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사는 오늘 아침도 눈을 뜨자마자 싱크대로 향한다. 가지런히 쌓아둔 약통들 속에서 텔미누보 40/2.5mg(고혈압치료제) 한알을 꺼내어 , 사뿐사뿐 한 걸음으로 정수기 앞에 선다.
그리고는 120ml 용량의 정수를 출수해서 목구멍 속으로 콩알 크기만 한 약 한 알과 삼켜 낸다.
물맛이야 냉수가 기가 막히게 좋다만,
미지근한 물 한 컵이 혈관건강에 도움이 될까 , 실낱같은 기대를 하며 매일 미적지근한 물을 찾고 있다.
그리고는 익숙한 듯 심신안정에 좋다는 클래식 라디오 방송을 켜 둔다. 왜냐하면 클래식을 들으면 혈압이 더 효과적으로 낮아진다는 연구결과를 기사로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 이후로 매일 클래식 라디오 주파수를 고정으로 해두며 아껴 듣고 있다.
사실 클래식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고 잘 알지도 못한다.
그런 이유로 듣고 있는지 아닌지 정확히 알 수 없다만 , 다년간의 끈덕진 습관에는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그녀가 이런 루틴을 가지게 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36살이 되던 해 수축기 180/이완기 100 숫자를 훌쩍 넘나드는 혈압 수치를 진단받고 더 이상은 혈압약 먹기를 거부하면 큰일 난다는 의사의 단호한 처방을 받은 후부터다.
이쯤이면 김여사가 누구인지 궁금해질 때 아닌가, 궁금하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다.
안타깝게도 공개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니까,
나는 김여사다.
이에 더불어 미화 여사는 (나의 엄마를 칭함, 편의상 이제부터 미화라고 하겠다) 40살 되던 해 심한 고혈압 진단을 받고 환갑을 훌쩍 넘긴 지금 까지도 치료약과 반려하고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녀의 어린 딸은 (나)
짠맛이 주는 깊은 저릿함에 빠져버렸고 매운맛이 주는 뼈를 때리는 강렬한 통쾌함을 알아버렸다.
미화는 어린 딸의 짜고 맵게 먹는 식습관을 바꾸기 위해
귀에서 피가 나오기 직전까지 잔소리하고 음식을 최대한 슴슴하고 자극적이지 않도록 요리하였다.
아주 어린 아기 때부터 잔병치레의 역사가 깊고, 죽을뻔한 고비도 두 번 넘겨 키우는 내내 가슴을 졸였다고 미화(엄마)가 눈이 그렁그렁 하면서 이야기한 적 있다.
아마도 미화는 본인을 닮아 약한 딸이 고혈압을 물려받을까 봐 걱정했을 거라고 추측해본다.
그런 눈물 나는 노력에도
어린 딸은 미화의 눈을 피해 소금을 추가하고 슴슴한 찌개나 국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한탄을 했지만 한창 자라나는 어린 딸 밥은 먹여야 하겠으니 어쩔 수 없이 입에 맞도록 맛있게 마법 같은 요리로 바꿔서 내주었다.
게다가 아니나 다를까 대학 입학 후
일과 후에 맥주가 주는 청량한 쾌감을 알게 되었고 , 결국 소위 말하는 주당이 되어버렸다.
아주 오랜 날들을 마음껏 최대한 저릿하고 강렬하게 또는 청량하게 즐겼다.
한편 그러다 어느 날엔가 결혼을 하고 29살 첫아이가 생겼다.
아이를 무사히 출산했고, 아기 젖을 먹이고 키우느라 자극적인 맛과 청량한 맥주 한 모금은 꿈도 꾸지를 못했다.
몇 해 뒤 둘째 출산을 하고 똑같은 생활을 이어 나가던 중 큰 아아가 자라 또박또박 말을 하고
작은아이가 아장아장 걸을 무렵, 그즈음이었다.
한 모금의 청량감과 저릿한 강렬함을 몹시도 원하는
내 안의 갈망을 누르고 누르다 결국엔 터져 나오게 됐고,
그때부터 억눌렸던 폭주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잠들기만을 바라며 매일 육퇴 후에 맥주 한 캔과 불닭발, 불막창 불곱창을 놓고 홀짝거리는 생활이 반복됐다.(사실, 여러 캔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물론 운동이란 일절 하지 않았고,
4년간의 방탕한 라이프를 이어가던 중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물론 몸은 그동안 신호를 보내고 경고했을 거다.
경솔하고 둔해빠지게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고,
목 뒷덜미가 묵직해지고 자꾸만 눈앞이 어지러웠으며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속이 메스꺼웠다.
몸이 불편하니 잠도 잘 이루지 못하여 불면증의 나날을 보냈고, 병원에 갔다.
간단한 문진 후에, 혈압을 재고 당뇨검사 소변검사 혈액검사도 받았다.
매년 남편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건강 종합검진을 꾸준히 받고 있던 터라 혈압이 아주 조금 높은 건 알고 있었다.
게다가 지지난달에 검진을 받았으니까 큰 이상은 없을 거고, 불안한 마음을 스스로 다독였다.
언제부턴가 조심스레 곁을 숨죽여 따라다니던 높은 혈압이 이번에는 단단히 말썽이었다. 최고혈압은 180을 훌쩍 넘어 190에 가까웠고
최저혈압도 이미 숫자만으로 봐도 최저가 아니었다.
110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황스러운 숫자에 순간 눈을 의심했지만 이내 "혈압약만은 먹고 싶지 않아요." 말했다.
"이건 환자 본인선택의 문제가 아니에요. 큰일 납니다. 나이도 젊은데 걱정이 돼서 그래요. 무조건 드세요."
의사 선생님은 얼굴을 붉히시며 약간은 목소리를 높이셨다.
이것은 소중한 나의 반려 혈압약 이다.
그렇다, 고작 36년을 살았을 뿐이다. 그래서 받아들이기 싫은 거다.
미화를(엄마) 보자니 혈압약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평생을 먹고 있던데,
대체 앞으로 몇 년을 약을 먹으며 살아야 할지, 눈앞이 아득해졌다.
암튼 의사 선생님의 처방에 처방전을 들고 약국으로 가서 텔미누보 40/2.5mg (고혈압치료제)을 받아 나왔다. 너덜너덜해서 걸어오는 길에 누가 쳐다보든 말든 꺼이꺼이 울었다.
참으래야 참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러웠고, 한심했다. 알 수 없는 누구를 원망을 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서글퍼졌다.
돌이켜보면 자업자득(自業自得) 아니겠나.
자기가 저지른 일의 결과를 자기가 받음.
슬퍼하고 한탄만 하고 있는다고 달라질 건 없다,
그날부터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이미 이렇게 된 바에 담담하게 받아들이겠다.
가늘지만 길게 살아보자. 그것은 인생의 모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