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존재하는 이유

생각하므로, 쇼핑하므로, 클릭하므로, 그리고 기억하므로

by 코코넛


도로공사가 진행 중인 다리를 건너다가

문득 이원의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

시집을 제목에 이끌려서 샀었던 것을 기억했다.

엄밀히 따지면,

시집의 제목에 끌려서 첫 페이지를 열었는데

시인의 말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가 있어서 나와 비슷한 유형의 사유를 많이 할 듯한 생각을 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를

바바라 쿠르거는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쓴 흰 종이를

엄지와 검지로 집은 이미지가 강하게 내 마음을 빼앗었던 기억과

만났기에 온전하게 그녀와 그녀를 이해했다.


바바라 크루거-2 (2).jpeg



풍경의 밖


1.


해가 타오르며 서서히 기울어

가고 단풍은 급커브에서 붉다

(아아 지는 것에도 절정이 있

다) 양은 냄비 같은 불을 매단

가로등도 없이 반대편 길이 하

늘 한구석을 뜯어내 옆구리에

끼고 간다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는다

잘라낸 하늘과 어둠을 꿰맨다

달과 그림자를 꿰맨다 발자국

이 파인 곳에 방이 하나 생긴다

방 속에서 낯선 별들이 불을 꿰

매고 있다


2.


사원의 오래된 나뭇가지에 앉

아 있던 솔부엉이 한 마리 / 찰

칵 / 사원 기왓장 끝을 기어가는

쥐 한 마리를 잽싸게 물고 와

두 발에 끼고 앉는다 목을 딴다

쥐의 생피가 잔뜩 묻어도 어둠

은 내내 어둡고 나뭇가지는 낯

선 문장처럼 고요하다 아직도

사원의 뜨락으로 떨어지는 씹

다 만 추잉껌 같은 별 몇 개


3.


마르지 못한 달빛 하나가열쇠

처럼 베란다 벽에 걸려 있다 달

빛을 돌려 하루의 번호를 맞춘

다 비린내를 밟으며 서둘러 떠

나는 공기들 아직 열리지 않고

있는 몸 안에서 전화벨이 울리

고 있다


- 이원


귀가한 후에 이원의 시집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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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시집을 구입한 날 책갈피에 쓴 낙서

<낙엽이 달려오다 차창에 부딪친다

나를 안고 가는 차창은 낙엽을 매몰차게 뿌리쳤고

내 시선은 멍든 나뭇잎을 따라갔다

낙엽의 비명도 멀어졌고 나도 버스를 떠나보냈다.

느슨하게 풀어진 머플러를 바람에 맡기고

미련해서 떠나기 주저하는 거리,

나무를 떠난 나뭇잎이 멀리 가지 못하고

떨어져 누운 거리를 걸었다

걷고 또 갇다가

가장 애처로운 잎 하나만 집어 올렸다.>


2001년에 쓴 낙서를 읽으면서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의심한다.

<무슨 일이 있었나?>

생각나지 않으니 별일이 아니었을 듯.


시집을 구입한 날마다 그날의 심상을 끄적이는 버릇은

예나 지금이나 같아서

이렇게 시간이 훌쩍 흐른 뒤에 그날의 낙서를 읽으면

오글오글.... 그날 내 손에 잡힌 나뭇잎은 다시 보니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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