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식(食) –흙의 냄새를 먹고 가벼워지다

좌탈입망(坐脫立亡)을 준비하는 자연식 밥상

by 명리하는 영화


3월의 따뜻한 봄날.


문득 흙내음이 그리워 들로 나갔다.


아직 찬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언 땅을 헤집고 올라온 달래와 냉이, 씀바귀를 한 바구니 캐왔다.


바구니 가득 담긴 푸른 잎사귀들에서는

서늘한 겨울의 냄새와,

따뜻한 봄의 숨결이 동시에 밀려왔다.

오늘 아침 그 냉이로 끓여낸 맑은 국 한 대접 앞에 앉으니 어린 시절 고향의 향수가 느껴진다.


잘게 썬 달래에 간장을 넣어 참기름으로 향을 더한 양념장을 김밥 위에 얹어 한 입에 넣으면, 이보다 더 맛난 밥상이 없다.


나의 좌탈입망 훈련은 이토록 일상적이고 단순하다.


지난 글에서 나는 좌탈입망의 걸음으로

먹는 것을 줄여야 가볍게 떠날 수 있다(小食)’를 이야기했다.

많이 먹어 무거워진 육신으로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허리를 곧게 세울 수 없으니 비워야 하리라.

소식이 욕망을 덜어내는 ‘비움’이라면,

자연채식은 그 비워진 자리에

맑고 가벼운 기운을 채워 넣는 ‘채움’이다.


나는 본래 열이 많은 사람이다.

명리로 보자면 병오일주, 불의 기운이 강한 삶이다.

이 열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를 지치게 하고 소모시키는 불꽃이기도 하다.


몸이 뜨거우면 마음도 쉽게 달아오른다.

생각은 빨라지고, 감정은 거칠어지며,

고요히 앉아 있는 일조차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먹을 것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자연에서 올라온 푸른 잎사귀와 뿌리채소는

내 안의 과도한 열을 가라앉히는 가장 단순하고 정확한 방법이었다.

맑은 음식은 몸의 열을 누그러뜨리고,

달래

그 고요함은 다시 마음으로 번진다.


좌탈입망의 경지에 올랐던 선지식들과 고승들의 삶을 보면 그 이유는 더욱 분명해진다.


한국전쟁 당시 오대산 상원사에서

좌탈입망으로 입적한 한암 스님을 비롯해,

꼿꼿하게 앉아 생을 마감한 이들의 밥상은

한결같이 맑고 가벼웠다.

그들은 입적에 앞서 서서히 곡기를 줄이고,

솔잎과 산나물, 맑은 물로 몸을 정화했다.

무겁고 탁한 음식 대신

흙에서 난 뿌리와 태양을 머금은 잎사귀를 먹으며

육신을 가장 자연의 상태,

‘가벼움의 상태’로 되돌려 놓았다.

삶의 찌꺼기를 남기지 않고

마른 잎처럼 떠나기 위한 준비였다.

결국 좌탈입망이란

단순히 앉아서 죽는 기술이 아니다.

몸의 무게를 덜어내고,

기운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고요로 되돌리는 일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그 상태를 만드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다.

그렇다고 당장 산속으로 들어가

극단적인 금욕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 제철 채소 중심의 밥상

대지의 시간에 맞춰 자란 식재료를 먹는 것


- 단순한 조리법

재료의 기운을 해치지 않도록 단순한 조리에

가볍게 익히는 것

- 식사 명상

한 입을 천천히 씹으며

흙의 질감과 태양의 온기를 느끼는 것

우리가 무엇을 먹느냐는

결국 어떤 몸으로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다.

그 몸은 영혼을 담는 그릇이 된다.


나는 오늘도 쌉싸름한 씀바귀를 씹으며

내 영혼이 머물 그릇을 맑게 닦는다.

씀바귀

언젠가 찾아올 마지막 날,


링거줄에 매달려 질척이는 대신

마른 낙엽처럼 가벼운 몸으로

꼿꼿이 앉아 이 세상을 떠나기 위해.

오늘도 나는

가장 아름다운 소풍의 길을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