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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수현 May 25. 2023

표절과 정치

김건희 여사의 논문표절과 이재명 대표의 논문 관련 발언은 연구자들로 하여금 각성을 촉구하게 한다. 표절률이 50%에 육박하는 논문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제출한 것은 물론이요, 표절이 의심되는 논문에 대해 ‘어차피 필요 없는 것’이라며 ‘폐기’를 요청하는 행태는 비단 ‘연구’만이 아닌 이에 종사하는 연구자들에 대한 능멸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하지만 필자는 모든 표절자들의 뻔뻔한 행태들보다는 이에 대해 더욱 뻔뻔스런 침묵으로 일관하는 연구자 사회를 규탄하는 바이다.



물론 정치적 규탄의 목소리가 없던 것은 아니다. 몇몇 연구자들은 표절을 자행한 당사자를 비판하는가하면 표절논문학위를 수여한 대학들에 대해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확성기의 이쪽 편에 있다.



소크라테스는 대화편 ‘고르기아스’에서 세상의 갖가지 기술 중에 가장 쓸모없는 것이 바로 ‘연설술’이라고 주장한다. 광장에서 동료 시민들과 함께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이를 토대로 강단에서 멋들어진 연설을 함으로써 출세를 도모하는 것이 가장 쓸모가 없는 일이라니! 남들과 토론하고, 연설하는 것은 그 당시 아테네의 성인남성(노예와 장애인을 제외한)이라면 당연히 행사할 권리였고, 이 '쓸모 있는' 장면은 오늘날까지 교과서에 실려 우리들의 민주주의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어째서 소크라테스는 그 스스로도 한 사람의 연설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주장을 한 것일까?



그것은 어쩌면 가장 쓸모없는 기술로써 최고의 쓸모를 바라는 만용을 저질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연구의 한 결과물이라고 할 논문이라는 것은 얼핏 보면 여러 모로 쓸모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논문만큼 세상에 쓸모 없는 것도 없다. 모든 논문은 누군가에게 반박당하거나 인용되고 버려진다. 한 시대를 갈무리한 지식들일 수 있지만 시대가 지나면 그야말로 가장 시대착오적인 것이 된다.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는 것과 스스로에게 의문을 제기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쓸모 있는' 일일까? 하물며 이런 질문을 떠올리는 것은 과연 쓸모가 있을까? 어느 쪽이던 요즘 시대에는 여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배우고 가르치는 최고기관'이라할 대학교에서 심심치 않게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면 한 번쯤 펜을 내려놓고 주변을 둘러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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