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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진 Apr 30. 2019

3. 여행과 거주 사이

우붓 3_머무는 여행과 이동하는 여행의 차이

우붓, 발리, 인도네시아




장기 체류 여행은 여행법에 변화를 요구한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두 가지 숙박 형태를 두고 저울질을 했다. 개인 숙소 임대와 여행자 숙소 장기 체류. 마음이 가는 쪽은 전자였다. 주거지 형태의 숙소는 어떤 특성이 있는지, 해외에서의 개인 숙소 거주는 국내에서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지, 낯선 곳에서 독립적인 공간을 장기간 혼자 사용할 때 내 일상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등 개인 숙소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일들이 궁금했다. 


여행자 숙소는 실용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었다. 여행자에게 특화된 공간 구조, 집약적인 여행 정보력, 여행 관련 업체들과의 네트워크 등 여행자 숙소가 지닌 강점들이 유혹의 손길을 보내왔다. 개인적인 필요도 갈등을 부추겼다. 여행의 면면을 탐구해 오고 있는 나에게 여행에서 벌어지는 양상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여행자 숙소는 유용한 경험을 제공할 확률이 높았다. 다양한 유형의 여행자가 들고 나는 여행자 숙소에서 여행이 빚어내는 나날의 현상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하면서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퍼즐을 좀 더 맞춰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얼마간의 숙고 끝에 두 가지 방식을 혼용하기로 했다. 총 6개월의 여행 기간 중 3개월은 여행자 숙소를, 나머지 3개월은 콘도나 일반 가옥 등의 개인 숙소를 사용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문제는 숙소를 물색하는 방법이었다. 여행자 숙소 물색이야 어플리케이션도 이미 다양하게 나와 있고 그동안의 여행에서도 늘 해오던 일이었기 때문에 그리 문제 될 게 없었다. 반면 한 번 계약하면 최소 한 달은 머물러야 하는 개인 숙소는 사정이 달랐다. 생활의 질을 좌우하는 공간이니 선택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었다. 인터넷 서핑과 현지에서 직접 발품을 파는 방식을 병용해 개인 숙소를 물색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한달살기 여행에서도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는 세계 최대의 숙박 공유 서비스는 인터넷 서핑 옵션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수많은 한달살기 여행자들이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고 여기저기서 외치고 있었지만 나로서는 그렇게까지 비장하게 외쳐야 할 만큼 한달살기의 욕망이 크지 않았다. 필요에 의해 선택했을 뿐, 한달살기 그 자체보다는 사진 작업의 능률을 어떻게 높일지가 더 큰 관심사였다. 무엇보다 업체 측의 마케팅 전략에 휩쓸리고 싶지 않았다. 


한달살기 여행자들이 외치는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구호는 해당 업체의 광고 카피였다. 문구의 초점은 소비의 유도에 맞춰져 있었다. 여행의 순간만 놓고 보자면 편리한 부분이 꽤 있었지만 그 이면에서는 다른 현상도 만들어 냈다. 여행자에게 편의 중심의 사고와 행위를 유도함으로써 그 반대편에서 부동산 가격 상승, 지역 문화 파괴 등의 사회 문제를 양산했다. 베를린, 파리 등의 진보적 도시들이 해당 업체와 전면전을 벌이고 있는 이유였다. 사회 문제 발생에 힘을 보태고 싶지도 않고, 아무 생각 없이 기업의 마케팅 문구를 외치고 싶지도 않아서 긴급 상황이 아닌 한은 해당 서비스의 사용을 가급적 자제하기로 했다. 여행의 기술적인 섭렵보다는 여행을 통한 전인격적인 성장이 나로서는 더욱 중요한 과제였다.


그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두 가지 숙박 형태를 어느 구간에서 어떻게 적용할지의 결정. 처음 3개월은 여행자 숙소를 이용하고, 나머지 3개월은 개인 숙소를 이용하는 밑그림을 그리기는 했으나 최종 결정은 현지에서 할 생각으로 우붓에 왔다. 스쿠터 장기 렌탈, 협업 공간 멤버십 등록 등의 우선 과제를 마무리한 후 숙박의 형태를 결정할 생각이었는데 체류 중인 여행자 숙소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시설은 다소 낡은 대신 마음이 꽤 편했는데 위치도 좋은 데다가 스탭들과도 꽤 가까워진 상태여서 그대로 머무르기로 했다. 이로써 생활의 물리적 근간인 주거의 문제를 해결했다. 


이후 얼마간 생활을 해 보니 준거주 형태로 한 달을 머무는 여행은 배낭여행이나 휴가 여행처럼 한 지역에서 며칠만 머무는 여행과 그 특성이 달랐다. 일례로 우붓 생활 중 옷에서 빠지지 않는 쉰내를 잡느라 날마다 진땀을 뺐다. 장마가 계속되다 보니 빨래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냄새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비가 오는 시간대도 일정하지 않고, 비가 갠 이후에는 습도 높은 열대성 기후가 이어져 안 그래도 간신히 건조한 옷에 땀이 잔뜩 차는 현상을 어쩔 수가 없었다. 더욱이 옷가지가 간소하고 여행지에서는 손빨래를 즐기는 편이어서 밤마다 팔뚝에 알통이 생길 정도로 열심히 옷을 빨아야 했다. 


장마는 잠시 스치는 여행과 머무는 여행 간의 대비를 더욱 극적으로 키웠다. 잠깐 퍼붓고 나서 다시 날이 맑아지는 다른 동남아 국가의 열대성 스콜과 달리 우붓의 장마는 하루에도 수 시간을 퍼부으면서 생활인들의 발을 묶었다. 거리로 나설 수 없을 만큼 거세게 쏟아지는 장대비 때문에 숙소와 협업 공간을 왕래하기가 무척 번거로웠다. 머무는 시간이 사나흘이었다면 우비를 뒤집어쓰고서라도 곳곳을 구경하러 다녔을 텐데 한 달이라는 시간이 주어졌으니 굳이 무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 반면 스쳐가는 여행이라면 며칠 당차게 움직이다가 비 소식이 없는 지역으로 이동해 쾌청한 날씨도 다시 누리고 옷가지에서 나는 냄새도 제거하면 되는데 장기 체류 중인 나로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일기 예보를 주시하며 거기에 생활을 맞췄다. 이 점에서는 서울 생활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식사 문제도 고민이었다. 이동하는 방식의 여행은 행선지마다 다른 먹거리를 만날 수 있었다. 두루두루 맛있는 거 찾아 먹으면서 여행하면 그만이었다. 반면 우붓에서는 지역의 대표 먹거리 몇 가지를 섭렵한 후부터 같은 식단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현지 문화 체험을 위해 가급적 지역민의 일상 음식을 먹겠다는 계획이었으나 비슷비슷한 음식에 물리는 현상이 벌어지면서 식생활이 엉성해졌다. 


생활환경 면에서도 이동하는 여행과 머무는 여행은 달랐다. 일견 사소해 보이는 생필품의 경우에도 용도와 사용 빈도에 따라 구매 여부가 갈렸다. 똑같이 구입하더라도 구입 물품의 용량이 달랐다. 이동수단 역시 아무 고민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했던 이동하는 여행과 달리 언제 어디서든 기동력을 발휘하기 위해 스쿠터를 장기 렌탈해야 했다. 더욱이 택시를 제외하고는 마땅한 대중교통수단이 없는 발리였다. 다른 지역에서는 우버의 시스템을 본 딴 오토바이 택시 서비스가 가동되기 시작했지만 우붓에서는 지역 경제 파괴를 이유로 오토바이 택시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었다. 장기 체류자에게 스쿠터 렌탈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이동하는 여행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정적인 경향을 보이는 머무는 여행은 일과도 상대적으로 단조로웠다. 아는 이도 없고 지역 사정도 어둡다 보니 일상의 단순성에서 기인하는 문제들에 더욱 강력하게 부딪쳤다. 이동하는 여행에서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일상성에 직면했지만 머무는 여행이 보여주는 일상성은 그 모습이 더욱 선명했다.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한 듯했다. 때로는 적극적으로, 때로는 소극적으로 이동하는 여행과 머무는 여행 간의 차이를 감별해 나갔다.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면서 여행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구조를 읽어 내려갔다.




# 여행자 숙소 VS 개인 숙소 임대

한달살기를 비롯한 체류형 여행의 가장 일반적인 숙박 형태는 개인 숙소 임대지만 여행자 숙소도 고려해 봄직한 옵션이다. 여행자들과의 다양한 교류, 여행 정보의 폭넓은 확보, 현지 투어 프로그램 참여 시 일행 확보의 용이성, 숙소 내 공용 공간이 제공하는 편의성, 유사시 숙소 스탭을 통한 문제 해결의 편리성 등이 대표적인 장점이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여행자에게도 여행자 숙소는 유용한 옵션이다. 반면 자신에게 집중하기 위해 한달살기를 선택한 이에게는 개인 숙소가 적합하다. 내면 활성화나 자기 치유의 관점에서도 외부의 힘이 미치지 않는 개인 숙소가 좀 더 긍정적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다. 자립적인 삶을 연습하고자 하는 여행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의존적인 성향을 개선하는 연습을 하기에도 좋다. 자신만의 공간과 일상을 직접 디자인하면서 생활하다 보면 내면세계가 점점 더 단단해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중간에 공허함이나 무료함이 찾아올 수도 있는데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귀중한 순간임을 잊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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