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채워져 갈 마음의 공간
나는 부끄럽지 않다!
대학원 수업이 없는 날, 유치원에 간 딸을 데리러 가는 일은 나의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시간은 반드시 엄수 해야 한다. 오후 3시, 항상 유치원 문 앞은 아이를 데리러 온 엄마들로 가득했다. 독일 유학을 하면서 이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괜스레 울컥해진다.
삼삼오오(三三五五) 수다를 떨고 있는 엄마들 속으로 들어간다. 젠장, 나만 아빠다. 손에 식은땀 한 움큼을 쥐고 있지만 나는 부끄럽지 않다! 독일의 유치원은 통원차량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래서 반드시 부모 중 한 사람이 아이를 직접 데려가고, 데려와야 한다. 참 현명하다. "내 자식 안전은 내가 책임진다." 뭐 이런 거다. 한국에서 종종 일어나는 끔찍한 통원 차량 사고는 진짜 다른 나라 이야기다. 놀이방(Spielraum)에 딸이 보이지 않는다. 또 다른 무리의 엄마들 사이를 지나 바깥 놀이터로 가는 길에 갑자기 오래전, 한국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부끄러웠던 기억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 그러니까 연애도 못 하고 있던 총각 백수 시절의 기억이다. 이따금 회사원인 누나를 대신해 조카를 데리러 간 적이 있다. 오후 4시면 노란색 유치원 승합차가 아파트 입구 큰길까지 조카를 데려다줬다. 조카를 기다리며 길가에 서서 별의별 상상을 다 했다. "누나에게 용돈을 얼마나 뜯어낼 것인가.", "유치원 통원 선생님은 예쁠까?.","혹 선생님과의 로맨스?" 드디어 저 멀리 노란색 승합차가 보이기 시작했다. 얼굴 가득 머금었던 음흉한 생각을 지우려고 주변을 한번 휙 둘러봤다. 아파트 입구 큰길에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았다. 버스 정류장도 있고, 내가 어려서부터 다닌 교회도 길 건너에 있다. 그러고 보니 옆에 서너 명의 엄마들도 같은 승합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둘러싼 공간(空間)을 인지하는 순간, "맙소사! 순식간에 귓불이 뜨거워졌다. 남들 일(work)하는 시간에 뭐 하고 있는 짓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부끄러웠다. 승합차 문이 열리자, 아이들은 환한 미소를 보이며 각자의 엄마 품에 안겼다. 뒤따라 내리는 조카가 나를 보고 웃었다. 그리고는 다른 아이들처럼 달려와 나에게 안겼다.
"아! 이런... 망... 했다."
고개를 들지 못했다. 엄마들이 나를 가리키며 숙덕거리는 것만 같았다. 유치원 선생님은 낭랑한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작별을 고하고는 떠나버렸다. 얼굴도 못 봤는데... 승합차 문이 닫히면서 파생된 공기는 대기(大氣)를 가르면서 비수(匕首)로 변해 나의 짧은 상상 속 로맨스를 부숴버렸다. 정말 정말 부끄러웠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experience)이었지만, 이후에도 누나가 주는 용돈 몇만 원과 나의 부끄러움은 종종 교환되었다. 자본주의는 이처럼 매정하다. 매번 손에 식은땀 한 움큼 쥐고선 엄마들 사이에서 노란색 유치원 승합차를 기다렸다. 취업이 된 후에야 그 일을 그만둘 수 있었다.
지우고 싶은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꽤 오래전 경험임에도 딸의 유치원 앞에만 가면 불현듯 이 일이 생각났다. 아주 생생하게 펼쳐졌다. 독일어 단어는 그렇게 돌아서면 까먹는데 지우고 싶은 기억은 도통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 뇌에 있는 편도체(amygdala) 때문이다. 이름도 낯선 이것은 뇌의 변연계에 속하는 구조의 일부이다. 감정을 조절하고, 공포에 대한 학습 및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뇌는 감정이 강하게 실린 정보를 가치 있는 정보로 여긴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멘붕 왔어"와 같은 격한 감정을 느꼈을 때, 뇌는 편도체를 활성화시키면서 생존 모드로 전환된다. 그러면 그 상황은 고스란히 '장기기억'으로 저장된다. 나의 생존을 위해, 그 순간을 절대 잊지 말라고, 뇌가 나에게 주는 서비스인 것이다. 지우고 싶은 나쁜 일이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백수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 나이 서른에 백수인 것이 부끄러웠다. 용돈 몇 푼을 아쉬워하는 내가 한심했다. 유치원 승합차를 기다리기 위해서 아파트 입구에 나가야 하는 상황이 싫었다. 엄마들의 시선이 닿는 곳, 그 어디도 싫었다. 그 순간, 그 공간은 나에게 공포였다. "남들 일하는 시간에 '놀고 있는 사람'으로 보여질 것이다"라고 생각하니 낯이 뜨거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 실제 엄마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봤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딸은 생후 18개월 무렵부터 독일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나와 아내는 시간을 나눠서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에 딸의 유치원 등, 하원 동행을 분담했다. 나는 유치원 앞에 갈 때마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나의 '지우고 싶은 기억'에 대해 알지 못했던 아내는 나의 태도에 불만을 제기했다. 나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솔직히 유학의 경험을 통해 더 나은 사회적 성공을 꿈꿨던 나로서는 유치원 앞으로 가는 길이 '백수 시절'로 돌아가는 길 같았다.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렇지 않겠는가.
하나의 '심리적인 공간'
독일과 한국, '유치원 앞'과 '아파트 입구 앞'은 물리적으로는 전혀 다른 공간이지만 비슷한 상황(die Situation)을 제시하자, 동질의 성격을 가진 공간이 되었다. 공간 개념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공간을 반성의 대상으로 삼았고, 플라톤은 공간과학으로서의 기하학(幾何學)을 도입했다. 때문에 '공간'의 개념은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었는데, 일반적으로 공간이 물리적인 경계의 의미로 사용될 때는 그저 위치하거나 운동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공간의 의미를 심리적인 경계로 확대해서 생각하면 인간의 감정, 사고,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철학의 한 부분이 된다.
다시 말해, 독일의 '유치원 앞'과 '한국의 아파트 앞'은 나의 '지우고 싶은 기억'이 매개가 되어 하나의 '심리적인 공간'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아! 그래, 아내가 나의 태도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을 때, 이렇게 설명했어야 했는데... 당시에는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냐?"며, 세상 가부장적인 자세로 목소리만 높여 "어버버버..."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성질만 부렸다. 지나고 나니 후회된다. 미안해 여보!!
독일 사람들은 남의 사생활에 관심 없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독일 사람들은 남의 사생활에 진짜 관심 없다. 남의 사생활에 관심을 가져서도 안 되고, 알려고 해서도 안 된다. 독일 사람들은 사생활 침해에 분노한다. 아주 격하게.
유치원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는 엄마들은 수다 삼매경이다. 내가 그들 사이를 휘젖고 다녀도 나에게 1도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오히려 무시 당하는 것 같은 기분은... 그냥 기분 탓이겠지? 하하!!
"그래, 여긴 독일이잖아".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간다. 그래, 나는 진짜 부끄럽지 않다.
베를린 장벽 앞에만 서면 그렇게 눈물이 난다. 북녘땅에 두고 온 처자식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다. 오직, 조국 통일의 염원을 담아... 흑흑...
주변을 둘러보니 죄다 관광객이다. 그 틈에서 나만 청승맞다. 거참! 맨날 이런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