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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진 Aug 22. 2019

18. 과정이 결과다

짱구 9_결과주의의 압박에 굴복하지 말라

해 질 녘까지 연습에 열중인 서퍼들, 쿠타 비치, 발리, 인도네시아





과정에 문제가 없다면 스스로를 믿어라


생산적인 나날들을 보내고 있음에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의문이 계속 일고 있었다. 이 여행이 과연 나 자신에게 유익한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자신할 수 없었다. 지금 이 시간이 앞으로의 삶에서 과연 의미 있는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를 스스로에게 되물을 때마다 시원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바야흐로 발리 생활의 마지막 순간이 가까워 오는 시점이었다. 그동안의 생활을 되돌아봐야 하는 나에게 결과주의가 압박을 가해오고 있었다.  


한국에서 들고 온 작업거리는 계속 처리해 나가고 있었다. 휴식이 필요할 때를 빼고는 항상 협업 공간으로 나가 작업을 했다. 꾸준히 진도를 뽑아내고 있는 데다가 흐름도 나쁘지 않았다. 장마철임에도 비를 뚫고 나가 작업에 열을 올린 날이 많았다. 열심이라면 제법 열심인 상황. 어차피 여행 중에는 결과물을 사용할 계획도 없어서 귀국 전까지만 완료하면 그걸로 충분했다. 그러나 혼자서 조용히 작업을 해 나가다 보니 그 경과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기회가 없었다. 분명히 진척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게 과연 유용한 수준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눈에 보이는 성과에 집착하기 시작하면서 조바심에 시달리는 현상이 빈번해졌다. 자동기술법 글쓰기(본문 하단의 링크 참조)에 불안한 감정을 적는 날이 늘어났다. 가장 자주 반복해서 적은 문장은 ‘시간 참 빨리 간다’. 불안의 반영이었다. 유사한 문장을 몇 번을 적었는지 모른다. 불안이 하나의 경향으로 고착되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거둬들인 게 부족하다 싶을 때마다 시간의 흐름이 쏜살보다 더 빠른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내 감정에 못 이겨 스스로 시간의 속도를 헤아리고 나면 더 큰 불안이 몰려왔다. 그렇지만 내가 조바심에 겨워 안절부절못할 뿐, 시간은 제 속도대로 흐르는 중이었다. 


돌아보면 결과주의는 나에게 극복을 요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숙제였다. 눈에 보이는 성과로 삶을 계량하고 측정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결과주의적 사고를 발동한 적이 많았다. 눈에 보이는 것들에 집중하다 보면 일상은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쓸데없는 상념에 휩싸여 끙끙거리다가 시간을 날리는가 하면, 스스로를 은근하게 자책하다가 자존감을 추락시키기도 했다. 과정을 차곡차곡 밟아야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때때로 억지스럽게 성과를 만들어냈다. 결과의 모양새는 당연히 엉성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보다는 뭐라도 보이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계획대로 하루를 보낸 날에도 그 결과가 분명하게 보이지 않으면 알게 모르게 불안해했다. 목표한 대로 행했으니 뿌듯해해도 이상할 게 없는데 감정은 다른 얘기를 했다. 내 밖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을 제물로 삼던 결과주의는 최종적으로 나를 향해 활시위를 겨눴다. 결과주의의 입장에서 보자면 일가도 이루지 못한 '나'라는 사람은 아주 볼품없는 존재에 불과했다. 존엄한 인격이 아니라 집단의 번영을 위해 복무하는 무수한 일개미 중 하나 혹은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에 들어가는 볼트이자 너트였다. 결과주의가 기승을 부릴수록 자존감은 흔들림의 진폭을 더 크게 키웠다. 


쓸데없는 감정에 휘둘려 무기력한 상태에 이르면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고민만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결국 그 거대한 고민 덩어리에 압사당하게 된다는 사실도 무수한 경험들로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머리와 마음이 따로 놀았다. 불안을 거두고 할 일에 집중하자고 생각하면서도 흔들리는 감정을 바로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한 일을 반복적으로 경험한 후, 현상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면에 숨어 있던 또 다른 진실이 눈에 들어왔다. 결과주의의 바탕에는 문명의 불순한 부산물들이 뒤섞여 있었다. 경쟁적 사고, 우열 구분의 태도, 이익을 우선시하는 관점, 물질 중심의 세계관 등에 이르기까지 가치 있는 삶을 위협하는 요소들이 결과주의의 지반 아래에 적잖게 깔려 있었다. 생각해 보면 결과는 과정이 흘러간 양상을 보여주는 흔적일 뿐이었다. 과정은 결과를 위한 부속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훌륭한 성취였다. '과정’과 ‘결과’는 인식을 돕기 위해 만든 관념적 소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발전한 상태 그 자체가 중요할 뿐, 그것을 결과라는 형식으로 증명하는 것은 부차적인 행위에 불과했다. 또한 과정이 사람을 더 높은 경지로 끌어올린다는 확신도 얻었다. 


떠올려 보면 결과만을 생각하며 달리는 순간은 행복하지 않았다. 과정을 순간순간 즐길 때라야 비로소 삶에 만족감이 감돌았다. 그러한 자각이 인 후부터 되도록 결과에 연연해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과정이 만족스러우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삶이 위태롭게 느껴져도 이게 다 인생 공부라 생각했다. 고꾸라지는 경험은 좌절감만 선사한 게 아니라 성장의 기회도 선사했다. 


그러한 흐름 속에서 발리에 왔다. 그런데 일상 관리부터 새로운 시도와 체험에 이르기까지 제법 실속 있는 생활을 해왔음에도 발리 생활이 끝으로 치닫는 시점을 기해 결과주의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작업의 수행량을 기준으로 하루를 평가하는 횟수가 늘어갔다. 과정에 집중해 그날그날의 흐름을 되돌아본 날도 없지는 않았지만 게으름을 부렸다거나 컨디션 조절에 실패해 하루의 흐름이 일그러진 날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작업을 기준으로 스스로를 평가했다.  


이대로 흔들리기만 할 수는 없는 일. 상념이 고개를 쳐들면 분위기를 환기해 줄 만한 활동으로 맞대응했다. 가볍게 스쿠터 라이딩을 하기도 했고, 인터넷으로 유익한 컨텐츠를 찾아보며 감정의 정돈을 시도하기도 했다. 모두 컨디션 회복에 도움이 되는 생산적인 활동들이었다. 생활이 흔들리지 않도록 예방하는 데도 관심을 기울였다. 불안의 씨앗인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심신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애썼고, 이미 스트레스가 찾아온 경우에는 그것이 불안으로 번지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그밖에도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심신의 상태를 안정시키고자 했다.  


그럼에도 불안은 반복해서 찾아왔다. 내 능력이 보잘것없는 건 아닌지, 그동안 추구해 온 것들이 의미 없는 헛발질은 아니었는지, 현재의 내 모습이 무능력의 소치인 건 아닌지 자꾸 의심이 들었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하겠다고 여기서 이러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 때면 어깨가 축 처졌다. 이러면 안 되는데 싶으면서도 마음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았다. 결과주의와의 싸움이 이번 여행에서의 가장 치열한 과제가 될 듯했다. 이번 기회에 결과주의를 제대로 해체하자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힘겨루기를 했다. 결과주의의 전투력은 상당했다. 그래도 물러서지 않았다. 계속 싸웠다. 싸우고 또 싸웠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자동기술법

https://brunch.co.kr/@youngjincha/76




# 발전의 천적, 결과주의

결과는 과정의 부산물이다. 과정이 없으면 결과는 성립될 수 없다는 얘기다. 더욱이 현실 세계에서는 결과를 가늠할 때 실제로 성취된 양상보다는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새에 집중하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중요한 것은 실제 사실, 다시 말해 팩트가 어떠한가다. 실현이 필요한 일이라면 실제로 실현이 되었는지를 봐야 하는 것이다. 과정이 제대로 진행되었다면 그만큼의 발전이 이루어진다. 성과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발전이 없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결과에 집착하다가 중간에 길을 잃으면서 이도 저도 아닌 상황에 처한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내 경우에는 그런 적이 아주 많았다. 시험공부, 취업 준비, 업무 이행, 직업 변경과 관련된 상황에서 주로 그랬다. 불안감을 가라앉힌답시고 친구를 불러 술을 마시기보다는 과정의 수행에 의미를 두고 목표한 바를 향해 계속 나아갔다면 대부분의 일들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뒀을 것이다. '일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게다. 내면을 가다듬을 때도 결과주의는 불안감, 자기불신, 자기혐오 등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면서 아주 강력하게 훼방 활동을 펼친다. 창조성 향상이나 자기 회복 등의 작업을 할 때 가장 강력한 적으로 등장하는 존재가 바로 결과주의다. 방향성과 진행 과정에 문제가 없다면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결과가 가시화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일련의 과정을 반복해서 경험하다 보면 결과주의의 강박에서 점점 더 자유로워지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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