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문을 닫을 때, 내면의 우주가 열린다
더 큰 집을 원하고,
더 많은 가구를 들이고,
더 편리하고 화려한 것들로
내가 머무는 자리를 채워 넣는다.
어느새 집은
지친 몸을 쉬게 하는 안식처라기보다,
소유와 취향을 드러내는 진열장처럼 변해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삶의 끝자락에 서면 문득 깨닫게 된다.
사람이 마지막으로 돌아가는 곳은
그토록 넓고 화려한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결국 우리는
가장 작고 고요한 자리로 들어가게 된다.
육신이라는 무거운 짐을 벗고 들어가는 마지막 집,
관(棺)이다.
나는 오래전 남편과 함께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거부하겠다는 뜻으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DNR)를 등록해 두었다.
빈소도 관도 없는 무빈소 장례로,
이 생을 가장 단출하고 맑게 마무리하겠다는 뜻도 문서로 남겨 두었다.
나를 가두는 나무 상자도,
형식적인 곡소리도,
과장된 애도의 절차도 없이
바람처럼 조용하게 떠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약속을 가슴에 품은 뒤부터,
나는 죽음 이후의 공간만이 아니라
죽음 이전에 내가 머무는 공간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숨 쉬고 잠드는 이 방은 어떠한가.
이곳은 나를 진정으로 쉬게 하는 곳인가.
아니면 비워 내지 못한 것들이 쌓여
나를 더 무겁게 만드는 자리인가.
수행을 오래 하신 분들은
크고 화려한 전각보다
작고 고요한 장소를 택했다.
밖으로 통하는 문을 닫고,
세상의 소리와 빛을 끊어 내며,
좁은 공간 안에 머물렀다.
그 적막은 사람을 더 작아지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을 바깥으로 흩어지지 않게 하고,
마침내 자기 호흡과 내면의 미세한 떨림에
오롯이 집중하게 만든다.
소박한 좁은 방이
가장 넓은 해방의 공간이 되는 순간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머무는 자리를 조금씩 비워 내기 시작했다.
방 안의 불필요한 물건을 덜어내고,
시선을 어지럽히는 것들을 치우고,
오직 숨 쉬는 데 필요한 것만 남겨둔다.
어느 날은
조용히 방문을 닫고,
홀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내 숨소리를 듣는다.
이 고요한 훈련은
언젠가 그 누구도 함께 들어와 줄 수 없는
절대 고독의 순간을
두려움 없이 건너가기 위한
나의 작은 예행연습이다.
죽음은 어쩌면
세상과의 모든 연결이 조용히 끊어지는
가장 깊고 고요한 혼자의 방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안다.
텅 빈 공간은
결핍과 상실의 자리가 아니라,
존재의 본질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자리라는 것을.
물건을 비우고,
소음을 지우고,
오직 나라는 존재 하나만 남겨 두는 일,
그것은 고요하고 거룩한 축제다.
비로소 나는
죽음마저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는
온전한 생의 주인으로 돌아가는 듯하다.
삶의 마지막 날,
낯설고 두려운 어둠 속으로
나는 억지로 끌려가고 싶지 않다.
살아 있는 동안 이미 수없이
고요한 빈방 속에 앉아
우주와 단둘이 머물러 본 사람처럼,
가장 맑고 담담한 얼굴로
내 마지막 방의 문을 스스로 닫고 싶다.
스스로 문을 닫을 때, 내면의 우주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