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젝스 만나러 가자
미락동의 봄과 여름과 가을
아이들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면 몸도 마음도 보다 더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해본 적 있다.
한편 , 응열은(아버지) 그의 인생 3분의 1 정도를 속해 있던 중앙 고속버스 회사. 그곳에서 정년퇴직을 하게 되었다.
먼동이 미쳐 트기도 전부터 깜깜 밤중까지
전국의 고속도로. 길고 끝없는 길을 홀로 외롭지만 묵묵하게 어떠한 사명감으로 달렸을 그는 한동안 채워지지 않는 헛헛함에 힘들어하였다.
그러던 중 돌연 응열(나의 아버지), 미화(나의 엄마)는 결정을 내렸다.
"두 딸들 공부 바라지도 다 했고,
이만하면 제법 훌륭하게 시집까지 보냈으니,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은 어엿하게 끝낸 거 아니겠느냐,
그러니 이제 우리의 인생을 뜻대로 살아보자."
그렇게 둘은 그들에게 나름 복잡했던 ,
강릉시내 교동택지의 아파트를 홀연히 떠나 귀촌을 하게 되었다.
강원도 정선의 미락 동이라는 마을이었다.
응열과 미화는 그야말로 맨손으로 땅을 일구고 , 집을 지을 때 들어가는 자재 하나하나 좋은 값에 들이기 위해 전국을 또다시 내달리며 구해왔다.
이런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흙바닥에 깨알같이 줄을 지으며
얼핏 봐도 제 몸보다 몇십 배는 커 보이는 짐을 이고 지고 함께 가는 개미가 생각나곤 한다.
내가 지켜본 그들의 인생은 그래 보였다.
황토벽돌 한 장 한 장. 마당에 자갈 한 알 한 알. 모래알 한 톨 까지 둘의 손끝이 닿지 않은 곳은 없었다.
미화와 응열은 고작 일꾼 몇 명들과 함께
개구리가 긴 잠을 깨고 눈을 떴던 그즈음부터 ,
코끝을 기분 좋고 달큼하게 간지럽히는 아카시아 군락들이 만개했을 때에도 , 그러다가 끝내 동네 어귀에서부터 봉숭아 무리들이 소담스러움을 너도나도 뽐낼 때쯤이 돼서야
황토벽돌을 쌓아 올리는 것을 그만둘 수 있게 되었다.
반년이 넘게 걸린 두 사람의 개미 같은 투혼이었다.
당시 둘째가 뱃속에서 있을 때였는데 입덧이 너무 심해서 미화의 음식밖에 먹질 못하여 몇 달 정도는 미화와 응열 옆에 딱 붙어 있었기 때문에 이 모습을 지켜볼 수가 있었다.
미화와 응열이 한땀한땀 올려낸 집완공된 집을 보고 있자니 눈이 왜 그렇게 뜨거워졌는지
이내 그렁그렁 해지고 끝내는 꺼이꺼이 소리 내어 눈물을 줄줄 쏟아냈다.
내 부모가 그토록 피땀 흘려 일군 그들의 전부가 담긴 살아온 인생의 완결판 이자, 우리에게 남겨질 선물이기도 했으니까,
처음에는 이렇게 아이들보다 내가 더 좋아했다.
어떤 날에는 비 개인 하늘 위로 미처 거치지 못했을 구름과 병풍처럼 펼쳐진
강원도의 산을 벗 삼아 일곱 빛깔 무지개가 걸리기도 했고,
보기 좋은 풍경들에 눈이 호강을 했다.
산 허리 위로 일곱빛깔 무지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내내 같은 공간이지만
위대한 자연이 보여주는 모습은 생생하게도 너무나 달랐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웠다.
첫 해 봄에 미락동을 찾아갔다가
계절이 바뀌고 여름쯤에 방문했을 때 에는 일정해야 하는 길의 모습이 너무 나도 바뀌어서
우리 부부는 서로 마주 보고 뭔가 멍청한 얼굴을 하며
"길을 헤매고 있는 것인가 , 여기는 어딘가. 대체 우린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가 " 방황하며 한동안 착각을 할 정도였으니까.
아이들과 함께 여름의 농작물을 수확하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가족들이 함께 모여 야무지게 땅을 파고
한 줄기에 매달려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단란하고 익숙한 성취감, 행복감을 맛보았다.
화기애애 맞다. 그 자체였다.
지붕 위로 날아가는 잠자리도 이토록 예뻐 보일 수가,
또한, 아이들은 미화와 응열이 마당에 걸어둔
소담한 가마솥으로 밭에서 막 캐어낸
옹골진 감자를 넣고 김이 모락모락 나도록
밥을 해주는 것을 좋아했다.
(미락동 집의 모든 것은 미화와 응열
두 사람의 작품이며 소중한 결과물이다)
집접 키운 유명한 강원도 감자 로 가마솥에 지은 밥올망졸망한 자갈이 가득한 마당에 자그마한 텐트를 치고 아지트처럼 들어가서 노는 것도 기뻐했다.
맹렬했던 한낮의 무더위가 꺾여가는 초저녁 즈음엔 행복이와 동네 산책을 하기도 했고,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엇보다 크게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 자리 잡고 있는 즐거운 추억은
낮 동안 후끈대던 열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맥없이 물러가고 살갗에 스치는 바람이 제법 차갑다고 느껴지던 밤.
시원한 공기와 깨끗한 밤하늘의 냄새를 맡던 때에.
미화가 가마솥에 뜨끈하게 쪄준 옥수수를(밭에서 바로 딴 달큼하고 옹골게 여문) 먹으면서 핑크퐁 빔 프로젝트를 틀어놓고 전래동화를 보던 때였다고 이야기하고는 한다.
여름방학이면 이토록 즐거운 추억을 쌓았던
미락동을 아이들이 오래도록 간직하고 자라는 내내 무언가 채워지지 않아 허전할 때 이따금씩 꺼내어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빛줄기 하나 없는 새까만 밤하늘에서 난생처음 북두칠성을 맨눈으로 보는 경험을 해보았다.
너무나도 감격스러웠는지 뭔지, 순간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아이들도 나처럼 느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
우리가 여름 밤 하늘에서 보았던 밝은 북두칠성처럼 누군가 길을 잃었을 때 나침반이 되어 줄 수 있는
밝게 빛나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그날에도 글을 써 내려가는 지금에도 진심 바란다.
나침반이 되어줄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
덧붙이는 사사로운 이야기
젝스는 외갓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입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미락동에 가고 싶을 때마다
젝스 만나러 가자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