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우 시인의 시 한 편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
어렸을 땐, 강둑이 최애 장소였다.
높낮이의 변화도 들쑥날쑥 다양했고
길의 폭도 넓어졌다 좁아졌다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고
강바람을 맞으며 흔들리는 야생화와
잡풀이 무성해서 좋았다.
셀 수 없이 다양한 요소를 품은 그 강둑은
이제 기억서만 존재하는 장소다.
아스팔트로 곧고 정확하게 전환된 강변길에서
기억을 더듬으며 천천히 걷다
벤치에 앉아서 어렸을 때의 강둑 풍경을 펼쳤다.
어쩌면 길을 걷다 쪼그려 앉아
이름 모르는 작은 야생화를 들여다보았던
그 장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슬며시 정확한 기억으로 고정시키면서.
알브레히트 뒤러 <잔디>
아마도 잠시 머물다 온
강변의 벤치에서 떠올린 기억들이
황지우의 시를 다시 감상하게 하는 것일까?
여기서 머물다 가고 싶다
펑! 튀밥 튀기듯 벚나무들,
공중 가득 흰 꽃밥 튀겨 놓은 날
잠시 세상 그만두고
그 아래로 휴가 갈 일이다
눈 감으면
꽃잎 대신
잉잉대는 벌들이 달린,
금방 날아갈 것 같은 소리-나무 한 그루
이 지상에 유감없이 출현한다
눈 뜨면, 만발한 벚꽃 아래로
유모차를 몰고 들어오는 젊은 일가족
흰 블라우스에 그 꽃그늘 밟으며 지나갈 때
팝콘 같은, 이 세상 한 때의 웃음
그들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내장사 가는 벚꽃길 어쩌다 한순간
나타나는, 딴 세상 보이는 날은
우리, 여기서 쪼금만 더 머물다 가자
- 황지우
데이비드 호크니의 <고속도로>
머물고 싶은 장소가
과거에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이 디자인한 정원이나
디자인된 공원과 산책로를
더 선호하고 안도하면서 줄기를 나를 목격했다.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누구나 다 나와 비슷한 시선으로 자연을 바라본다고,
그러므로 사람의 머리에서 기획되고 완성한
인공인 듯 인공이 아닌 자연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보다
아름답게 인식하는 일은 안목의 획일화에
슬그머니 휩쓸린 내 안목의 대중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