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스포츠, 회장님의 산악자전거 사랑

레저 의류기업 (고) 박규동 회장님!

by 권영학
영동도 배 위에서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 이승, 권영석, 이성철, (고) 박규동(와일드스포츠회장) 오형재, 박성민(장남) 김규만한의원장.(고) 박용만, 김영선, 김세환,


와일드스포츠 창업자 (고) 박규동 회장님께서는 레저 스포츠를 좋아하고 사랑하셨다.

나와의 인연은 연남동 로터리 빌딩에서부터였었다.

1992년 MTB 일본 대회를 가기 위하여 인사드리고 제품 후원을 부탁드리기 위해서였다.

이때 이곳을 안내했던 이 가 박동화 씨였다.

처음 회사에 방문했을 때 박 회장님은 계시지 않아 직접 인사를 드리지는 못했다.


그렇게 의류협찬을 받게 되었고 그해 무렵 와일드스포츠는 연남동에서 수유동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 뒤로도 자전거 타기 행사나 대회 때면 대회장에서 인사를 드릴 수 있었다.

나와 직접적이지는 않았어도 작고 큰 자전거 클럽 행사를 하시고 활동도 직접 하셨다.

1993년 7월 처음으로 본토 대회에 나갈 때 도움을 받기도 했으며 나 또한 박 회장님께 도움이 되고자 힘썼다.

박 회장님은 한국 청화산악회 초창기 멤버셨고, 미국에 살고 있는 남가주산악회 주영님을 소개해주며 미국 대회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성철, 박규동 회장님


미국에서 대회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바이크숍에 들러 클라인 어튜티드를 프레임을 구입했는데 한국에 돌아와 말씀드리니 나에게 구입하시고 싶다고 하셨었다.

위 사진에 나와있는 밟은 색상의 자전거가 그때 미국에서 직접 공수한 제품이다.

자전거는 상당히 마음에 들어 하셨고 잘 타고 다니셨다.

그런 연이 되고 회장님과 만남은 자주 같게 되었는데 회장님께서 직접 제안을 주셨었다.

운동을 하면서 와일드스포츠 클럽 활동을 해 보면 어떻겠는지?

그렇게 회사에 합류하게 되었다.

나는 당시도 한강준치에서 자전거강습을 하고 있었고 저변 확대를 위해 무료강습을 매주 진행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하는 일은 간단하고 어렵지 않은 생활이었는데 이때 많은 배움이 있었다.

산악자전거 회원을 모집해 투어 행사를 하는 것 이 내가 해야 하는 일 중에 하나였는데 이때 생겨난 클럽이

그 유명한 한 시 반클럽이다.

한 시 반 클럽의 기반은 와일드스포츠 클럽 활동으로부터 시작이 되었다.

처음 주축은 박 회장님 지인분들이었었다.

초창기 멤버로는 오 형제, 권병기, 이성철, 김석찬, 김세환, 서명현 등 초창기 멤버라 이야기할 수 있겠다.

이런 활동을 일주일 한 번씩은 꼭 진행되었었다.

많은 부분 기획을 짜는 일은 나와 오 형제 씨였다.


오 형제세무사, 박규동 회장님


오 형제 씨는 직업이 세무사였고 여유 시간이 많아 모임 참석에 우선순위였다.

리더십도 뛰어나 사람들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었다.

내가 와일드클럽 활동으로 박 회장님께서 기아자동차 베스타" 다인승 차량을 활동 차량으로 내어 주셨었다.

제반 경비는 회비를 걷어 운영했고 식사를 포함한 코그안내, 편의제공을 내가 맡아 운영했다.

가끔씩 의류나 봉제 에도 배울 기회가 있었다.

산악자전거를 타면서 필요한 제품 개발이나 아이디어를 내어 소량의 제품도 생산해 내기도 했었다.

이때 배운 모든 것들은 지금까지의 삶에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성철, 가수 김세환, 박규동 회장님.

1993년 4년이 제일 활동이 많았었다.

가평, 영평, 화악산, 포천, 춘천 등 많은 활동을 했다.

압구정동에 살고 계시는 이성철 사장님은 인맥이 좋으셨었다.

이성철 사장님은 허리를 다쳐 몇 미터를 걸을 수 없었던 분이었는데 MTB를 알고 나서 서울에서 속초를 왕복할 많큼의 건강을 찾으신 분 이시다.

와일드스포츠 클럽 모임은 한강둔치 반포나들목 포장마차처럼 만들어 놓은 텐트가 공식 장소였다.

그러나 이성철 사장님이 강남에 살고 계시니 자연스럽게 만남의 장소가 정'사이클 이 되었다.

우리는 정사이클에 정비를 받으며 활동하는데 문제없이 회원들이 증가했다.

훗날 이성철 사장님의 소개로 서명현 씨가 나오게 되었고, 개포동에 있는 경일상사에서 만난 김석찬 씨는 오 형제 싸지 섭외를 해서 함께 하게 되었다.

그 뒤로 가수 김세환 씨가 합류하게 되었는데 향후 모임 날자를 정 할 때 김세환 님의 시간이 추축이 되기도 했다.


박 회장님의 막내 (현) 바이크매거진 편집장.

현) 바이크메거진 편집장 박 회장님의 3남, 막내 박창민 씨는 산악자전거를 오래전부터 배우고 관여했었다.


등을 보이는 이가 오 형제 씨, 김세환 씨가 앉아 버너에 밥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웃고 있다.


와일드스포츠클럽 활동에 선봉장에 셨던 분이 오 형제 씨였는데 자주 다니던 자전거 투어에서 매식은 단조롭고

기억에 남지 않았다. 산악 활동에 경험이 많은 오 형제 씨는 아내의 도움을 받아 산속에서 코펠밥과 찌개를 끓일 수 있도록 레시피를 만들어 깊은 산속에서 물만 넣어 요리를 활 수 있도록 준비를 했었다.

이때 참석한 가수김세환 씨는 산속에서 밥 해 먹는 것을 엄청 싫어했었는데 한번 맛을 본 이후 밥 해 먹으러 가자고 할 만큼 야외생활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종덕, 김옥남 씨 등이 가입하게 되었다.

어떤 연유로 나는 클럽활동을 못 하게 되었다.

그렇게 와일드스포츠클럽 활동에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나의 자리를 처음에는 클럽실장 소호영 씨가 차량 운영을 하며 이어지다가 차츰 투어 횟수가 줄어드는 현상에틀을

바꾸게 되었다.

이때 생겨난 클럽명 "한 시 반"이다.

한 시 반은 뜻이 간단하다, 그냥 토요일 오후 1:30분에 만난다는 뜻에서다.

이후로 한 시 반은 강남의 부와 명예를 가진 분들이 많았고 고가의 자전거들이 현란했다.


필자, 박창민, 박 회장님.

이 밖에도 박 회장님은 산아자전거 역사에 많은 틀을 만들고 남기게 되었다.

1993년 박 회장님을 주축으로 계간 야외생활 편집장 하용민 씨, 이승씨, 스포츠조선(고) 송철웅기자 와 강원도 루트개척을 했었다.


1993년 와일드스포츠 (고) 박 회장님의 계획으로 진행된 한국 최초 산악자전거 루트.

1994년 와일드스포츠클럽 이 주축이 되어 제1회 MTB SCHOOL 개교하게 된다.

세월이 지나며 많은 교육생들을 배출했다.

스쿨 초창기에는 숙박을 하며 교육을 했다, 군대같이 저녁이면 영상교육을 했고 아침 일찍 일어나 북한산 구보로 하루를 시작하는 아주 강한 산악자전거스쿨이었다.

1회 졸업생 들로는 지금 현재도 연락이 되는 카레이서 최장한 씨가 있으며, 강경숙 여성 회원은 현재 밴쿠버 거주 중이다.

이런 활동은 박 회장님의 기획이었으며 산악자전거의 흐름의 디딤돌 역할을 했다.

박 회장님의 자전거 사랑은 높으셨다.

3형제를 자전거를 타게 했으며 운동 신경은 좋지만 썩 좋아하지 않았던 둘째를 빼고는 맏형과 막내는 지금도 자전거와 인연 된 삶을 유지 중이다.

미국 클라인바이크 어티튜드를 타고 산악에서 내려오는 모습.

박 회장님 살아생전 몽골 자전거여행을 떠나 실 때 공항에 가서 배웅하며 뵈었던 일이 나와의 마지막 인사였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갑자기 발견된 췌장암, 그 뒤로 몸이 편찮으시고 병마에 많은 어려움이 있으셨다.

박 회장님의 레저 사랑을 이어받지 못한 아쉬움이 나에게는 크게 남는다.

박 회장님은 불편하고 손해 보는 일이라도 꾸준히 도와주며 이끌어 주셨던 것 같습니다.

당신의 노고와 공이 크다고 생각된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생전에 내가 남기지 못한 한마디 해 드리고 싶다.

당신은 선구자이며 원조 산악자전거 인입니다.

감사합니다.



와일드스포츠 클럽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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