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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세상은 내편
Oct 23. 2023
인터뷰가 주는 두 가지 경험
그냥 들어드릴게요!
60대 박정현 님은 내면 깊은 곳에 근원적 아픔이 있었다.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몇 년을 칩거하다시피 하다 밖으로 나가봐야겠다 생각하고 처음 문을 두드린 것이 글쓰기 수업이라고 했다. 마음 깊이 있는 것을 꺼내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한 번은 털어내고 싶다고 했다.
6월 글쓰기 과정 중에 서로를 인터뷰하는 시간이 있다. 인터뷰 글쓰기를 통해 내가 주고 싶은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오롯이 들어주는 경험과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얻는 배움이다. 그날은 안 나오신 분들이 많아서 짝이 안 맞아 내가 박정현 님을 인터뷰했다. 질문을 통해 인터뷰를 하려고 했지만 지금까지 삶을 순차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하셔서 그냥 가만히 들어드렸다.
누군가의 삶을 오감을 사용하여 집중하며 듣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담담하게 차분한 목소리로 전해주는 박정현 님의 이야기를 들을 때 숨이 턱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신체 반응을 겪었다. 어디서 들어보지 못한 삶이었다. 드라마보다 실제 삶이 더 드라마틱한 경우가 많다고 하더니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분들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인생을 그리는 소설의 소재가 될만했다. 글쓰기 수업에서 나눈 이야기 외에 사전 정보가 별로 없는 상태에서 내가 인터뷰어로서 듣고 싶은 이야기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나 지금 가장 관심 있는 것 등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질문 없이 1시간 정도 지속되는 이야기를 오롯이 들으면서 많은 낯선 감정들이 올라왔다.
이해하거나 공감하기 전에 주인공이 계속 행복해지지 못하고 고구마를 먹은 듯 전개되는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랄까? 사는 동안 상처가 얼마나 많았을까? 왜 이렇게 여자의 삶은 힘든 걸까? 이렇게 나오기까지 보통 용기 낸 것이 아니겠구나! 박정현 님에게 어릴 때 한 장면으로 기억하는 느낌과 감정을 들었다. 모두가 떠난 학교 운동장에 남아 엄마를 기다리고 있으면 놀이터가 괴물로 보였었다고 했다. 삶에서 웃으며 즐거운 날도 분명히 많았겠지만 힘든 이야기들이 터져 나온 것은 털어내지 못한 어두운 감정의 덩어리들을 끌어올리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에 그동안 힘들게 살면서 놓친 것들이 많아서 이제 나를 함축해서 살고 싶다는 말에 긴장으로 경직되었던 내 마음이 풀어졌다. 사람과의 대화를 시도하면서 요즘 시선 처리가 고민이라는 말이 반가웠다.
집에 와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했다.
다음 시간에 각자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해 와서 읽었다. 나는 매우 개인적인 서사가 담긴 인터뷰 글이라 정현 님에게 읽어도 되냐고 먼저 물어봤다. 오히려 듣고 싶다고 읽어 달라고 하셨다.
정리한 글을 읽는데 더욱 소설 같다.
정현 님은 인터뷰를 하는 동안 눈을 맞추고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들어주는 일이 좋았다고 소감을 말했다. 그리고 한 번 끄집어내고 나니까 정리가 되는 기분이라고 했다. 이제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긍정적인 삶을 시작하려고 한다며 글쓰기 동지들에게 두 손을 내밀며 잡아달라고 했다. 모두가 손을 잡아주며 응원했다.
최근에 건강이 나빠져서 못 나오고 계시지만 곧 나와서 사람들과 눈 맞추고 즐거운 경험으로 삶을 채우실 거라 믿는다.
(*수강자의 이름은 모두 예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