로는 클라이밍을 50분 동안 했던 기억이 있는데 코스를 모르고 달리고 있는 나는 언제나 클리이밍이 끝날까? 힘은 빠지고 언덕은 계속 이어지고 중국 선수는 엉엉 울면서 내 뒤를 따라오던 선수는 기어코 나를 추월했다. 나는 선두권 유지를 하고 있었는데 계속되는 클라이밍에서 밀리고 밀려 7위까지 밀렸다.

중국 선수와 내리막 다운힐에서 각축전을 벌이며 달리고 있는데 그때도 비는 그치지 않았고 상당한 속도로 내리막을 달리다가 왼쪽 코너가 나왔고 나는 인코너로 중국 선수는 아웃코너로 돌다가 중국 선수가 원심력을 이기지 못하고 튕겨나가 벼랑으로 굴러 떨러 지는 상황이 되었다.

당시 상황은 나 가기 바빠 그 선수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었다.

빗속을 달리고 달려 힘은 빠졌고 응원을 하는 학생들이 길가에 보여 이제 결승선이 가까웠나 보다 싶은 안심이 되었는데 그때부터 달린 거리가 거의 10km 정도였다.

지금까지고 내가 경험한 최고의 결승(피니쉬) 응원 대열 이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결승 응원단의 모습이 눈에 선, 하다.



산악자전거 대회를 다닌 지금까지도 관중이 제일 많았던 대회로 기억 남는다.


마지막까지 열심히 달린 결과 나는 6등을 하였고 다른 선수들은 입상에 실패했었다.

보고프고 피곤하고 시상식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짐을 챙겨 이동을 해야 했었다.

경기를 마치고 저녁은 술술술~이었다.

산둥성 태산"에서 다시 복경으로 돌아가는 교통편은 기차였다.

우리를 태우고 갈 기차는 여유 있는 저녁 시간이었고 대회를 마치고 저녁 파티는 꽤나 오랜 시간 진행 됐었다.

이때 우리의 단장님 박수민 부회장님께서 접대주에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었다.

우리를 가차역까지 데려다주는 안내원은 부회장의 인사불성에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함께 부축해 겨우겨우 북경 기차에 몸을 실었다.


대회를 마치고 6등으로 시상을 하고 있다.


기차는 서서히 움직였고 아마도 역이란 역은 모두 정차해 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우리는 침대칸에서 잠을 자며 갈 수 있어서 버스와 비교되어 편하고 좋았다.

당시는 밤새 달리는 기차에서도 따뜻한 물을 먹을 수 있었는데 물이 필요하다고 하면 물을 갖다 줬다.

아침 겸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은 없지만 먹고 남은 쓰레기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는데 기차가 정차하면

기차 창문 너머로 버리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밖에 버리면 치우는 청소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밤새 달린 기차는 다시 아침이 돼서야 베이징역에 도착했다.


최고의 중국산.


베이징역에서 가까운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하루 묵어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는 스케줄이다.

호텔에 짐을 두고 천안문광장과 그 주변을 돌며 관광을 했다.

천안문 광장은 살짝 늦은 시간 사진을 찍었는데 당시 운동용, 사진을 찍겠다고 ISO400 필름으로 찍어 빛이 적어 까맣게 찍힌 사진은 참 어이없었던 기억이 있다.

사진을 잘 알지 못한 낭패였다.

천안문 근처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도 사 먹었었으니 당시호서는 호사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매연을 뿜으며 달리는 택시들,

그 사이로 아무 렇지도 안은 듯 자유자재로 누비는 자전거 행열!


태산에서


우리 일행은 만리장성을 가기 위해 택시를 선택했다.

한국으로 치면 대우 자동차 다마스" 같은 모양의 차량이었는데 적당한 가격 흥정으로 출발했다.

당시는 어떤 루트였는지는 전혀 기억에 없다.

요즘 같으면 폰과 어플이 좋아 모든 정보를 알 텐데 당시는 지도를 펼치고 찾지 않으면 알 수 없었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으니 새록새록 떠오르는 일 들이 많이 있지만 또렷하게 남아 있는 기억 중에는

만리장성으로 택시를 타고 가던 중 언덕을 택시가 올라가지 못해 손님인 우리가 택시를 밀어 목적지에 도착한

일은 아직도 선명하다.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알 차게 진행된 일정 이었었다.


우리를 담당했던 임원.


우리의 중국 일정 중 마지막 식사는 호텔에서였다.

모든 관광일정을 마친 후 호텔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한가로워 보이는 호텔은 손님이 많이 붐비지는 않았었는데 맛있는 음식을 먹자는 의미로 소고기 스테이크를 주문해 먹었었다.

분명히 저녁 식사 시간인데 손님은 우리 일행은 4명 큰 테이블만 있었다.

서빙해주는 웨이터와 웨이트리스를 포함 대략 10명은 족히 넘었었고 먹으면서도 부담스러웠다.

나는 맛을 기억할 수 있는데 그렇게 내 입맛에 좋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렇게 며칠간의 중국 일정은 바쁘고 힘겨웠어도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만리장성에서


임원과 함께.


만리장성을 배경으로 만리장성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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