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자전거의 기원을 찾아 미국을 가다.

한국산악자전거연맹결성

by 권영학

<한국산악자전거연맹결성>
1993. 1. 6 한국 MTB 경기연맹 창립이사회 개최.
1993. 1.10 초대회장 조형래 취임
1993. 1.10 연맹 초대 전무이사 정상섭외 이사 12명 선임.
1993. 1.14 대한사이클 경기연맹 산하단체 승인.
1993. 2.16 한국 MTB, BMX 경기연맹 MTB, BMX 경기 설명회(권영학)


한국에 또 하나의 경기단체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한국산악자전거협회는 임의 단체라면

한국 MTB, BMX 경기연맹은 대한사이클경기연맹의 산하 단체로 국가대표 선발 권한을 가지거나, 파견하는 일을 했다.

현)한국산악자전거여맹.

연맹이 결성되고 처음으로 진행된 대회였다.

크로스컨트리와 듀얼슬라룸 경기가 진행되었는데 나는 결정지점에 설치해 둔 점프대에서 넘어지면서 순위에 들지 못했지만 종합 우승을 할 수 있었다.

이 대회 때부터 사이클 실업팀에서 참가하기 시작했고 한국통신, 동양나일론, 기아자동차 등이 산악자전거 대회에 선수들이 참가했었다.

1993년 산악자전거연맹 종합우승.


1992년은 코렉스배 대회와 협회의 순회 대회로 전국적으로 산악자전거를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안다.

당시는 3대 스포츠일간지, 일간스포츠, 스포츠조선, 스포츠서울에서 산악자전거에 관한 기사를 적극 지면 할애되었었다.


<1993년 한국산악자전거협회대회. 수원 광교산>

한국산악자전거협회가 주최했다.

수원 광교산 산악자전거 코스는 입구가 좁고 출발과 동시에 힐클라이밍이 꽤나 가파르고 길었다.

대회 전에도 가끔 투어링으로 다녔던 코스로 노면은 좋으나 코너링이 많고 업 다운이 심했다.

어느 정도 선수들도 윤곽이 드러난 상태이다.

늘 대회에 참가해 상위 입상자는 정해져 있었고 지역별 강자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수원 레이저클럽, 두 바퀴 클럽은 신예 선수들과 기존 선수들의 실력이 빠르게 향상되는 탄탄한 클럽이다. 삼천리자전거 가게를 운영했던 이경주 씨가 수원 선수들을 이끌었었다.

우승 예상 선수로는 김정수, 김정면 두 선수는 형제이다.

박성재. 이민행. 김경수. 대구 이주동. 부산 진보근. 등이며 늘 함께 원정과 훈련하고 있는 경쟁 선수로는 최형보. 노기탁. 김영선. 등이 있었다.

수원 광교산은 서울에서 가기에는 좀 멀었기 때문에 자주 가지는 못 했다.

수원 산악자전거 클럽의 주 훈련무대로 통했으며 그들이 우승 예상 선수로 꼽히던 대회였다.

치고 올라오는 실력들이 상당했으며 나름 수원 쪽 선수들의 안방 같은 곳이라 불리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대회 총성이 울리고 산 고개 하나를 넘어 두 바퀴를 돌고 복귀하는 코스였다.

첫 번째 고개 정상을 넘어 다운힐로 빠르게 내달리면 다음 언덕을 조금 쉽게 오를 수 있는 코스였는데 빠른 스피드를 저지시킬 목적으로 우회로를 만들어 왼쪽 코너를 돌아 그 언덕을 통과할 수 있도록 만들었었다.

그러나 앞서 치고 나간 선두 3-4명의 선수들이 제일 앞서 달리는 수원 소속의 김정수, 선수를 따라 좌회전해서 언덕을 통과해야 하는데 바로 직진으로 이 구간을 통과해 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었다. 규정대로 이야기하면 코스 이탈이 된 샘이다.

나는 몇 미터 뒤에 따라가다 직선으로 치고 달리는 모습을 보며 내가 알고 있는 코스가 확실하다는 확신에 따라가지 않았고 나머지 선수들은 나를 따라 달렸다. 이후 침착하게 정 코스를 달리게 되었다. 김정수 선수는 수원이 집이라 매일 그곳에서 연습을 한 선수인데 코스를 잘못 진행하면서 나의 경쟁자 몇 명을 데리고 가는 바람에 아주 쉽게 이 대회를 우승할 수 있었다.

경기 후 이야기를 들었는데 당황해서 코스를 지나쳐 달렸다고 했다.

당시 우승으로 들어오는 장면.



이 사진이 수원광교산 출발장면이다.


겨울

그해 비로봉 챔피언을 가리는 대회를 주최했으나 눈이 많이 쌓여 취소된 하나의 대회였다.

나는 자전거 공부하기를 좋아했고 경기력 향상을 위하여 자료 찾는 것을 즐겨했다.

스포츠조선에 기사화된 비로봉 챔피온쉽.

내가 자료를 가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세월이 흘러도 유일하게 남길 수 있는 것이 자료이며 기록 일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간가에 의해 새로운 기록이 생겨나고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고 한다.

소백산 비로봉 대회는 달려 보지도 못하고 끝이 났다.

이때 참가비용이 3,000원 이었다.


<1993 스포츠조선배>

스포츠조선배는 한국 산악자전거 역사에 가장 많은 대회를 유치하고 보급 발전을 위해 노력한 대회이며 언론이다.

용인 자연농원에서 진행된 크로스컨트리대회.

위 사진을 보면 앞 줄에 외국 선수를 포함한 상위 입상자들이 앞 줄에 포진되어 있다.

좌) 권영학. 노기탁. 최형보. 박진. 김용철. 이주동. 이승. 조선희. 양희동. 스티브막스. 김정면 선수가 보인다.

이 대회에서 누가 우승 했는지는 기억에 없고 내 자료에도 나오지 않는다.

대체로 대회에서 1-3위에 내가 있었으니 입상권 선수였다고 할 수 있다.


<제3회 용인자연농원 코렉스배>

용인 자연농원은 한국 산악자전거의 메카가 되었다.

2회. 용인자연농원 놀이동산 에세 진행된 대회는 1993년에 들어서며 단독으로 대회 무대를 펼칠 수 있는 곳으로 지정되었다.

지금의 호암미술관 옆 광장이다.

산악자전거대회의 인기와 언론의 홍보 덕분에 산악자전거 저변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대회마다 상위 입상을 하며 서서히 간판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는 순간이었다.

전년도 코렉스배 우승 대우자동차 “티코” 상품이 한몫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올해 경쟁자는 더욱 강해졌다.

도로사이클실업팀, 동양나일론팀의 출전.

박상영선수는 사이클선수출신으로 로드 사이클계의 간판선수였다. 함께 출전한 최영철 선수 역시 상당한 실역의 선수들이었고. 외국인으로 참가한 스티브막스 역시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다.

대구 이주동 선수 역시 칼을 갈고 나왔으리라 생각되며 지난해 준우승한 최형보 선수 또한 강력한 라이벌이었다. 출발선을 박차고 나가 3-4킬로 가면 돌밭길을 클라이밍 해야 하는데 이때 돌들이 움직이고 너무 많은 돌밭을 가야 하는데 이 구간은 테크닉 문제로 승부를 가를 수 있었다.

박상영 선수와 언덕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는데 서로 몸싸움이 있었고 나는 이때 선두를 탈환할 수 있었다. 다른 선수들을 따돌릴 수 있었던 곳은 돌밭길 테크닉 코스였다.

출발전 선수선서와 멀리 2위 박상영 선수가 보인다.
스티브막스 권영학 박상영
부상 그랜드캐년왕복항공권


코렉스배 대회 2연패를 하며 산악자전거 선수로서 다시 한번 입증할 수 있었던 시기였었다.

이때 그랜드캐년 왕복 항공권을 부상으로 받았다. 작년 일 번 대회 이후 내가 산악자전거의 본토를 가 보고 싶었는데 가능성이 생긴 기회가 되었다.


산악자전거의 기원은 캘리포니아 마린카운티라고 알려져 있고 우리는 그해 미국 본토에 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했고 정보나 경험이 없었으니 고마운 분이 계셨다.

이분은 강남 정‘사이클에 자전거 정비를 위해 다니시던 분인데 우리가 미국 대회에 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었다.

리쳐드리스 씨 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

지금은 미국을 가고 싶으면 누구나 손쉽게 인터넷에 접속해 비자를 받고 항공 예약을 하고 나머지 손쉽게 진행할 수 있지만 1993년만 해도 정보를 지금처럼 쉽게 접 할 수가 없었다.

미국을 가기에는 산 넘어 산이었다.

몇 가지 서류들을 기록으로 올린다.

재산증명, 연대보증 등 서류는 올리지 않는 것으로 한다.

가족관계증명서.
한국선수라이센스/미국선수라이센스


당시대회 참가선수명단.

미국에서 받은 편지와 비행기표를 구입해 미국 대사관에 접수를 하고 인터뷰를 진행해 단수 비자를 받아 가야만 했다.

우리는 미국 대회를 가기 전 필요한 물품이나 후원품을 받기 위해 여기저기 인사를 다녔다.

아마도 이때 박동화 씨가 함께 인사드리며 찾아가 인사드렸던 기억이 있다.

그중 유일하게 우리를 도와준 업체가 와일드스포였다. 와일드스포츠는 등산복 제조전문 업체로 고) 박규동 씨가 대표이사로 있는 회사였다.

우리가 후원받을 당시 본사는 종로구 연남동 에 있었다. 고) 박규동 회장님의 자제 분들이 박성민(전코렉스근무) 박영민(당시 패턴전문) 박창민(바이크매거진대표/운영자)이다. 와일드스포츠와 자제분들의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자.

와일드스포츠는 미국으로 출국하는 우리에게(권영학. 최형보. 노기탁) 3명에 대한 재킷과 블랭킷 등을 후원해 주셨다.

우리 셋은 누구도 미국을 가본 적 없는 사람들이다.

단지 여행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산악자전거라는 대회를 위하여 우리 세명은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가게 되는데 정보는 전무한 상태였다.

고) 박규동 회장님의 도움으로 미국 현지에 살고 계시는 남가주산악회 회원이신 ‘주영‘ 님을 소개받아 미국에 도착한 우리는 도움을 받게 된다.

우리 셋은 포드 자동차 윈드스타를 랜트로 La에서 Mammoth 스키장까지 지도를 보며 찾아간다.

La 시내를 나와 고속도로를 2-3시간 달려 고속도로 주변에 보이는 넘버 6 호텔에서 하루를 숙박한다.

방 1을 얻어 3명이 들어가 잠을 잤다.

그이고 다음날 우리는 또 한참을 달려 산 중턱쯤 작은 빌리지에 도착한다.

우리에게 예약된 빌리지 타운에 도착해 분해해서 가지고 온 산악자전거릉 다시 셋업 하는 과정을 가졌다. 우리의 숙소는 꽤 컸고 세탁기와 건조기가 설치된 숙소였다.

운전은 고) 최형보 씨와 내가 교대로 운전을 했다.

한국에서 미국에 도착해 3일이 되는 날이고 대회 까지는 앞으로 3일이 더 남아있어 여유 있었다.

도착한 날 오후 우리는 대회장 주변과 숙소 주변을 둘러보러 차를 타고 나섰다.

대회장 주변은 우리 숙소 타운에서 차로 꽤 언덕을 올라가야 했고 자전거로 다니기에는 힘들어 보였다. 차를 운전해 대회장소 근처로 올라가니 쭉쭉 뻗은 기다란 나무가 우리를 압도했다.

차에서 내려 나무밑을 서성 거렸고 호수 주변도 구경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문제가 있었다.

분명히 우리가 알고 온 곳은 여름이며 따뜻해 점퍼나 두꺼운 옷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 모두가 반팔, 바람막이 재킷이 전부였고 바지 또한 반바지에 얇은 바람막이가 전부였다.

그나마 햇볕에서는 참을만했는데 그늘진 숲에 들어가면 도저히 추위를 견딜 수 없었다.

우리는 분위기만 느끼고 숙소로 돌아와 La에서 장을 봐온 식료품을 꺼내 밥을 만들고 소시지를 구워 식사를 했다.

밥은 살짝 덜 익은 느낌이 있어 불위에 두니 냄비

바닥은 타버렸고 위에만 굻어 먹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매머드 스키장에서의 첫날은 그렇게 마치게 되었다.


다음 : 혼돈에 빠진 우리 그리고 대회장에서 격은 서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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