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논리를 깨고 나온 생명의 자세
무심코 내려다본 발밑에 손바닥만 한 돌멩이 하나가 툭 떨어져 있었다.
신기한 마음에 얼른 허리를 굽혀 주워 들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것은 차가운 돌이 아니라 꼼지락거리며 살아 움직이는 작은 거북이였다.
잠에서 깨어나 언니에게 이 신비로운 꿈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때,
언니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너네 집에 있는 그 거북이 돌 이야기잖아."
아. 그제야 무릎을 쳤다.
수석(水石)의 매력에 푹 빠져 남한강 변을 헤매고 다니던 시절,
강가에서 주워 온 앙증맞은 거북이 모양의 돌이 있었다.
동그란 몸통에 작은 머리가 기가 막히게 붙어 있던 그 돌거북이의 밋밋한 등허리 위에,
나는 언젠가 강변에서 주운 납작한 ‘하트(♡) 모양의 돌’을 정성스레 얹어주었더랬다.
영락없는 한 마리의 거북이가 된 그 수석을 거실 한편에 두고 오랫동안 바라보았으면서도,
나는 내 무의식이 만들어낸 이 기막힌 상징을 단번에 알아채지 못했다.
차가운 돌거북이의 등에 하트 모양의 돌을 얹어주자,
꿈속에서 그것이 뜨거운 피가 도는 생명이 되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
이 한 편의 동화 같은 꿈은,
기나긴 세월을 돌아서 마침내 진짜 나를 되찾은
내 인생의 가장 단순하고도 정확한 요약본이었다.
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나는 견고한 ‘논리의 성(城)’ 안에 갇혀 살았다.
그곳의 교리는 빈틈없이 완벽했고 바위처럼 단단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결함이 하나 있었다.
하나님의 주체사상이 심판이라고 하여 사랑은 들러리로 여겼다.
타인을 향한 연민도,
나 자신을 향한 자비도 없는
그 차가운 율법 속에서,
나는 껍질 속에 잔뜩 움츠러든 한 마리의 돌거북이였다.
신의 이름으로 포장된 가파른 계단을 맹목적으로 오르며,
내 영혼은 점점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갔다.
나는 그 차갑고 견고한 논리의 성 안에서
점점 숨이 막혀 왔고,
마침내 그곳을 박차고 나왔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탐구하는 내 편인(偏印)의 기질을 긍정하고,
타인의 대본이 아닌 내 언어로 삶을 기록하는 나를 껴안았을 때.
비로소 내 영혼은 차가운 돌의 껍질을 깨고 나와
따뜻하고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북이 꿈이 내게 가르쳐 준 진리는 또 하나 있다.
거북이는 결코 벌러덩 뒤집혀서 하늘을 보고 눕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거북이에게 등이 땅에 닿도록 뒤집히는 것은
곧 죽음이자 통제력의 상실을 의미한다.
거북이가 가장 안정적이고 평온한 자세로 쉬는 모습은 따로 있다.
네 발을 대지 위에 단단히 딛고,
무거운 껍질 아래로 몸을 낮춘 채
고요히 웅크려 앉아 있는 자세다
외부의 어떤 비바람이나 소음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직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며 내면의 우주로 고요히 침잠하는 자세.
그것은 내가 그토록 염원하는 삶의 마지막 풍경,
좌탈입망(坐脫立亡)의 자세와도 닮아 있다.
한때 나는 거대한 환상(빨간 고래만 한 금붕어)의 등에 올라타
미친 듯이 물살을 가르며 달리는 짜릿함을 구원이라 믿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언젠가 바위에 부딪혀 산산조각 날 맹렬한 파국에 불과했다.
이제 나는 그 위태로운 등에서 내려왔다.
대신 나는 남한강의 흙길을 맨발로 천천히,
그러나 아주 단단하게
내 두 발로 딛고 걷는 거북이의 삶을 택했다.
느리지만 묵직하게 나만의 속도로 걷다가,
언젠가 생의 마지막 순간이 찾아오면 나는 눕지 않을 것이다.
대지 위에 배를 깔고 앉은 거북이처럼,
가부좌를 틀고 단단하게 앉아
내 삶의 문을 스스로 고요히 닫고 싶다.
돌처럼 차가웠던 내 인생에
따뜻한 심장(하트)을 얹어준 나 자신에게
다정한 인사를 건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