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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May 09. 2021

고립된 사람은 어찌나 막무가내가 되는지

셋, 책일기

글쓰기는 반드시 열 번 베껴 쓰고 열 번 소리 내어 읽었는데도 흠을 찾지 못한 뒤에야 멈춥니다. (...) 진실로 하루에 한 번 고쳐서 한 해에 약간 편을 얻되, 이 약간 편 가운데서 깎아 내어 약간 편만 남깁니다. 그렇게 십 년을 지낸다면 한 권쯤 될 것입니다. 더 이상 고칠 것도 없고 더 이상 깎아 낼 것도 없는 글을 한 권 정도 쓴다면 내 마음에 꼭 맞을 것입니다. 한 권 분량의 글로 십 년을 바꾸는 것은 비록 고생스럽고 수확이 별로 없다 하겠지만, 십 년의 노력으로 천년만년을 기약한다면, 크게 수지맞는 장사요 또한 바랄만한 일입니다. - 306~8     

변명으로 시작합니다. 위와 같은 선인들의 지혜를 접하고 나니, 감히 글을 적어 내보이는 일에 소극적으로 되었어요. 하고 싶은 말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서,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에서 끝을 내야 할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 거예요. 아마도 여러분과 함께 쓰는 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고치고 뒤집고 미루다가 그냥 묻어두고 말았을 거예요. (실제로 그렇게 묻어둔 소설이 상당하답니다.)      


여러분, 저는 아주 오랫동안 혼자서 글을 써왔어요.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지만, 또 내보이는 것은 두려웠거든요. 그러다 보니 불안정한 상태가 되어서 유명 작가님들의 소설책을 읽기가 싫어졌어요. 그들은 저를 알지도 못하는데 괜히 질투도 나고 자격지심도 들고 그래서요. 정말 이상하죠? 그들만큼 잘 써보려고 노력하고 공부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제 세상에서 배제하려고 했어요. 고립되어 유일해진 세상 속에서 일등이 되려고 한 거죠. 휴, 정말 이상한 사람이네요.      


하지만 여러분도 아시죠. 혼자서 고립된 사람들이 얼마나 불통스러워지는지요. 고립되는 과정에서 치우치게 되고 하나씩 타협해가면서, 모든 기준과 도덕성까지 잃어버리게 되잖아요.      


"저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권리에 관심이 많아요. 제가 비건이 아니면서 채식의 필요성과 채식이 선사하는 건강한 힘에 관심이 많은 것처럼요."


리밍 님이 이렇게 쓰셨죠. 마음이 밝아지는 문장이라 한동안 곱씹었어요. 리밍 님은 저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신 저와는 정말 다른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리밍 님의 문장은 리밍 님을 닮아서, 되어갈 때의 힘찬 에너지와 될 것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하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제 문장을 읽어보니, 예전에 보지 못했던 문제점이 보이더라고요. 제 문장은 언제나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죄책감이 묻어 있었어요. 혼자서 쓸 때는 몰랐던 문제점을 찾은 거죠.      


제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저를 불쌍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제 일상을 아는 주변 사람들은 저를 게으르고 느긋하다고 표현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스스로 너무 혹독하게 굴지 말라고 제게 조언해주곤 했었어요. 그 격차가 이상하다고,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혼자서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알게 되었어요. 이제부터는 붙잡지 못한 이상에 아쉬워하지 말고, 오늘의 성취를 기뻐하는 데 더욱 집중해야겠어요.      


저는 일직이 이렇게 들었습니다. 글은 말의 꾸밈이고, 말은 마음의 표현이며, 마음은 본성의 신령함이고, 본성은 하늘이 내려준 명이라고 말입니다. (...) 삼대 이전에는 이른바 글이란 것이 없었습니다. 안에 충만하고 속에 가득하면 어쩔 도리 없이 밖으로 배출됩니다. 그것을 얻으면 덕이 되고 그것을 행하면 도가 되며, 사람들에게 알리면 말이라 하고, 죽간에 쓰면 글이라 하였습니다. 네 가지는 경우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나 실상은 하나입니다. -23     


정말 그래요. 글은 말의 꾸밈이고 말은 마음의 표현이에요. 글이라는 게 생각보다 진실되어서 글쓴이를 온전히 담아내더라고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였어요.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스스로 정의하기 위해서는 타인과 관계해야 하는 거였어요. 어쩌면 우리를 성장하게 하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뿐일지도 모르겠어요.      


리밍 님은 박수를 쳐주고 싶다고 하셨는데, 사실 저도 결혼을 하는 게 많이 두려워요. 지금까지 유연한 사고를 지향해 왔던 탓인지, 어떤 상황에도 잘 적응하곤 하거든요. 읽지도 쓰지도 않는, 누군가의 아내이고 누군가의 엄마인, 단지 그것뿐인 인생에 만족하게 될까 봐 두려워요.


지금의 남자친구를 아주 많이 좋아하니까, 그가 웃는 얼굴을 보기 위해서 시간을 들이고 싶을 테지요. 아이가 태어나면, 사랑스러운 그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주고 싶을 거예요. 일상적이고 즉각적인 기쁨을 위해서, 영혼의 만족감 따위는 한참 뒤의 일로 미뤄두었다가 결국 흐려질지도 몰라요. 그게 두려웠어요.

    

하지만 더 두려운 것이 생겼어요. 제 세상에 저 혼자 고립될까 봐 더 무서워요. 위에서 말한 것처럼, 한쪽으로 치우쳐서 자신의 단점을 찾아낼 생각도 하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워요. 남자친구는 저와는 반대되는 사람이라서, 한쪽으로 치우치는 저를 중간으로 끌고 나오는 역할을 해주거든요. 무대포 막가파의 망상 속에 고립되지 않도록, 저를 끊임없이 세상으로 불러들이거든요. 더 무서운 것을 피하기 위해 결혼이라는 두려움을 떠안게 된 상황입니다?!      


내 마음에 꼭 든다면 내 글쓰기는 일이 다 끝난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겪는 고생과 어려움이 너무 심합니다. 게다가 또 내 글은 다른 사람들이 지을 수 있는 바가 아니니, 필시 세상 사람들도 잘 모르고 집안사람들도 이해를 못할 것입니다. (...) 그런데 이 일은 조금만 성취가 있으면 다른 일은 모조리 폐하고 맙니다. -306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함께하게 되어 너무 기뻐요. 우리는 각자가 풀어내야만 하는 이야기를 필시 가슴에 품고 있겠죠. 그 이야기를 하나씩 세상에 꺼내놓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지 서로 알고 있잖아요. 하지만 그것을 기어이 해내고 나면 그 성취감이 얼마나 큰 지도 알고 있지요.     

 

리밍 님 말씀하신 것처럼, 또 소개해주신 <<자아, 예술가 엄마>>에서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 서로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기로 해요. 어떤 핑계에 젖어 있어도 우리 서로를 끌고 나와 글을 쓰게 하고 세상에 내보이게 도와주도록 해요. 혼자 쓰고 만족하는 고립된 상태에 서로를 방치하지 말도록 해요. 어떤 괴로움도 외로움도 힘듦도 글로 승화할 수 있도록 우리 서로에게 자극제가 되어주어요. 자신만의 세계에 고립되지 않도록.      


이번 한 주 동안 <<한군 산문선>> 제9편, ‘신선들의 도서관’을 곁에 두었답니다. 삼국 시대부터 20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한문으로 적힌 산문을 현대 국어로 번역하여 엮은 책인데요. 멋진 글이 많기도 하지만, 꿈을 타협하지 않는 약간의 꼰대력이 필요한 것처럼 느껴져서 선택했어요. 내용을 감히 간추릴 수도 없을 만큼 선조들의 지혜가 가득 담긴 책이니, 책장에 꽂아두신다면 언젠가 적어도 한 번은 여러분의 꽉 막힌 가슴을 뻥 뚫어줄 것이라 자신 있게 이야기해봅니다.      


오늘도 정돈되지 않은 글이 마음에 차지 않는 지각 대장

영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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