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채워져 갈 마음의 공간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던 지난봄. (여전히 우리는 위험 속에서 살고 있다.)미디어는 '사회적 거리 두기'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감염의 전파를 차단하기 위해 사람 간의 접촉을 최대한 삼가라는 것이다. 외출도 제한했다. 마트 가는 것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처음 몇 주는 밀린 책도 읽고, 영화도 보면서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이런 시간이 길어지면서 점점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직업은 있지만 직장은 없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너무 힘든 시간이다.
밖에는 나갈 수 없고, 하릴없이 소파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스마트폰으로 뉴스 검색을 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만 했다. 그런데 전혀 엉뚱한 기사에 눈길이 갔다. 내 처지보다 더 안타까운 이들이 거기에 있었다. 올해 대학교에 입학하는 20학번 신입생들. 그들 중 61%가 온라인 강의가 싫다고 했다. 한 학생의 인터뷰를 읽고 모처럼 소리 내어 웃었다. "더 좋은 학교와 학과를 가서 대학 생활을 즐기려고 재수를 했다"며 "오리엔테이션, 신입생 환영회가 모두 취소됐다. 캠퍼스 낭만을 즐기지도 못하고 온라인 강의로 대체하는 게 너무 싫다"고. 참으로 귀여운 학생 아닌가. 인터뷰 안에 그의 의도가 보여서 웃었다. 역시 제사보다는 젯밥에 관심 많은 나와 비슷한, 그런 학생이 무려 61%나 된단다. '캠퍼스 낭만'이라니... 그들에게 잠시 동질감을 느끼다가 과거를 회상해 본다.
새 학기가 시작됐다. 화창한 봄날, 푸르름을 머금은 캠퍼스를 거닐다가 이상형의 여학생을 만났다. 긴 생머리가 무척 어울리는 그녀. 같은 캠퍼스 안에 아름다운 여학생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그저 기분 좋다. 그 기분 그대로 강의실에 들어갔다. 강의실 안을 둘러보다가 좀 전에 그 여학생이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번 학기의 목표가 생겼다. 그녀의 이름과 연락처가 궁금해진다. 천천히 알아가자. 이제 겨우 개강일일 뿐이다. 마침 옆자리가 비어 있다. 기회다. 나는 용기를 내어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모습이 시각적으로 왜곡되지 않는 거리 안으로 들어왔다. 가까이서 보니 더 아름답다. 인기척을 느낀 그녀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옅은 미소와 함께 나에게 눈인사를 건넨다. 어쩔 줄 몰라 어색하게 시선을 피했다. "병신새끼!" 내 안에 누군가가 나를 심하게 꾸짖는다. 그녀의 눈을 피한 나의 시선은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에 포커스를 맞췄다. 커플링 따위는 없다. "됐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가 새어 나올 뻔했다. 심장 박동이 깊고 강하다. 그녀도 분명 나의 존재를 확연하게 느낄 것이다. 후각과 방사열의 감각이 증대된다. 옷깃을 들어, 내 몸의 냄새를 확인했다. 그새 향수향이 다 날아갔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녀의 샴푸향이 느껴진다. 콧구멍이 제멋대로 벌름거린다. 나의 감각들을 위무해보지만 소용없다. 이미 얼굴도 붉게 달아올랐으리라. 겨우 호흡을 다스려 보려는데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안녕?" 목소리에서 친근감이 느껴졌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선빵(?)에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녀를 안을 뻔했다. 간신히 팔의 움직임을 제압하고 어색하게 인사를 받았다. "어? 안녕" 갑자기 밀착된 거리에 그녀는 살짝 놀란 듯 잠시 몸을 웅크렸다가 다시 펴면서 "꺄르르르" 웃는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이 과목 학점은 A+이다!"
대학생 시절, 나는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길음역에서 1213번 버스를 기다리면서 이런 상황을 상상했다. 버스 유리창에 비쳐 옷매무새을 점검하고, 흘러내린 머리도 슬어 올렸다. 달콤 쌉싸름한 캠퍼스 낭만을 꿈꾸면서. 물론 이 상상이 이뤄진 적은 없다. (한번 이뤄질 뻔한 적은 있다. 분위기 좋았다. 그러나 현실의 그녀는 수강 신청변경 기간에 사라졌다. 눈물이 핑 돌았다. 속상해서) 그래서 좋은 학점을 받은 기억도 그닥. 인과관계 한번 확실하다.
좁은 취업문 탓에 캠퍼스 낭망이 사라져간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은 학생(61%의 신입생들)이 캠퍼스 낭만을 꿈꾼다. 어느새 눈빛을 교환하고, 어디에선가 만날 약속을 정하고, 그렇게 캠퍼스라는 공간 안에서 서로의 거리를 좁혀가며 연애를 시작한다. 미세한 자극에도 온몸의 피가 수런거리는 젊음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수천, 수만 가지의 낭만 스토리를 생산해낸다.
낭만을 바라는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본능에 가까운 이런 행동을 굳이 학문적으로 설명한 사람이 있다.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이다. 그는 복잡한 사회적 상황 속에서 인간을 관찰한 결과, "거리에 따라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 내용이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그가 ‘근접학(Proxemics)‘이라고 지칭한 이론은 20년 전, 나의 대학생 시절 상상과도 연결할 수 있다.
캠퍼스에서 마주친 긴 생머리 이상형과 나의 거리는 공적 거리(public distance)이다. 시야에 그녀의 전신과 약간의 주변 공간이 들어온다. 주변부 시야에는 다른 사람들도 존재한다.
강의실 안으로 들어오면서 그녀와 나 사이는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e)이다. 이 거리에서는 그녀에게 무례하게 보이지 않으면서도 그녀의 피부 조직, 복장 등이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용기를 내어 그녀의 옆에 앉았을 때 비로소 개인적 거리(personal distance)까지 접근했다. 왜곡되지 않은 시선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거리이다. 서로 인사하고, “까르르” 웃는다. 그녀와 나 사이에 작은 보호영역이 만들어졌다.
손만 뻗으면 터치가 가능한 이 거리는 친밀한 거리(intimate distance)이다. 친밀한 거리는 대략 45센티미터쯤 된다. 이 거리에서는 그녀의 존재가 확연해지고, 때로는 수런거리는 감각 때문에 그녀가 압도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모든 감각이 제멋대로 작동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 거리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상상 속에서 나는 공적 거리에서 친밀한 거리까지 몇 단계를 뛰어넘어 한 획에 해치웠다. 당연히 내 상상 속이니까 이런들 누구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다르다. 남자는 사랑의 감정이 일기 시작하면 분비된 아드레날린을 주체할 수 없어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숨이 거칠어진다. 남자는 여자에게 다가가고 싶어 미친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선다. 만약 여자의 감정이 남자와 비슷하지 않을 경우 여자는 뒤로 물러서는 것으로 답을 대신한다. 여기서 더 다가가면 그때부터 남자는 공권력의 지도를 받을 수도 있다.
에드월드 홀이 '숨겨진 차원(The Hidden Dimension)’에서 근접학 이론을 소개한 배경은 사람들이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을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새 학기를 기다리며 캠퍼스 낭만을 꿈꿨을, 대학교라는 새로운 공간에 대한 기대감으로 설렜을 61%의 신입생들에게 '사회적 거리 두기'는 참으로 느닷없는 일이었으리라. 한동안 "온라인 수업에 대한 불만이 속출한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그들의 불만은 어쩌면 강의의 내용보다는 젊음이 바라는 '거리 좁히기 시도'가 불가능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사람이 어떻게 죽어라 공부만 하나? 집중이 안될 때, 힐끔힐끔 시선을 훔쳐 가는 비타민 같은 여학생도 필요하고, 딴 생각을 불러오는 자양강장제 같은 남학생도 있어야 탈이 나지 않는다.
자칭 전문가가 미디어에 나와 '거리 두기'가 미덕인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 말한다. 이제 코로나19 이전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 말한다. 단어도 생경한 '뉴 노멀(New Normal)시대'를 살아가라고 강요한다. 그런데 "그럼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라는 사회자의 질문에는 자신의 책에 상세한 내용이 있다고 말한다.
"에잇! 책 홍보하러 나왔구먼!"
미래의 무슨 일을 일어날지 누가 알겠는가. 작년에 누구도 코로나19가 우리의 삶을 바꿀 줄 몰랐다. 예측은 예측으로만 끝나길 바라면서 61%의 신입생들을 위해 어설픈 예측 대신 희망의 말을 전한다. (우울한 나에게 웃음을 준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걱정하지 말자! 코로나바이러스가 낭만을 바라는 인간의 마음마저 손상하지 않는 한 당신들의 '거리 좁히기 시도'는 반드시 성공하게 될 것이다"라고.
"거리 두기 사회라도 연애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글, 그림 김영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