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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진 Apr 15. 2019

여행으로 자기실현에 이른다는 것

프롤로그_반년 동안의 고독

고아 가자, 발리, 인도네시아




어떤 여행은 삶을 통째로 바꾸기도 한다



이상한 여행을 했다. 장시간을 요하는 작업거리가 방학 숙제처럼 달려든 시점이었다. 겨울이 닥쳐오는 한국보다는 따뜻한 나라가 작업을 하기에 더 낫겠다 싶어 여행길에 올랐다. 근로 방식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한다는 디지털 노마드 문화도 체험해 볼 요량이었다. 반년 예정으로 오른 여행의 목적지는 디지털 노마드의 세계에서 아시아권의 맹주로 거론되는 발리와 치앙마이 그리고 아시아 각국을 잇는 허브 도시로 부상한 쿠알라룸푸르. 지루해질 때쯤 체류지를 바꾸면서 조용히 작업이나 하다 올 참이었다. 그런데 여행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흐름이 뜻밖의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작업 효율을 높일 방법을 고심하고 있던 내 앞으로 융 심리학이 말하는 '자기실현'의 길이 펼쳐졌다.


한달살기 여행과 디지털 노마드 체험을 겸하는 방식으로 계획했던 여행이 자기 성찰, 내면 혁신, 창조성 회복, 개성화 등을 유도하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했던 흐름이었기에 상승과 추락을 반복했고, 중간중간 힘겨운 순간도 닥쳐왔다. 토질을 바꾸려면 당연히 겪어야 하는 일들이었으나 준비 없이 맞닥뜨린 터라 허둥거리기를 반복했다. 나를 싣고 흐르는 급물살이 어디로 나아가는지도 모른 채, 이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더더욱 모른 채 물살을 따라 흘렀다. 정신을 차려보니 귀국행 비행기 앞. 뜻밖의 물살에 어지럽게 휩쓸리다 보니 작업에도 차질이 빚어진 터라 얼마간의 열패감을 안은 채로 비행기에 올랐다.


반전은 귀국과 동시에 펼쳐졌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여독부터 풀기 바빴던 내가 방문을 열고 들어서기가 무섭게 여장을 해체해 모든 물품들을 원위치시키더니만 이튿날부터는 전에 없던 능동성을 발산하며 스스로의 삶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온갖 핑계로 어수선하게 방치해 두었던 주변 환경을 필요에 맞춰 정리해 나갔고, 심신의 상태를 꾸준히 살피며 균형이 흔들리는 부분을 그때그때마다 바로잡았다. 누군가가 뒤에서 나를 조종하는 듯한 기분. 내가 왜 이러지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는 사이 생활이 간결해졌고, 일과가 일목요연해졌다. 흐릿했던 삶의 방향도 선명해졌다.


후에 깨달은 바지만 자기실현의 흐름은 여행 전에 이미 시작된 상태였다. 앞서 여행한 극동유럽(지난 연재물인 <나는 숲이다> 참고)에서 이례적인 수준으로 육체와 정신을 활성화하면서 자기실현의 물꼬가 트였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국내에서도 그 여세가 계속 이어졌다. 그로부터 몇 달 후에 오른 여행이 이 연재물이 다루게 될 <반년 동안의 고독> 여행이다. 극동유럽 여행에서 시작해 <반년 동안의 고독> 여행과 그 후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기실현 프로세스와 삶의 목적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얻었기에 두 여행을 '필생의 여행'이라 부르는 데 주저함이 없다.


<반년 동안의 고독> 여행을 형태나 방식으로 설명하자면 '진화한 한달살기 여행' 혹은 '외국에서 하는 자기탐구 프로젝트'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반적인 한달살기 여행이 휴식과 현지 탐방을 겸해 한 지역에서 장기 체류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면, <반년 동안의 고독> 여행은 거기서 더 나아가 나 자신의 특성과 스스로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을 탐구해 그 결과를 생활에 적용하는 방식을 취한다.  


역시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여행 속에서 활용한 방법들 중 일부는 자기실현이나 창조성 회복을 목적으로 한 심리학 기반의 프로그램에서 실제로 활용되고 있었다. 여행에서 벌어진 그 밖의 국면들에서도 심리학이 제시하는 치유와 성장의 방향에 그 맥락이 맞닿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시도된 바는 거의 없는 듯 보이지만 인간의 보편적인 특성에 기초한 여행이기에 그 기록을 담은 이 글이 삶의 재정비나 자기 회복을 고민하고 있는 이들에게 얼마간의 영감을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어 본다. 타성 혹은 타율의 침투를 최소화할 수 있는 외국이 재정비의 무대로는 좀 더 낫겠지만 탐구심과 실천 의지가 충분하다면 일상 공간에서도 얼마든지 자기 변화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서설했듯 이 글은 앞선 연재물인 <나는 숲이다>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나는 숲이다>를 먼저 읽고, 그 뒤를 이어 이 글을 읽길 권한다. <나는 숲이다>를 읽을 때는 가급적 첫 글부터 차례대로 읽는 편이 좋다. 순차적 독서를 염두에 두고 내용을 배치했기 때문이다. 선행된 여행의 맥락을 미리 살펴둠으로써 후속 여행에서 벌어진 일들을 좀 더 입체적으로 조망하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한 여행'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여행에서 벌어진 일들과 그로 인한 결과가 마냥 뜻밖은 아니다. 여러 해 동안 여행과 그 세부 국면들을 탐구해 오면서 여행과 일상의 상호 연동 방법도 모색하고 있었다. 여행에서 벌어진 예기치 못했던 흐름은 그러한 노력의 일부가 현실화된 결과라 할 수 있겠다. 성장을 꿈꾸는 이들과 함께 나아가길 원하는 바, 그동안 정리해 둔 여행의 화두들도 시간이 나는 대로 조금씩 공유할 예정이다. 모쪼록 많은 이들이 여행을 통해 삶을 풍요롭게 살찌울 수 있었으면 한다.  




* 앞선 여행의 내용은 아래의 링크를 참고


<나는 숲이다> 매거진

https://brunch.co.kr/magazine/iamafo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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