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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문영 Jul 01. 2018

습속

1.내가 한국 사회의 습속(아비투스?)을 어느정도 벗어날 수 있었던 환경은 모계 부계 친척과의 관계가 모두 깨박살났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어느 친척의 도움도 받지 않고 가족을 꾸려왔다. 그 안에서 어느정도 독창적인 상놈의 문화로 가족을 꾸려왔다.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서도 생존에 근거한 하나의 문화를 만들 수 있었다는 말. 우리 가족은 (거의) 완전히 독립적이다.국가에서 요구하는 근면함의 가치를 체화하긴 했고, 노무현 정부 부동산 정책의 수혜를 입긴 했지만. 그래서 완연한 상놈이 될 수 있었다. 양반(기득권?)의 눈치 보지 않는. 친척은 유무형의 도움은 주지만 그 대신 이래라저래라 감놔라 배추놔라 속물의 말들이 많다.(상놈이라고 해서 속물의 인식과 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걸 내리물려주려는 의지가 그렇게 뚜렷하진 않다.) 그리하여 한 가족을 혹은 한 개인을 온전히 근대인이지 못하게 한다. 한국에서 변혁적 기운이 샘솟다가도 어느새 푹꺼지는 이유는 이러한 친인척간에 끈끈한 관계에서 비롯한다. 너무 좋같아서, 열받아서 일어나려다가도 주위를 둘러보며 다시 한번 눈치를 보게 되는 것. 이게 아주 좋같다고 본다. 
직장이나 자영업도 마찬가지다. 뭐 먹고 살아보자고 돈 좀 벌어보자고 할 때도 이러한 습속이 촘촘히 개인의 앞에 늘어서 있다. 습속이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 68과 같은 습속의 인식에 근거한 근본적인 변화는 꿈도 못 꿀일이다. 
이래도 니가 안 변할래? 김훈, 밥벌이의 고단함. 같은 소리가 충분히 나올 수 있는 환경. 직업뿐아니라, 예술, 학문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있다. 
그러다보니 뭐 재미난 것도 없는데 노회한 기득권들이 지배하고 있는 사회다. 또는 자기들이 그들을 밟고 올라서놓고 다른 이가 자신을 못밟게 온 힘을 기울인다. 사다리 걷어차기?
2.나도 그럴까? 넋놓고 있다가 그렇게 될 것 같다. 
3.표면에서 분노를 드러내는 적(敵)은 없는데 아마도 나를 못마땅해 할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대놓고 이야기는 못하지만.
4.지금와서 고백하자면, 나름 노력은 했지만 당신들처럼은 될 수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희박할 것이다. 이렇게 살다가겠지 뭐.
5.일단은 습속에 물들지 않을 독립적인 직업이 필요하다. 그래야 뭐든 지속적으로, 꾸준히 이상한 소릴 지껄일 수 있다. 혹은 이상하게 살아갈 수 있다. 외국이 아닌 한국에서. 그런 직업이 흔하지 않거나, 혹은 없다는 게 문제지만. 
5.이렇게 말은 하지만 나 역시 어느정도는 습속에 물들(물든) 사람이다. 그걸 지양하려고 쓴 글일 듯하다. (라고 말하는 말버릇도 습속에 근거한다. 개인의 의견을 명확히 만들지 않으려는, 그래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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