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들은 집에 가서는 오히려 말을 잘 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종종 본다. 재치있는 말과 표정과 행동으로 대중들을 웃어제끼게 하는 그들이지만 카메라가 있는 무대에서 벗어나 집에 있을 때는 오히려 입을 닫는다는 것이다. 나는 개그맨이 아니라 좀 시시하다싶은 직장인이지만 이런 얘기들을 볼 때면 좀 찔린다. 회사에 나오면 친절하고 상냥해지고 웃기도 하고 일부러 노력을 해서 농담도 하지만 집에 가면 그러한 모습들이 싹 사라지기가 일쑤인 것이다.
아침에 핸드폰 알람소리에 일어나면 그 알람을 끄는 동시에 간밤에 미국 본사사람들에게서 온 이메일들을 핸드폰으로 살펴본다. 별 것 없는 날도 있지만 간밤에 내가 자는 동안 큰일이라도 난 듯이 뭔가 많이 쌓여 있는 날도 있다. 핸드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굴려 가면서 대강 확인한 후에 출근하면 후다닥 처리해야지 하는 일들도 있지만, 아, 씨이, 뭐야, 하는 말들과 함께 한숨부터 나오게 하는 일들도 있다. 나는 내가 맡은 업무의 성격상 내가 주도하는 일이 많기보다는 남이 주도하는 일을 지원하는 일이 많은데, 그러다보니 일이 힘들고 짜증날 때마다 나는 거리의 청소부라는 생각으로 나를 달랜다. 길바닥에 쓰레기가 많아야 청소부가 존재하는 의미가 있는거지, 한다. 그런데 그렇다할지라도, 쓰레기가 너무 많거나, 쓰레기가 너무 쓰레기스러울 때에는 한숨이 연달아나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이런 날에는 옆에 있는 엄마, 옆에 있는 남편이 희생양이 된다. 표정은 굳고 말은 곱게 안 나가고 괜한 짜증을 낸다. 그러다가도 회사에 나가면 갑자기 환골탈태하여 나는 상냥한 웃음을 건네고, 별거 아닌 말에도 웃어주고, 뭐 재밌는 소재거리가 없나 궁리하면서 유쾌한 대화를 이어가려고 노력한다. 회사 문을 통과하는 동시에 너는 이러이러하게 명랑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솟아나는 짜증과 화는 무조건 다스려야 한다는 룰이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 룰을 반대해석하면, 집 현관을 들어서는 동시에는 너는 비꼬아지고 가라앉은 마음을 그대로 분출되도 되고 상대에 대한 배려나 노력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되는 것만 같다.
똑똑한 척은 혼자 다하면서 이런 바보같은 말도 안 되는 룰에 내가 언제부터랄 것도 없이 젖어있다. 회사에서는 네네, 하하하, 하면서도 가까운 사람, 특히 가족에게 가시를 돋우고 짜증을 내고 불편한 기운을 뿜는다. 그러고 나서 바로 미안하다고 하긴 하지만, 사과하는 것은 내 찔리는 마음을 덮으려는 것일 뿐 이미 나의 가까운 사람들이 애꿎은 공격을 당한 것은 엎어진 물이고, 또 이러한 공격과 사과가 반복되고 있으니 참 못났다.
우리집 안방 창가에 있는 스투키를 가만히 보면서 나의 이런 못난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다. 내가 스투키를 안방 창가에 둔 것은, 햇빛이 부족한 곳에서도 잘 살고 물은 자주 줄 필요가 없어서고, 더 중요하게는 밤에 산소를 내뿜는다고 해서였다. 어느 화원에서 스투키의 화분에 ‘야간 산소발생기’라는 푯말을 꽂아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러고보면, 선인장이나 스투키를 비롯한 다육식물들은 햇빛이 없는 밤에 산소를 뿜는다는 말도 많다. 전에는 왜 그럴까, 라는 의문보다는 내가 자는 동안 산소를 만들어준다니 좋겠군, 하는 생각만 했었다. 그런데 그것은 스투키를 제대로 안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식물의 생명활동은 크게 광합성과 호흡으로 나뉜다.
햇빛이 있는 낮 동안에 식물은 햇빛과 이산화탄소와 물을 먹고 광합성을 하여 식물의 에너지원인 포도당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증산작용이라는 것을 통해 수분을 뿜어내기 때문에 천연가습기라 불리기도 하고, 수분을 뿜어내면서 식물 자체와 주변의 온도가 조절되는 관계로 식물이 우거진 숲에 가면 시원하기도 하다. 또, 가장 중요하게는 광합성의 결과로 산소를 만들어내는데, 어떤 어린이책에서는 이러한 산소를 식물의 똥이라고도 해놨다. 귀여운 발상이다. 어쨌든 이산화탄소를 먹고 응가하는 식물의 똥은 식물을 천연공기청정기 내지 산소발생기 역할을 하게도 만든다. 한편, 햇빛이 있건 없건 낮밤으로 식물은 사람처럼 호흡을 한다. 식물의 호흡에는 광합성으로 만들어낸 포도당과 산소가 쓰이고 호흡의 결과로 식물의 생장에 필요한 에너지와 물과 이산화탄소가 만들어진다. 광합성을 하지 않는 밤에는 이렇게 호흡만 하는 고로 식물이 만들어내는 산소는 없고 오히려 주변의 산소를 먹으면서 이산화탄소를 내놓기 때문에, 식물들은 밤에 이산화탄소를 만드니 침실에 식물을 너무 많이 두는 것은 좋지 않다는 말이 나오게 된다.
정리하면,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 숨을 쉬고 살듯 식물도 숨을 쉬고 살면서 산소를 먹고 이산화탄소를 내뱉지만, 햇빛이 있는 낮 동안에는 광합성을 하기 때문에 호흡으로 내뱉는 이산화탄소보다 광합성으로 내뱉는 산소가 더 많아서, 결과적으로 식물은, 낮에는 산소를 밤에는 이산화탄소를 뿜는 것으로 얘기되곤 한다. 그리고 이것이 식물의 생명활동에 대한 일반적인 룰이다.
그런데 선인장과 스투키를 비롯한 다육식물은 그런 일반적인 룰에 반칙을 한다. 이 아이들은 대체로 그 원산지가 아프리카와 같은 햇빛 세고 물이 귀한 곳이다. 물이 하도 귀해서 잎과 줄기를 물탱크 삼아 물을 저축하면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다육식물들은 그렇게 통통한 몸매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 아이들이 일반적인 식물들처럼 낮에 광합성을 하게 된다면 안 그래도 귀한 물을 쭉쭉 뿜어내게 되므로 살 수가 없고 금새 말라죽을 것이다. 그래서 이 아이들의 반칙은 이렇다. 햇빛이 있는 낮에 광합성을 반절만 한다. 일반적인 식물들이 광합성을 하면서 빵 반죽을 만들어 그 반죽을 빵으로 구워내기까지 한다면, 다육식물들은 반죽까지만 만들고 빵은 굽지 않는다. 광합성을 끝까지 다 해서 빵까지 구워내려면 몸 안의 귀한 수분을 다 뿜어내야 하므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대신, 낮에 만들어놓은 반죽으로 밤에 빵을 굽는다. 이러한 이유로 다육식물들이 밤에 산소를 내뿜게 되는 것이다. 최선의 삶을 위한 지혜로운 반칙이 아닌가.
그래서 스투키를 보면서 새삼 생각한다. 내가 산소를 뿜어내야 하는 때는 회사에서 회사사람들과 있을 때가 아니라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라고. 물론 내가 힘들고 우울하고 짜증나는 상황에 있다고 해도 업무를 하면서 울상을 짓고 버럭 화를 내고 짜증을 낼 수는 없는 일이지만, 평정심과 업무적인 명랑함을 유지하기 위해 내 몸의 모든 수분을 소진한 나머지, 집에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 더 이상 뿜어낼 산소도 없고 수분도 없다면 그것은 실로 어리석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회사는 어디까지나 회사다. 나의 능력과 노동과 시간을 팔아 임금과 인정과 경력이라는 보상을 받는 곳일 뿐이지, 회사일과 회사의 사람들로 내 마음이 바닥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내 삶과 내 마음을 따뜻하게 살찌우는 사람들이 내 가족이요 가까운 사람들일텐데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지언정 그들에게 기울이는 나의 노력과 에너지가 줄어들게 할 수는 없다.
쉽게들 말하는 일과 삶의 조화가 이런 것이겠구나, 사람에게도 에너지총량의 법칙 같은 것이 적용되는 것이겠구나, 얕고 넓은 인간관계에 나의 웃음을 다 쓸 것이 아니라 소중하고 깊은 인간관계에 나의 웃음을 더 써야 하는 것이구나, 내 마음을 정말로 써야 할 곳에 쓰려면 정신차리고 지혜를 찾아야겠구나, 나도 스투키처럼 밤에 빵을 구워야 겠구나,하고 스투키의 반칙을 보며 생각하게 된다.
간단프로필
유통명: 스투키
학명: Sansevieria stuckyi
영명: Stuckyi
생물학적 분류: 속씨식물문 외떡잎식물강 아스파라거스목 아스파라거스과 산세베리아속
원산지: 적도 아프리카
햇빛:
스투키는 그늘에서도 잘 자란다는 얘기를 많이 들을 수 있는 것처럼, 빛에 대해서 인내심이 있는 식물인 것 같다. 스투키는 빛 뿐만 아니라 건조함과 물에 대하여 인내심이 많아서 키우기가 쉬운 식물이라고 되어 있다. 실제로 나도 안방 창가에 놓고 키우는데, 필름샤시를 두 번 거쳐서 들어오는 햇빛에도 무난히 살아가는 것 같다.
바람:
내가 스투키를 놓아둔 안방 창가는, 아침저녁으로 문을 열긴 하지만 대체로 닫혀있는 곳이다. 아마 이 곳에 허브를 놓아두었으면 금새 시들해졌겠지만 스투키는 괜찮다. 통풍에 대해서도 인내심이 많은 식물인 것 같다.
물주기:
스투키는 다육식물이므로 물주기는 인색하게 하는 것이 맞다. 이러다 말라죽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흙속이 푸석푸석할 때 물을 조금씩 준다.
내한성/월동:
아프리카 토종인 다육식물이니만큼 열기에 강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추위에도 강하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도 계속 방안에서 키울 생각이므로 월동은 크게 신경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또, 스투키를 키우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실내에서 키울 것 같으니 월동은 크게 신경쓸 필요 없을 듯 하다.
성장:
쭉쭉 자라지 않는다. 과연 살아는 있는 것인가 궁금할 정도로 그대로이다. 어디에는 90센티미터 이상 자란다고도 하고, 어디에는 기후가 맞으면 2미터 이상 자란다고도 하는데, 내가 들여온 스투키는 워낙 작은 사이즈인데다가 우리나라 환경에서 그것도 안방창가에서 키우는 것으로는 기대할 수 없는 크기일 것이다.
번식:
스투키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나는 키다리처럼 일자로 쭉 뻗은 스투키와 뿔모양으로 휘어진 스투키를 키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뿔스투키 화분에서 자꾸 새끼스투키 잎파리가 올라온다. 화원주인 왈 이렇게 '자구를 올리면' 이 새끼를 떼어내서 따로 심으면 된다고 했고, 나도 그 말을 따라 떼어내서 심었는데 아직은 성공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매력 포인트:
어느 화원에 가보니 스투키 앞에 꽂아놓은 팻말에, "야간 산소발생기"라고 해놓았다. 선인장이나 다육식물들은 햇빛이 강하고 물이 귀한 사막 같은 곳에서 사는 아이들인지라, 보통의 식물들처럼 대낮에 생명활동을 하지 않고 해가 진후에 한다고 한다. 대낮에 생명활동을 하면 그나마 얼마 없는 수분이 다 날라가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그렇게 물이 귀한 이유로 다육식물들은 잎파리 안에 물을 두둑히 담아두어서 그런 도톰한 몸들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밤에 생명활동을 하는 이유로 다육식물들은 밤에 산소를 내뿜고 이산화탄소를 먹는다. 그러니 야간 산소발생기라도 해도 맞을 것이다. 햇빛과 바람과 물 타령을 거의 안 하는데다가, 밤에 산소도 내뿜어 주니, 안방에 놓기 딱 좋은 식물일 것 같다.
유의사항:
야박한 것 같은 생각이 들어도 물을 최대한 적게 주는 것이 상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