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가 좋은 날
오늘 밤 야근이 끝나고 집에 들어오는 길은
왠지 마음이 공허했다.
발걸음이 무거웠고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텅 빈 마음만 남았다.
해구석처럼 내 가슴엔 바람이 들어왔다 나가는 기분이었다.
저번 주, 비슷한 시간에 야근을 하고 돌아오는 길은
이렇지 않았다.
늦게까지 일은 했지만 일을 끝내고 왔다는
뿌듯함이 앞섰다.
발걸음은 가벼웠고 하늘은 어두웠지만 밝게 빛나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내 얼굴의 엷은 미소가 느껴졌다.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아무 일도 없었지만
가을 녘 땅바닥에 단단히 붙어 있는 낙엽처럼
내 기분이, 마음이 땅바닥에 단단히 붙어서
쉬이 움직이지 않는 날 말이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몸과는 반대로 많아지는 생각은
내 머릿속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마음을 다해 사랑했지만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 생각나고
사소한 몇 년 전 실수가 떠올라 괜스레 얼굴이 화끈해진다.
그렇게 집에 오는 길은 더 멀어지고 있었다.
오늘 퇴근길은 왠지 그런 날이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던
슬픈 노래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지하철에 앉아서 읽던 내 취향의 그 소설이
나를 밑으로 끌어내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도 아니면 오랜만에 희뿌옇게 나를 감싸던
밤안개 때문이었을까.
집에 들어와서 푹 꺼진 침대에 둘러싸여
깊은 잠을 청해야 할 것 같지만 이렇게 글을 쓰고 싶었다.
오늘 밤은 왠지 글을 써야만 할 것 같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