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자전거의 기원을 찾아 미국을 가다 2

자충우돌 미국 시합과 금문교여행

by 권영학

한국과 미국의 시간차이는 우리를 힘들게 했다.

오후가 되면 피곤하고 매우 졸리다.

아침에는 일찍 일어났지만 할 것이 별로 없었다.

나는 한국 벨 헬멧 회사에서 헬멧을 후원받기로 하였는데 미국에 올 때까지 한국에 수입이 되지 않아 미국 현지 매머드스키장 숙소로 보내준다는 정보를 받았었다. 이때 한국 벨 헬멧 수입처는 청기상사였으며 청기상사는 자전거 브랜드 자이언트 도 함께 했었다. 청기상사는 스키 브랜드 로시놀 제품을 총괄 판매 하는 회사였다.

아침에 일어나 헬멧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밖을 자주 내다볼 수밖에 없었는데 이때 어떤 분과 눈을 마주치게 되었었다.

우리는 자전거를 준비하고 대회장에 올라갔다.

숙소에서 대회장까지는 자전거로 꽤 올라가야 하는 거리이고 아직은 대회장 분위기가 뜨겁지 않아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선수들에게 길을 물어보며 코스를 돌아보게 되었다.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눈은 사람키 보다 높게 쌓여 있었고 우리는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크로스컨트리 코스

잠깐의 움직임에도 숨이 가빠왔고 힘들어 쉬려고 하면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 추웠다.

나는 캘리포니아는 날씨가 매일 좋고 따뜻한 줄 알았었다. 맘모스스키장에 도착한 나는 잘못된 것을 느꼈는데 다른 방법이 없었다.


방법은 알지만 옷을 구입할 수 있는 돈이 없었다.

그러니 추위는 빨리 움직여서 참아야 했고 또 생각 못한 것이 있는데 경기장 스타트 장소 메인롯지가 해발 2000미터라는 것이다.

해발이 높다 보니 고소증이 생긴다는 것을 이곳에 도착해서 알게 되었다.

운동을 하고 나면 머리가 아팠고, 빨리 달리면 구역질이 생겨 속이 울렁거렸다.

살아생전 전혀 느껴보지 못한 컨디션에 몸은 많이 불편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불편하고 새로운 환경에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충격에 빠졌었다.

산악자전거 코스에는 눈이 사람키 높이 만큼 쌓여 있었고, 넓은 길도 있지만 좁은 길은 자전거 한대가 겨우 혼자 진행할 수 있는 일명 싱글트랙‘ 이 있었다.

IMG_1915.HEIC 레이크를 배경으로


IMG_1916.HEIC 암모스 산중턱에세 내려다보는 멋진 풍경


IMG_1917.HEIC 눈 쌓인 곳에서 신기한듯 촬영을 했다.


오전에 코스를 돌아보고 숙소에 돌아와 주변 여행지를 구경하기로 했다.

요즘은 폰만 보면 뭐든 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어디 가려면 종이 지도를 펼쳐놓고 길을 미리 익혀야 했다. Devils postpile(데빌드포스트) 차로 약 30분 정도였나 산을 하나 넘어 관광지에 도착했다.

돌기둥처럼 이루어진 돌무더기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주변을 돌아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대회가 2일 남은 상황이었다.

데빌드 포스트에 다녀와 숙소에 조금 있으니 동양인 남성분이 찾아오셨다.

낮에 한번 찾아왔었는데 우리가 없어 돌아갔다가 다시 왔다는 거였는데 한국말을 하는 한국분 이셨다. 정말 반가웠다.

며칠 만에 보는 동양인인데 이렇게 기쁠 수가

내용인즉~

아침에 나와 눈이 마주친 사람이 이분에게 가서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밑에 타운에 한국사람들이 투숙하고 있어,라고 알려줘서 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맘모스스키장 입구에서 세탁업을 하고 계시는

‘유춘근‘ 씨였다.

길게 이야기하지 않았고 유사장님은 애로 사항은 없는지? 물어 왔으며 우리는 문제는 없지만 지대가 높아 매일 밥이 설 익으니 제대로 된 밥을 먹고 싶습니다.라고 했더니 그럼 집으로 초대를 할 테니 오라는 이야기를 남기고 가셨다.


이렇게 대화가 오가며 밥이 잘 안 되는 이유가 해발이 높아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었다.

대회날이 다가왔다.

토요일에는 크로스컨트리와 일요일에는 다운힐 경기가 진행된다.

IMG_1911.HEIC 지나가는 선수를 바라보는 노기탁 선수.


IMG_1912.HEIC 관광지에서 웃고 있는 내 모습.


IMG_1913.HEIC 눈이 마냥 신기했던 우리들!


IMG_1914.HEIC 노기탁, 고)최형보



토요일 우리는 누가 사진을 찍어줄 상황이 아니므로 경기장면 사진은 없다.

크로스컨트리 경기는 시작됐고 정신없이 달려가는데 넓은 차도를 지나 좁은 싱글 트랙에 달리게 되었는데 내 뒤에서 소리를 지르며 달려온다.

나도 선수인지라 내 갈길 간다라고 생각하며 달리는데 뒤에서 나에게 접근한 선수가 오른손으로 내 왼쪽 엉덩이를 오른쪽 계곡 쪽으로 툭툭 치며 소리친다.

내가 달리고 있는 싱글트렉은 나무도 없고 민둥산에 오른쪽은 절벽이다.

뒤에서 추월하고 싶은 선수는 덩치도 키도 커서 팔을 뻗어 가볍게 내 왼쪽 엉덩이를 오른쪽으로 밀수 있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그 상황은 가슴 떨리는 일이었다.

우리는 누군가가 보급(식량)을 주는 사람도 없고 물을 주는 사람도 없이 경기를 마무리했었다.

이때 알게 되었다.

경기 중 뉴트리션 섭취는 기본이라는 것을.

경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보니 벨 헬멧이 도착해 현관에 놓여 있었다.


다음날은 다운힐 경기다.

맘모스스키장 정상은 11000피트다.

3350미터 정상에서 내려 달리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면 정말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말 멋진 장면이다.

쭉 뻗은 길을 무한대로 내달려 마지막 피니쉬까지 가는 길이가 상당히 길은 경기이다.

이 경기는 가미가제 다운힐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며 전설적인 유명 다운힐 선수들이 탄생되는 곳이기도 하다.

동양인중에 나이 어린 선수가 1994년 이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미가제 다운힐에서 일본 다운힐 야나기하라 선수가 우승하는 일도 있었고

존토멕 선수는 검은색 원피스 슈트를 입고 달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그래서 우리 머릿속에서는 이런 멋있게 달리는 상상을 하며 준비를 해야 했는데 현실은 내일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가 문제였다.

오늘 겪은 일들은 또 양반이었다.

다운힐 3350미터 정상에 올라갈 때는 한겨울 복장을 하고 다운힐 자전거를 들고 올라가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다운힐 자전거가 없으니 크로스컨트리 자전거로 다운힐을 해야 한다.

예상은 했으니 그 장비로 다운힐을 나려 오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문제는 겨울 옷을 입고 정상에 올라가는 것이 문제였다.

보호자가 있다면 춥지 않게 입고 올라가 대기했다가 내 출발 시간이 되면 옷을 벗고 출발하면 보호자가 벗어놓은 옷을 들고 내려오면 되는 아주 쉬운 일이었다. 우리에게는 그런 보호자도 없거니와 두툼하게 입어줄 옷도 없었다.

맘모스스키장은 리프트를 타고 중간에 내려 곤돌라로 갈아타고 정상에 도착해야 할 만큼 길이와 기온차가 심하다.


각자 출발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상까지 올라가는 시간을 감안하면 적어도 1시간 30분 전에는 출발해야 한다.

정상에 도착했을 때 여유 시간이 약 30분 정도는 돼야 안전하다고 생각했었다.

우리는 시간을 잘 맞췄다.

너무 여유 엤게 맞춰서 문제였다.

정상 타워에는 바람도 강하고 엄청 추운 상황을 그냥 몸으로 버티며 참아야 했다.

아마도 4/50분 정도는 우리 차례를 기다렸던 것 같다. 경기는 시작도 안 했는데 내 몸은 추위와 고도 건조한 날씨 어제 크로스컨트리 경기의 피곤함까지 안은채 죽을 맛이 되어 떨고 있었다.

나는 이때 죽을 것 같은 추위를 맛볼 수 있어서 그다음에는 어딜 가나 날씨에 대비한 복장을 갖춰 다녔다

내 차례가 되어 출발선에서 심판이 출발 신호를 줬는데 정상 스타트는 노면 상태가 엄청난 돌밭이었다.

핸들은 맘대로 돌아가고 돌밭에서 급경사 다운힐은 쉽지 않았다.

떨고 있다가 출발하니 몸은 바람에 맞아 더 떨리고 멀리 내다 보이는 경치는 환상이 아니라 굴러 떨어지면 죽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어떻게든 얼어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무사히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존토멕 선수의 멋진 다운힐 장면을 상상하며 달려도 시원찮을 곳에서 살아서 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만 계속하게 되었었다.

왜 이렇게 길어 5.5킬로 아마도 나는 최고 속도가 5-60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코스에서 일본에 야나기하라 선수가 98킬로를 달렸다고 기억하는데 아마도 맞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 다시 기억해 내려해도 다운힐 경기는 정상에서 떨다가 출발해서 더 떨다가 달리는 스피드가 브레이크를 잡지 않으면 계속 가속이 되어 속도 제어를 해도 어마어마한 속도에 떨다가 피니쉬 한 기억 밖에 없다.

결승선 통과 했는데도 추웠어. 그냥 추웠어!

정보가 없고 열약한 이때의 환경이 나는 훗날 후배들이 좀 더 편안한 경기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씨를 갖게 했다.

IMG_1919.HEIC 노기탁 씨는 만내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전' 이었다.


IMG_1920.HEIC 역시 신기한 눈을 배경으로.



속이 후련했다.

살아 돌아왔다는 생각과 낮에 충분히 떨었던 기억을 숙소에 돌아와 한참만에 풀였다.

맘모스 한국인 유춘근 씨 댁의 초대.

우리는 경기 일정을 마치고 유춘근 씨 댁으로 갔다.

먹을 것을 준비해 주셨는데 압력밥솥에 갈비였었다.

지금 내가 해외살이를 하고 있는 상황을 되짚어 보면 그냥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장정 3명을 집으로 불러 밥 주고 고기 주고 했던 것이다.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맛있게 이야기하며 식사를 하고 가족 이야기도 들려줬었다.

유춘근 씨에게는 딸이 한 명 있었는데 얼굴은 보지 못했으나 사진으로 보여주며 이야기했다.

당시 스키스쿨에서 운동 신경이 좋은 아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사모님은 우리에게 성적 좀 냈어요? 라며 물었다.

사실 창피했다.

나는 그냥 손서리를 치며 아니요, 어휴!

한참 대화가 오갈 때 사모님은 이야기했다.

한국분들 오시면 숙소에 타월이 좋다고 막 가져가고 그런다는 애기.

하지만 그 타월은 유춘근 사장님께서 숙소에 랜트를 해 주고 있는 상황이라서 없어지면 본인들 타월이라는 이야기를 해 주셨다.

즉 한국사람들 타올가져 가는 것을 본인이 초대해 준 집에 와서 우리 타올 가져간다는 이야기를 모르고 막 한다고 했다.

그러면 가져가지 밀라고 애기는 하지만 난처하다는 사모님의 애로 사항이었다.


나는 그 후로도 유춘근 씨가 한국에 올 때면 만나 식사도 함께하고 했었다.

몇 년 뒤에 한국에서 만나 이야기할 때 비행기 파일럿을 공무 할까 한다고 하고 그 후로는 모르겠다.

인연이란 참.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인연이었다.


우리는 경기장 맘모스스키장을 떠나 요세미티 국입공원을 지나 샌프란시스토로 향해 달렸다.

우리가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을 때 에는 이미 저녁이었고 금문교를 구경할 때 즈음 해가 저물었다.

여기저기 다니다 숙소 예약도 마땅하지 않아 차에서 자기로 했다.

승합차에서 3명이 차에서 하루를 노숙하고 다음 날 아침 설렁탕집에 갔다.

설렁탕집 사장님 우리는 보시더니 어디서 잣냐고 물었다.

우리는 우리 그냥 차에서 잣는데요, 했더니 어휴!

큰일 날 뻔했다며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해 주셨다.

여긴 차에서 함부로 자면 안 된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설렁탕을 먹고 우리는 샌프란시스코를 빠져나와 1번 해안 도로를 따라 로스엔젤러스로 향했다.

차를 타고 해안 도로를 달리는 동안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났다.

우리는 차 안에서 다음에 오면 이 도로를 달려 보겠노라고 이야기했었다.

나는 이 경기에서 너무 많은 산악자전거에 대한 것들을 배우게 되었다.

원시인이 콜라병을 보는듯한 느낌을 들게 했으며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했고 후배들에게 좀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줘야겠다고 다시 다짐하게 되었다.

이때 충격은 한참 동안 트라우마로 남을 만큼 충분히 떨었던 기억이 있다.

허무하게 끝난 본토의 경험.



다음편 일본, 중국, 그리고 한국 산악자전거 발전 이야기.











이전 03화산악자전거의 기원을 찾아 미국을 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