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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진 Sep 15. 2019

32.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치앙마이 5_좌절의 기억과 다시 한번 대면해 보기로 했다

구시가, 치앙마이, 태국




직면해야 극복할 수 있다


노트북을 열고 전날 써 놓은 원고를 펼쳤다. 한국에서 청탁받은 여행 원고. 마감이 임박한 터라 서둘러 교정 작업을 해 사진과 함께 보내 주어야 했다. 먼젓번 원고들은 그런대로 내용이 괜찮았는데 이번에는 이전만 못한 것 같아 전날을 시무룩하게 보냈다. 꽤 집중해서 작업을 했는데도 완성도가 떨어지는 듯해 기분이 언짢았다. 그런데 막상 다시 펼쳐서 읽어보니 내용이 그런대로 괜찮았다. 조금만 더 신경 써서 다듬으면 그런대로 읽을 만한 글이 될 것 같기에 마감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사진 작업에 중점을 둔 여행이 글 작업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가는 중이었다. 사진 작업에만 매진해도 귀국 전까지 제대로 마무리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데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글 작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글 작업 계획이 없지는 않았다. 사진 작업의 진척도가 예상보다 좋으면 글 작업도 조금씩 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워 두었다. 글로 옮기고 싶은 주제 몇 가지가 머릿속에서 맴돌아 짬짬이 글 작업을 해서 하나씩 공개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출국 직전 ‘브런치’에 계정을 개설해 두었다. 


그런데 사진 작업을 해 보니 양이 생각보다 많았다. 시간을 쪼개면 글 작업을 약간은 할 수 있겠다 싶기도 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 발리와 쿠알라룸푸르에서는 오로지 사진 작업에만 열중했다. 그러한 흐름이 계속되던 차에 내면에서 불쑥 글쓰기의 욕망이 솟아올라 작업에 손을 댔다. 사진 작업에 여전히 중점을 두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글을 써보기로 한 것이다.


청탁받은 원고를 제외하고는 오랫동안 내 글을 쓰지 않았다. 디자인을 주제로 한 장기 프로젝트들에 몇 년째 참여해 왔지만 작업들 대부분은 창작성보다는 문장 기술이 중요했다. 안정적인 문장을 구사하는 데 우선적으로 집중해야 했다. 때문인지 작업 과정에서 작가가 아니라 글 기술자가 된 듯한 느낌을 종종 받았다. 개인적인 관심사와 연결되는 흥미로운 주제였음에도 작업 과정에서 답답함이 조금씩 쌓였다. 


청탁 원고들은 그보다 유연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한계는 존재했다. 청탁처는 독자의 감각을 일깨우는 글보다 무난한 글을 더 원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글보다는 독자가 약간의 자극이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정도의 글이면 목표에 부응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안전한 작업을 당부해 왔다. 청탁처의 처지를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으나 속 마음을 후련하게 글로 옮기지 못해 못내 아쉬웠다.


두 상황 모두 글 작업의 의욕을 감퇴시킨 요인들이었지만 가장 크게 발목을 잡은 요인은 따로 있었다. 글 작업과 관련된 과거 언젠가의 깊은 좌절이었다. 몇 년 전에 여행 에세이 한 권을 출간한 적이 있었다. 메이저 출판사였고, 출판 과정도 순조로웠다. 종이책의 불황에 시달리는 출판계의 상황을 고려하면 출간 후의 결과도 그리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이후 전국국어교사모임이 우수 여행글을 뽑아 엮은 책에도 내가 쓴 여행기 한 편이 실렸다. 그런데 데뷔작을 출간한 후의 흐름이 심상치 않았다.


데뷔작은 전체 여행기의 상편에 해당했다. 물론 담당 편집자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출판사와 주요 사항의 협의를 마무리 지은 후 후편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후편의 계약은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담당 편집자가 다른 출판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그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출판사가 운영 방향을 경제성 위주로 전환하던 시점이었다. 나는 데뷔작의 성과에 만족했지만 출판사가 원하는 결과치는 그보다 높았다. 유명 작가가 아닌 다음에야 집필 작업의 중간 과정에 있는 어중간한 원고로 계약을 성사시키기가 쉬울 리 없었다. 전작의 후편이니 다른 출판사에서의 출간도 앞뒤가 맞지 않았고, 담당 편집자의 소속 팀이 여행 도서와는 무관했기에 사후 논의를 이어나갈 후임자를 찾기도 어려웠다.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이미 시작한 작업이라 김 빠지는 기분을 견디며 후편의 원고를 마무리하기는 했지만 결국 출간 계획은 좌절되고 말았다. 


작업에 들인 노력이 아까워 한참을 고민하다가 다른 출판사들에 투고를 했다. 다행히도 몇몇 출판사가 긍정적인 회신을 보내왔다. 그중 일부는 원고를 상당히 진지하게 검토하는 듯 보였다. 글 자체에 대해 출판사의 내부 분위기는 호의적인데 소구점을 잡기가 어렵다며 검토할 시간을 조금만 더 달라고 연락해 온 곳도 있었다. 컨셉 주의가 만들어 내는 부작용들에 반감이 컸던 시기라 일부러 컨셉을 흐려가며 쓴 글이었다. 


여행 서적들이 획일화되는 현상이 반갑지 않은 시점이었다. 컨셉을 앞세운 마케팅으로 독자의 기대감을 부풀려 놓고 막상 읽어보면 낚였다는 느낌을 주는 책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는 상황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여행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현상들을 컨셉이라는 협소한 틀에 가두는 행위 역시 바람직해 보이지 않았다. 전문가들이 포진한 출판사가 내 원고의 컨셉을 잡지 못해 헷갈려한다니 한편으로는 소기의 목표를 달성한 셈이었다. 하지만 컨셉을 흐린 집필 방식은 결국 독으로 작용했다. 최종적으로 모든 출판사들에게서 거절 메일을 받았다. 


치욕감이 밀려왔다. 현업에서 수년 간 글로 밥 벌어먹어 온 자존심에 타격을 입었다. 내면에는 그보다 더 큰 공황이 찾아왔다. 후편을 출간하지 못했으니 책 속에서 여행 중인 내 분신도 귀환시키지 못한 셈. 그러한 인식이 불안을 크게 조장했다. 실제 인물은 귀국했으니 그걸로 됐지 싶다가도 내 자아의 절반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먼 땅을 헤매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심적으로 혼란스러워졌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데뷔작의 담당 편집자가 출판사의 편집 부서 한 곳과 다리를 놓아주었다. 약속 자리에 나온 새로운 편집자는 나에게 두어 가지 컨셉의 목차와 견본 원고 작성을 제안했다. 작업을 해서 보내 주면 내부에서 신규 서적의 출간 가능성을 진지하게 검토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열심히 작성해 목차와 견본 원고 몇 개를 보냈다. 그런데 이번에도 깔끔하게 거절당했다. 안 그래도 후편 원고의 좌초로 무릎이 꺾인 상태였는데 다시 한번 무참히 자빠졌다.


그렇지만 그때는 좌절의 깊이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했다. 컨셉 주의에 대한 반감도 여전했거니와 목차와 견본 원고를 요청한 편집자가 협의 석상에서 보여 준 구태의연한 태도가 몹시 거북스러웠기 때문이다. 편집자는 알만한 사람끼리 까다롭게 굴지 말고 쉽게 쉽게 가자고 말했다. 돈이 되는 쪽으로 타협하자는 얘기였다. 원고의 문제점을 되짚어보는 게 먼저였겠으나 당시로서는 불쾌감과 씨름하기에 바빴다. 


후에 돌아본 바, 당시 내가 출판사 측에 보낸 목차와 견본 원고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타협을 권한 편집자의 태도와는 별개로 원고에 관해서는 출판사 측에서 정확하게 반응했다고 보는 편이 옳았다. 내 솜씨도 충분치 않았지만, 편집자의 머리에서 나온 발상에 내용을 끼워 넣기도 쉽지 않았다. 더욱이 심리적으로 잔뜩 위축된 상태였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처참한 결과를 받아들일 용기가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핑곗거리를 찾아내 그 뒤에 숨은 채 내 정당성을 옹호했다.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반증이었다.


이후 내 글을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었다. 기껏해야 프로젝트 참여와 청탁 원고를 처리하는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청탁처는 나를 존중했지만 그렇다고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내뱉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최소한의 수위는 조절해야 했으니 결국 틀 안에서의 글쓰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디자인에 관련된 글도 계속 써 왔으나 문장 기술의 비중이 월등히 큰 작업인 만큼 내 글이라 할 수 없었다. 그 도중에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자동기술법 글쓰기를 몇 차례 시도했다. 역시나 단발성으로 그쳤다. 여행을 떠나오기 몇 달 전 제주 여행에서의 시도도 마찬가지였다. 두 차례의 글쓰기로 끝났다. 


이번에는 좀 더 다부지게 시도해 보자 싶어서 제주 여행에서 두 번을 쓰고 중단한 파일을 펼쳐 이번 여행을 출발하기 한 달 전부터 자동기술법 글쓰기를 이어나갔다. 이후 여행의 중반을 넘은 시점까지 거르지 않고 글을 썼다. 헤아려 보니 내면의 현상들을 글로 옮긴 기간이 넉 달을 훌쩍 넘겼다. 그게 일종의 워밍업의 역할을 했는지 어느 날엔가 보니 내가 형식을 갖춘 별도의 글을 쓰고 있었다. 굳어 있던 감성, 웅크리고 있던 욕망이 몸을 일으켜 세운 듯했다. 




# 좌절의 극복에 관하여

본문에 언급한 좌절의 경험은 내 인생에서 꽤 중요한 사건 중 하나였다. 실존의 문제까지 건드리는 일이었기에 큰 충격을 받았고 그 여파도 오래갔다. 예전보다 사회가 많이 성숙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냉혹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으니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많은 이들이 비슷한 경험을 해 보지 않았을까 싶다. 좌절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해당 사건과의 정직한 대면이 필요하다. 이유가 나에게 있다면 용기 있게 받아들이되 스스로를 책망하기보다는 격려하는 것이 좋다. 이유가 내 바깥에 있다면 그 사실 역시 직시하면 된다. 사건과의 직면을 회피하면 실상을 돌아볼 기회조차 사라진다. 그러다가 나처럼 시간만 하염없이 흘려보내게 된다. 좌절을 겪을 당시 나는 실상을 응시할 자신이 없었다. 좀 더 용기를 냈더라면 극복의 시점을 몇 년은 더 앞당길 수 있었을 텐데 남 탓을 하기도 하고 차일피일 미루기도 하면서 시간만 흘려보냈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우리 모두에게는 시행착오의 기회가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장의 기본 조건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천재조차도 처음에는 제 능력보다 미숙한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관록 있는 베테랑도 실수를 하고 실패를 한다. 진짜 문제는 미숙한 내가 아니라 성장의 시간을 충분하게 보장하지 않는 풍토다. 번듯한 겉모습 뒤에서 온갖 부덕이 자행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외부의 평가가 지나치게 혹독하더라도 스스로를 너무 가혹하게 대하지 말고 계속해서 기회를 주며 따뜻하게 다독였으면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나처럼 회피의 시간이 장기화된다. 혹여 나처럼 직면을 계속 미루게 되더라도 스스로를 믿고 계속 기다려주면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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