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늘고 길게 가기로 했다

by 김영혜


고작 36년을 살았을 뿐인데,

고혈압치료제를 먹게 될 줄 정말이지 몰랐다.

수년간 가벼운 경고를 받았지만 ,

혈압약 복용만큼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떠도는 민간요법들을 어설프게 따라 하며 피해보려 했으나,

과부하가 걸린 몸이 그간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을 해보니 딱한 마음이 들었다.

혈압으로 비롯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여기저기에서 딱히

렇다 할 병명도 없는 아픔이 하나씩 드러나기도 했고,

그런 이유로 내 병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실 어쩌면 대단할 것도 없는 병(病)을,


1. 생물체의 전신이나 일부분에 이상이 생겨 정상적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아 괴로움을 느끼게 되는 현상.
2. ‘질병’의 뜻을 나타내는 말.




전문적인 의학 지식도 없고 ,

그렇다고 고혈압 병명을 얻고 나서 깊은 깨달음을 얻은 것도 아니다. 그래서 뭔가 막연했다.

일단은 처방받은 약을 꾸준히 먹기 시작했고,

매일 혈압 체크를 하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오므론 HEM-7156 자동 전자 혈압계도 주문했다.

그리고 또다시 민간요법을 응용해보기로 한다.


비트즙이 그렇게 좋다던데,

바로 두 박스 주문한다. 그리고 양배추즙과 사과즙도 좋다더라 , (이것으로 인해 한참 뒤, 또 다른 병명을 하나 더 얻을뻔한 아찔한 기억이 있다. 그건 나중에 말해야겠다)

아침에 눈을 뜨면 텔미누보 40/2.5mg 1알을 미지근한 정수와 삼키고,

싱크대에 설치된 라디오의 주파수를 93.9 Mhz에 고정하여 아름다운 당신에게를 듣는다

( 클래식을 들으며 고혈압약을 먹으면 약효가 높아진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래서 그것 또한 순순히 따라 해보고 )




그건 그렇고 , 혈압을 측정하고 각종즙들을 공복 뱃속에 몰아넣고 나면 오전 중요한 일정은 끝이 난다.

모름지기 운동은 역시 공복에 하는 거랬다.

혈관 건강을 위해서 11년 전에 샀던 숀리 X바이크를 다시 타기 시작했다.

참 잘 만들었나 보다 새삼 놀랍다. 어디 하나 녹슨 곳도 고장 난 곳도 없이 페달이 잘 돌아간다.(이렇게 주절주절 둘러대는 것은 이것이 10여 년간 방치되었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서다)


이렇게 정상 혈압 유지하는 것에

도움이 되고 , 좋다고 하는 것은 계속해서 순순히 따라 해 본다. 왜냐하면 의심 따위는 없기 때문이다.

의심하고 따지는 일은 생각만 해도 피로가 느껴진다.






이쯤이면 음식은 어떤 식으로 먹고 있는지 말을 안 할 수가 없겠다.

짐작은 하겠지만 역시 혈관에 좋다는 양파, 버섯, 토마토, 비트, 당근, 사과를 식재료로 주로 사용한다.

아이들이 고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대부분 고기를 메인으로

그날 냉장고 채소 상황에 따라서 재료를 함께 넣어 볶거나 지지고 부르르 끓여낸다.

마디로 요약하자면 좋다는 건 대체로 다 넣어 요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웬만하면 싱겁게 먹어야 한다는데, 그게 참말로 쉬운 일이 아니다.

나트륨을 줄여야 하는 것은 분명 하나, 싱거우면 손이 가지 않으니 항상 딜레마에 빠지고는 한다.

더불어 알코올을 섭취하는 것도 과히 좋지 않다 하는데 ,

그 청량함을 포기 하기 여간 어려운 일이 니다.

그래서 국물요리는 최대한 입에 대지 않으려 하고, 맥주도 마시는 횟수를 파격적으로 줄이고 있다.(노력 중이라는 것이지 성실하게 실행을 하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좋다는 것을 의심치 않고 착하게 따라 했고, 나쁘다는 것 또한 그대로 하고 있었.

쓰면서 생각을 하자니 조금 한심해서 피식 웃음이 난다. 이런 어리석고 말도 안 되는 혈압환자의 식단을 봤나,

이 와중에 밥은 귀리와 현미를 섞은 잡곡밥이라서 안심이 되는 경솔한 나다.






종종 친한 지인들은 내게 이런 말을 한다.

"또 아파?"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 바로 여기 있었네."

그들은 친하다는 명분 아래 걱정이랍시고 해주는 말이겠지만 그 한마디가 나를 꾀병 혹은 엄살쟁이로 만들어 버리는 것 같다.

처음에는 웃어넘기다가 어느 순간 듣다 보면 상처가 되어 버린다.

아프고 싶어 아픈 게 아니기 때문이고

누구보다 병원과 친한 사람이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 뒤로 웬만해서는 타인에게 아프다는 말을 숨기게 되는 소심쟁이가 되었다.

나답게 나를 보살펴가며 사랑하고 아껴준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나지막이 속삭여본다.

잘하고 있어 , 너답게 가늘고 길게 가면 되는 거야.



덧붙이는 사사로운 이야기

어느덧 40세가 된 ,고혈압 환자의 이어지는 이야기

" 나의 허벅지야 부디 버티거라 " 발행 준비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