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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지 Jun 22. 2020

아르바이트생에게 해고를 고했다

감사한 인연에 대하여



이제 너와 함께 할 수 없어


목구멍에서 한참을 맴돌던 말이 그제야 튀어나왔다.  함께 할 수 없다니. 무슨 오디션 프로그램의 대사도 아니고. 수십 번 곱씹었던 대사는 생각보다 식상하고 담담했다. 


그런데 그녀의 반응도 담담했다.  되려 그녀는 나의 선택에 응원을 하며, 이제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라 했다. 


그렇게 나는 내 첫 아르바이트생, 노밍에게 해고를 고했다.    



그녀의 책상 맞은 편엔 한국어 공부한 흔적이 넘쳤지만 책상위에는 몽골 프로그램이 켜진 타블렛이 항상 놓여 있었다. 


노밍과 알게 된 것은 햇수로 따지면 2년 정도 된 듯하다. 그녀는 몽골에서 온 유학생이었는데, 처음 그녀를 알게 된 것은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 부업으로 운영한 셰어하우스를 통해서였다. 그녀는 우리 집의 세입자 었고, 처음에는 그녀가 내게 월세를 냈었다. 그렇게 약 삼 개월 정도 살다가 그녀는 돌연 집을 나가겠다고 했는데, 이유는 심플했다.  그녀가 월세를 지불하면서 내 집에서 지내기에 약간 부담을 느끼고 있던 차, 무료로 숙식을 제공해주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한 것이다.  그렇게 아쉽지만 미련 없는 이별을 하고,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반년 만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반년만에 한 첫 번째 질문은 꽤나 당황스러웠다. 



“내게 일자리를 줄 수 없을까?” 


그리고 그녀는 지난 반년 이야기를 쭉 얘기했다.  그녀는 거의 서울에서 손꼽는 대형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했었다. 6인실 도미토리 침대의 한 칸을 조건으로 게스트하우스를 청소하는 일을 했는데, 이 악덕업체는 그녀가 어떤 일정 때문에 일을 빠지면 되려 그녀에게 벌금을 물었다.  겨우 6인실 방에서 '한 칸'을 제공하는 일자리 치고, 그녀에게 부과되는 일은 너무 많았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갖은 횡포를 부리고 있었다.  뭔가 잘못되어도 잘못된 줄 알았던 그녀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었고,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감사하게도(?) 나었던 것이다.  자기와 의사소통이 되면서, 왠지 돈이 많을 것 같고 (그때 그 셰어하우스가 월 50짜리 월세였다는 것은 세입자들은 아무도 몰랐다.) 나이 또래 역시 비슷해 종종 고향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사람. 그녀가 나에게 연락했던 것은 꽤나 자연스러운 절차 었던 것 같았다. 


다르게 생각하면, 그녀는 정말 필요에 의해 나에게 갑작스레 연락을 한 꼴이다.  하지만 그 갑작스러운 부탁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나에게 솔직하게 도움을 청한 그녀를 거절할 수 없었고, 내심 내가 그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기뻤던 것 같았다. 문제는 내게는 그녀에게 줄 일자리도, 월급을 주고도 넉넉한 벌이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그녀에게 당차게 일자리를 약속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나는 내 첫 번째 게스트하우스를 오픈했고, 그녀에게 청소 일을 맡겼다.  한 달 동안 번 돈에서 월세를 제하고 그녀에게 월급을 주니 남는 돈이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그래도 '제대로 된' 노동 조건에서 일할 수 있다는 사실, 나 역시 지나친 업무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충분히 기뻤던 것 같다. 

 

그리고 그녀는 아주 훌륭한 아르바이트생이었다.  그녀의 청소를 보고 나는 무릎을 탁 치며 말하곤 했다. "역시 경력직은 달라!" 하고 말이다.  그녀는 내가 먼저 이야기하기도 전에 집구석구석을 살펴봤고, 내가 놓치는 부분에 대해 염려하며 먼저 제안을 했다.  내가 그녀에게 주는 페이 그 이상, 그녀는 나의 일과 걱정을 덜어가고 있었다. 이제까지 무엇이든지 혼자 직접 처리해야 직성이 풀리던 나는 그제야, '누군가에게 위임을 하는 것' 또는 '누군가와 함께 일하는 것'의 감동을 느끼곤 했다. 






그녀의 장점은 똑 부러지는 일처리뿐이 아니었다.  그녀 특유의 낙천성은 비범하다 못해 참으로 별났다.  내가 가끔 일에 고민이 빠져, 의미 없는 넋두리를 할 때 그녀는 나를 위해 점을 봐줬다.  그녀에게는 몇 가지 종류의 운세 카드 팩이 있었고, 나의 우문에 대한 답은 우선 그녀의 카드 자랑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녀가 얼마나 점보는 것을 좋아하는지, 그녀 역시 100프로 믿지는 않으나 그래도 카드 점이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등등.  


노밍은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즉석에서 카드점을 쳐 이렇게 사진을 보내주곤 했다.


그렇게 그녀의 별난 점은 대체로, 개연성 없는 뜬금없는 카드로 끝나곤 했다.  길거리 사주카페 사장님들은 말발이라도 있지, 그녀와 내 서툰 영어로 주고받은 나의 운세는 어처구니없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와의 이 신비로운(?) 대화가 끝날 때쯤이면 어느새 나는 나 스스로 질문에 대한 답을 내렸다. 그것이 때론 정답이건, 아니건 말이다.  사업을 확장하는 순간에도, 휴업을 결정하는 순간에도, 그리고 정리를 하는 순간에도,  그녀는 나를 위해 점을 봐주었다.  그녀의 점은 엉터리 었지만, 나의 단호한 결정 뒤에는 점과 별개로 나를 응원해주는 그녀의 따뜻한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감사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업무가 너무 지나치게 많은 날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면 가끔씩  5000원짜리 커피 기프트콘을 보냈다. 이 아주 작은 선의에 그녀는 연신 '감사합니다'를 내뱉었다.  어느 순간부터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쓰기 시작하더니, 대화의 끝에는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는 촌스러운 이모티콘까지 덧붙었다.  뜬금없이 보름달이 뜬다거나, 첫눈이 올 때도 그녀는 따뜻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니까 그녀는, 이 세상 너무 많은 것들에서 설레 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설레고 기쁜 감정을 나에게 선물하듯 전해주는, 그런 고마운 사람이었다. 



노밍에게 나는 "BEST BOSS"었다. 


그리고 그녀가 나에게 감사한 마음을 자주 표현하는 만큼, 나 역시 그녀에게 '좋은 사장'이자, '좋은 친구'가 되고자 최선을 다했다.  휴업을 했을 때도 내 형편이 어려웠지만 그녀에게 지낼 곳을 무상으로 제공했는데, 그녀가 나를 위해 일해준 보답임과 동시에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배려였던 것 같다. 


 



그렇기에 내가 게스트하우스를 정리할 때, 가장 먼저 스쳐갔던 사람이 노밍이었다.  완전히 힘든 상황은 아니었지만, 코로나와 함께 닥쳐온 나의 혼란스러운 시기는 이겨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문제 되던 순간들을 하나씩 해결해야만 했다.  코로나 이후로 완전히 멈춰버린 게스트하우스가 내가 해결해야 할 첫 번째 과제 었는데, 나는 손님이 뚝 끊긴 그곳에서 노밍을 무료로 재워주고 있었다.  간간히 그녀에게 집 관리를 부탁하며, 코로나가 끝난 이후, 다시 영업을 재개하면 그녀와 계속 함께 하겠다는 무언의 약속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몇 주의 고민 끝에, 게스트하우스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 이야기는 그녀와 내가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는 이야기기도 했다.  그녀에게 줄 다른 일자리가 없을까 수백 번을 고민했지만, 요즘은 내 코가 석자 었다.  어설픈 걱정과 동지애로 나 외의 누군가를 책임져주기엔 내가 지닌 짐이 너무 큰 듯했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에게 해고를 통보하기로 결심했다. 그녀가 일을 못해서도, 그녀가 부족한 사람이어서도 아니었다.  나의 상황이, 나의 역량이, 그녀와 함께 하기에는 부족한 탓이었다. 


알 수 없는 미안함과 죄책감이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내가 거쳐갔던 나를 고용했던 무수한 사장님들의 얼굴도 떠올랐다. 나는 그들과 이별할 때 좋은 직원이었을까.  나는 노밍에게 좋은 사장님이었을까. 





"이제 너와 함께 할 수 없어."


그렇게 나는 그녀에게 해고를 고했다. 그리고 나의 사정을, 내가 앞으로 하려는 것들을, 그리고 내가 그녀에게 얼마나 고마움을 느꼈는지를 줄줄줄 읊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미안하다는 말 대신, 굵고 짧게 "감사했습니다"라고 다시 한번 내 마음을 전했다. 


"Thank you too" 

"나도 고마웠어" 


그리고 내 긴 변명 끝에, 그녀는 본인도 감사했노라 - 그리고 그녀가 나에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줄줄이 읊어갔다.  악덕업주로부터 해방시켜줬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내가 단 한 번도 그녀에게 무례하게 대하지 않았던 것, 일이 힘들어질 때도 자신에게 최대한의 보상을 주려했던 것, 그리고 그녀가 내 넋두리를 아무런 보상 없이 들어주었듯이 나 역시 그녀의 엉뚱한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고 말이다.  그 이후에는 이제 그녀가 앞으로 어떻게 지낼 것인지, 무엇을 꿈꾸는지 한 참을 이야기 나누었다.  그렇게 우리는 두 시간이 넘게 서툰 영어로 수다를 떨었다.  이야기가 끝났을 즈음에는 우리는 더 이상 사장님과 아르바이트생의 관계가 아니었다.  각자 꿈이 있고, 서로를 너무나 응원하는 좋은 친구이자 동료였다. 


  슬프거나 미안한 감정으로 가득 찰 것 같았던 나의 첫 해고 통보는, 의외로 담담하고 따뜻했다.   아마 언젠가 나는 그녀에게 다시 연락해 함께 하자고 할 수 도 있다. 그런데 그 순간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언젠가 그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고용할 수 도 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그녀만큼 나에게 도움이 되고, 나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가 나에게 어느 날 갑자기 들어온 것처럼, 내 새로운 인연도 갑작스럽게 들어올지 모르겠다.  다만 나는 감사한 인연에 다시 조금 기대볼 수 있을 것이다. 







<망원동 노란 집 이야기>에 대해.. 

누구나 한번쯤 자신만의 공간을 꿈꿉니다.   여기, 그 꿈을 조금 '덜컥' 이뤄버린 글쓴이가 있습니다. 

'망원동 노란 집'은 글쓴이가 항상 꿈꿔오던 작은 공간으로,  1층에는 작업실과 소품샵의 쇼룸이, 그리고 2층에는 방 6개짜리 작은 숙박업소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에서는 - 숙박업도, 유통업도, 심지어 디자이너 프리랜서도 다 처음인 글쓴이가, 이 노란 집에서 지내며 자신의 일과 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더불어 미숙하지만 한 걸음씩 내딛고 있는 자신의 창업일지를 통해, '자신만의 공간'을 꿈꾸고 있는 모두를 응원하고자 합니다. 


매거진을 구독하셔도 좋고, 브런치를 구독하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https://docs.google.com/forms/d/19_tW8euLdEGyLWlmjKi1JYVagh1pECWmAZ3egjBqmnk/edit 

위 폼에 연락처를 남겨주시면 매주 <어려서 그렇습니다> 시리즈와 함께 글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글 읽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글쓴이 김영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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