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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수현 Jul 25. 2024

마광수 연구 노트001


"이것은 한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구누가 행복해지고 싶어한다. 그러나 겉마음과 속마음을 일치시키지 못 하면(다시 말해서 솔직해지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행복을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

-마광수, 섭세론, 22쪽


겉과 속의 일치는 어떻게보면, '반문학적'이다. 겉과 속이 불일치한다는 것은, 세상과 주체의 의도가 어긋나며, 서로 맞물리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디즘과 마조히즘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사디스트는 마조히스트와 성행위를 함으로써 비로소 만족을 얻을 수 있고, 마조히스트는 사디스트에 의해서만 성적 만족을 얻을 수 있다."

-마광수, 시학, 23쪽.


위와 같은 주장은 그 둘이 반드시 함께 논의된다는 것인가? 마광수의 논조에 의하면 둘은 성적으로 합일될 뿐이 아니라, 서로의 욕망을 채워준다. 그러나 사디즘이 고통 받길 좋아하는 희생자를 원할리는 만무하므로, 뭔가 의미하는 바가 더 있을 것만 같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감정의 당당한 배설이 가능해질 수 있을까? 별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다. <무조건 솔직하게> 자기를 드러내면 된다. 그러려면 대중에게 자기 자신을 송두리째 드러내 보여줘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 뻔뻔스러울 정도의 대담성, 그리고 벌거벗고도 떳떳할 수 있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마광수, 시학, 28~29쪽.


솔직하게 드러내면 감정을 당당하게 배설한 것이다. 그리고 솔직해지려면 뻔뻔스러울 정도로 대담하고, 벌거벗고도 떳떳해야 한다. 

여전히 문제가 되는 것은 아버지의 이름인 것 같다. 위에서 말한 "대중"이라는 것이 아버지 대타자라면, "아버지에게 송두리째 드러내는" 것은 "솔직하게 되는" 방법이다.

"죽음"은 어떠한가? 공황발작이 그것이라면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기는 하지만, 두려움에 의한 것인지, 단지 삶에 불편감을 주어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대학교"라는 집단의식이 아버지의 이름을 잃어버렸을 가능성은? 지금의 한국상황을 고려해보면 있을 법한 이야기 같기도 하다. 하물며 문학과라는 특수성도 작용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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