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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 세상은 내편 Oct 23. 2023

이곳은 안전한 글쓰기 방

울어도 괜찮아요.

50대 박지현 님이 평소와 다르게 초췌하고 어두운 낯빛을 하고 강의실에 들어섰다.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으신가 걱정이 된다.


오늘도 모둠으로 앉아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글을 쓴다. 글쓰기 교실은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다.


각자 쓴 글을 낭독하는 시간, 박지현 님의 차례가 왔다.

그런데 글을 쓰지 못했다면서 울먹이기 시작했다.

"제가 너무 힘들어요.  저 우울증인 것 같아요. 저는 항상 어떤 상황이 와도 이겨내 왔어요. 그런데 아이도 사춘기가 왔는지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퇴직하고 방에만 있는 남편도 힘들어요. 오늘 글쓰기 수업도 안 오려다가 그래도 여기라도 와야 괜찮아질까 하고..."

결국 눈물을 터트렸다. 그녀의 눈물에 너도나도 티슈와 수건을 건넸다.

"아이고..." 사춘기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40대 이정화 님이 안타까움에 나지막히 속삭였다.


글쓰기 시간에 소중한 것에 대한 주제로 글을 쓴 적 있다. 박지현 님은 늦은 나이에 아들을 낳았다. 총명하고 귀여운 아들은 엄마의 기쁨이었고 영어공부방을 차렸을 때 형누나들과도 잘 어울리며 서회성 좋은 아이로 잘 자라주었다. 중학생이 된 아들은 최근에 갑자기 공부에 손을 놨다. 하지만 지금 사춘기가 쎄게 와서 그럴거라 생각하고 지켜보는 중이라고 했었다. 좀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이 시기가 잘 지나가길 바란다고.


하지만 아들이 대화도 거부하고 소통이 차단되어 정적이 흐르고 집안의 모든 상황이 더욱 힘겹게 다가왔나보다. 나는 어떻게 해드려야 할지몰라 일단 곁에 앉아 가만히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부모인 입장에서 공감할 수 있지만 아직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을 뭐라 위로해야 할지몰라 난감했다. 하지만 글쓰기 방에는 여러 구원자가 있었다.


"그거 다 지나가요. 조금만 기다려봐요. "

"어떻게 이렇게 사나 싶은데도 살아집디다. 지금 그거는 지나갈 일이고 다시 돌아올거라."

가장 나이가 많은 70대 이은희 님과 강수지 님이 인생의 선배로서 따뜻하게 한 마디를 건넸다.


힘들 때 '힘내'라는 말은 힘이 안 된다.

그런데 힘들 때 그것도 다 지나간다라는 말은 가끔 위로가 된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분들이 진심으로 건넨 그 말은 더 큰 위로가 되는 것 같다.

"제가 오늘 여기 나오길 잘했네요. 여기 계신 어른들 말을 들으니까 마음이 좀 갈라앉는 것 같아요."

참지 못해 흘렀던 눈물은 어느새 말랐고 박지현 님은 살짝 민망함의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글쓰기 방은 안전한 공간이 되어 있었다.


가족은 가깝다. 가까워서 지켜보기 힘들다.

가족은 기쁨도 슬픔도 나눌수 있다. 슬픔의 대상이 가족이면 하지 못하는 말도 생긴다.

친구는 너무 잘 알아서 때로는 조언같은 말이 비수처럼 꽂힌다.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동지들은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최소한 글쓰기 수업이 열리는 공간에서는 글로 서로를 알아가며 막연히 가지고 있던 사람에 대한 편견은 깨고 이해를 바탕으로 공감력은 커진다.


이해 받는 공간, 그러니까 받아들여지는 공간이다.

수용해 주는 어른들이 늘 자리를 지켜주셔서 그런걸까?

세대소통을 하려면 글쓰기 수업을 남녀노소 함께 하라고 말하고 싶다.


어쩌면 우리 수업의 구성원들이 특별해서일지도.


(*수강자의 이름은 모두 예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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