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댁의 아이는 어떤가요
아빠, 젝스 만나러 가자
미락동의 봄과 여름과 가을
by
김영혜
Dec 17. 2022
아래로
아이들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면 몸도 마음도 보다 더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어
렴풋이 해본 적 있다.
한편 , 응열은(
아버지) 그의
인생 3분의 1 정도를 속해
있
던 중앙 고속버스 회사.
그
곳에서 정년퇴직을 하게 되었
다
.
먼동이 미쳐 트기도 전부터
깜깜 밤중까지
전
국
의
고속도로. 길고 끝없는 길을 홀로 외롭지만 묵묵하게 어떠한 사명감으로 달
렸
을 그는 한동안 채워지지 않는 헛헛함에 힘들어하였다.
그러던 중 돌연 응열(나의
아버지), 미화(나의
엄마)는 결정을 내
렸
다.
"두 딸들 공부 바라지도 다 했고,
이만하면
제법
훌륭하게
시집까지 보냈으니,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은 어엿하게 끝낸 거 아니겠느냐,
그러니 이제 우리의 인생을 뜻대로 살아보자."
그렇게
둘은 그들에게 나름 복잡했던 ,
강릉시내 교동택지의 아파트를 홀연히
떠나 귀촌을 하게 되었
다
.
강원도 정선의 미락 동이라는
마을이었다.
응열과 미화는 그야말로 맨손으로 땅을 일구고 , 집을 지을 때 들어가는 자재 하나하나 좋은 값에 들이기 위해 전국을 또다시 내달리며 구해왔다.
이런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흙바닥에 깨알같이 줄을 지으며
얼핏 봐도 제 몸보다 몇십 배는 커 보이는 짐을 이고 지고 함께 가는 개미가 생각나곤 한다.
내가 지켜본 그들의 인생은 그래 보였다.
황토벽돌 한 장 한 장. 마당에 자갈 한 알 한 알. 모래알
한 톨
까지 둘의 손끝이 닿지 않은 곳은 없었다.
미화와 응열은 고작 일꾼 몇 명들과 함께
개구리가 긴 잠을 깨고 눈을 떴던 그즈음부터 ,
코끝을 기분 좋고 달큼하게 간지럽히는 아카시아 군락들이 만개했을 때에도 , 그러다가 끝내 동네 어귀에서부터 봉숭아 무리들이 소담스러움을 너도나도 뽐낼 때쯤이
돼서야
황토벽돌을 쌓아 올리는 것을 그만둘 수 있게 되었다.
반년이 넘게 걸린 두 사람의 개미 같은 투혼이었다.
당시 둘째가 뱃속에서 있을 때였는데 입덧이 너무 심해서 미화의 음식밖에 먹질 못하여 몇 달 정도는 미화와 응열 옆에 딱 붙어 있었기 때문에 이 모습을 지켜볼 수가 있었다
.
미화와 응열이 한땀한땀 올려낸 집
완공된 집을 보고 있자니 눈이 왜 그렇게 뜨거워졌는지
이내 그렁그렁 해지고 끝내는 꺼이꺼이 소리 내어 눈물을
줄
줄 쏟아냈다.
내 부모가 그토록 피땀 흘려 일군 그들의 전부가 담긴 살아온 인생의 완결판 이자, 우리에게 남겨질 선물이기도 했으니까,
처음에는 이렇게 아이들보다 내가 더 좋아했다.
어떤 날에는
비 개인
하늘 위로 미처 거치지
못했을
구름과 병풍처럼 펼쳐진
강원도의 산을 벗 삼아 일곱 빛깔 무지개가 걸리기도
했
고,
보기 좋은 풍경들에 눈이 호강을 했다.
산 허리 위로 일곱빛깔 무지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내내 같은
공간이지만
위대한
자연이 보여주는 모습은
생생하게도 너무나 달랐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웠다.
첫
해 봄에 미락동을 찾아갔다가
계절이 바뀌고
여름
쯤에 방문했을 때
에
는 일정해야 하는 길의
모습이 너무
나도 바뀌어서
우리 부부는 서로 마주 보고 뭔가 멍청한 얼굴을 하며
"길을 헤매고 있는 것인가
,
여기는 어딘가.
대
체
우린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가 "
방
황하며 한동안 착각을 할 정도였으니까.
아이들과 함께 여름의 농작물을 수확하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가족들이 함께 모여
야무지게 땅을 파고
한 줄기에 매달려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단란하고 익숙한 성취감, 행복감을 맛보았다.
화기애애 맞다. 그 자체였다.
지붕 위
로 날아가는 잠자리도 이토록 예뻐
보일 수가,
또한, 아이들은 미화와 응열이 마당에 걸어둔
소
담한 가마솥
으
로 밭에서 막 캐어낸
옹골진 감자를 넣고 김이 모락모락 나
도
록
밥을 해주는 것을 좋아
했
다.
(미락동 집의 모든 것은 미화와 응열
두 사람의 작품
이
며 소중한
결과물이다)
집접 키운 유명한 강원도 감자 로 가마솥에 지은 밥
올망졸망한 자갈이 가득한 마당에 자그마한 텐트를 치고 아지트처럼 들어가서 노는 것도
기
뻐했다.
맹렬했던 한낮의 무더위가 꺾여가는 초저녁 즈음엔 행복이와 동네 산책을 하기도 했
고
,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엇보다 크게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 자리 잡고 있는 즐거운 추억은
낮 동안 후끈대던 열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맥없이 물러가고 살갗에
스
치는 바람이 제법 차갑다고 느껴
지
던 밤.
시원한 공기와
깨끗한 밤하늘의 냄새를 맡
던
때에.
미화가 가마솥에 뜨끈하게 쪄준 옥수수
를
(밭에서 바로 딴 달큼하고 옹골게
여문) 먹으면서
핑크퐁 빔 프로젝트를 틀어놓고 전래동화를 보던 때였다고
이야기하고는
한다.
여름방학이면
이토록
즐거운 추억을 쌓았던
미락동을 아이들이 오래도록 간직하고 자라는 내내 무언가 채워지지 않아
허전할 때
이따금씩 꺼내어 보았으면 하는
마
음
이다.
빛줄기 하나 없는 새까만 밤하늘에서 난생처음 북두칠성을 맨눈으로 보는 경험을 해보았다.
너무나도 감격스러웠는지 뭔지, 순간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아이들도 나처럼 느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
우리가 여름 밤 하늘에서 보았던 밝은 북두칠성처럼 누군가 길을 잃었을 때 나침반이 되어 줄 수 있는
밝게 빛나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그
날에도 글을 써 내려가는 지금에도 진심 바란다.
나침반이 되어줄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
덧붙이는 사사로운 이야기
젝스
는
외갓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입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미락동에 가고 싶을 때마다
젝스 만나러
가자라고
합니다
.
keyword
인생
아버지
자연
38
댓글
8
댓글
8
댓글 더보기
새 댓글을 쓸 수 없는 글입니다.
김영혜
가족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에세이스트
반갑습니다.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는 김영혜의 브런치입니다. <오늘도 아이와 한판하고 저녁밥상을 차립니다> 저자 이고요.
구독자
325
제안하기
구독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 젝스 또 만나러 가자
3학년 2반 친구들이 만든 가정통신문에 대한 소감
매거진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