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B Jan 29. 2021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Attila Marcel

슈게트보다는 마들렌, 초록색보다는 빨간색

4년 전 가을 처음 본 이 영화는, 당시에는 단지 동화 같은 영화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아파트 바닥에 흙을 뿌리고 식물을 키우는 마담 프루스트. 아기자기한 찻잔과 마들렌. 폴의 기억 속 어머니의 아름다운 노랫소리. 

요란하거나 너무 화려하지 않은 이 영화는 한 사람이 자라면서 왜곡된 한 조각의 기억의 파편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오해하고 미워하던 사람을 믿게 되는 모습을 보여주며, 다 자라서 내가 가진 기억이 진실이라고 믿어버리는 어른들의 식어버린 마음을 위로한다.


이 글에서는 동화 같은 이 영화 속 감독도 모르는, 혼자 생각하고 즐거워진 아주 사소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우리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하자. 그들은 우리의 영혼을 활짝 꽃피게 하는 유쾌한 정원사이다."     -마르셀 프루스트


영화 초반에 폴이 피아노 앞에 악보를 꼽은 뒤 창을 향해 서서 눈을 감고 햇빛을 느끼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곧바로 이모들이 피아노를 열어 햇빛을 가려버린다.

매일 이모들의 춤 강습소에서 피아노 반주를 연주해주던 폴은 우연한 계기로 마담 프루스트의 집을 방문하게 된다. 마담 프루스트의 집은 창으로 들어온 빛이 천장과 집안 곳곳에 달린 여러 방향을 비추고 있는 거울들을 통해 여러 방향으로 나뉘어 집안 전체를 환하게 밝힌다.

영화의 후반부, 폴은 결국 기억을 떠올리다 아버지에 대한 오해를 풀게 되면서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부모님의 죽음을 기억하게 된다. 결국 그는 이모들이 원하던 삶을 집어던진다. 폴은 그의 삶의 틀이었던 피아노 밖으로 나와 그 위에 올라선다. 그러고는 빛이 잘 드는 창 옆, 피아노 위에 새로운 씨앗을 심고 꽃을 피운다. 이후 마담 프루스트의 무덤 앞에서 폴은 비를 맞으며 움츠러든 채로 서 있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우거진 큰 나무 사이에서 햇빛이 환하게 빛나는 것을 보며 폴은 미소를 보인다.



빛을 잘 보여주는 여러 장면들을 통해 폴이 마담 프루스트를 만나면서 밝은 삶을 살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폴의 빛을 가리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피아노였다.

"우리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하자. 그들은 우리의 영혼을 활짝 꽃피게 하는 유쾌한 정원사이다."라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처럼 마담 프루스트는 폴의 영혼을 꽃피워주었다. 폴이 원하지 않았던 외부적인 요인들로 인해 그의 삶은 그늘졌었지만, 빛과 긍정을 끌어모으는 마담 프루스트와의 만남으로 그는 자신의 그늘이었던 피아로를 밟고 올라가 그의 손으로 꽃이 피워낸다. 더 이상 그는 주변인의 죽음에도 입과 눈을 닫아버리지 않고 그 사이에서도 한줄기의 희망을 찾아낼 것이다.



 프루스트

“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정제가, 때론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      -마르셀 프루스트


나에게는 몇 년 전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구입한 향수가 하나 있는데, 아직도 그 향수를 뿌리면 이탈리아에서의 기억이 떠오른다.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이러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떤 냄새를 맡았을 때, 그때의 추억이나 장소가 떠오르는 경험. 이러한 현상을 프루스트 효과라고 부른다. 이때의 프루스트는 영화 마담 프루스트를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와도 연관이 깊다.

앞서 잠깐 등장한 마르셀 프루스트는 20세기 프랑스의 소설가로, 그의 장편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익숙할 내용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속 주인공 프루스트는 마들렌과 홍차를 먹다가 잊고 살았던 유년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다. 이러한 내용 때문에 특정 향기로 기억을 떠올리는 현상을 프루스트 효과라고 부르는 것이다.



폴의 기억을 되찾아주는 인물의 이름이 프루스트인 것도, 기억을 되찾아주는데 도움이 주는 음식으로 마들렌을 선택한 것도, 영화의 원제이자 폴의 아버지의 이름이 아틸레 ‘마르셀’인 것도, 폴이 잊고 살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찾은 것도, 모두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영화임이 드러나는 부분들이다.

“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정제가, 때론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 영화 첫 부분에 등장한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처럼 영화 속 주인공 폴이 마담 프루스트에게 내민 손 위에는 결국 진정제가 놓여졌다. 마담 프루스트는 떠났지만 폴은 이 작은 진정제 하나로 평생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



슈게트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이 초라하고 우연적이고 죽어야만 하는 존재라고 느끼지 않게 되었다. 도대체 이 강렬한 기쁨은 어디서 온 것일까? 나는 그 기쁨이 홍차와 과자 맛과 관련이 있으면서도 그 맛을 훨씬 넘어섰으므로 맛과는 같은 성질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이 영화 속 마들렌은, 앞서 말했듯이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속 내용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영화 속 폴이 기억을 찾고 싶어 할 때마다 마담 프루스트는 차와 마들렌을 대접한다.



슈게트는 영화 초반부터 등장하는 빵이다. 주인공 폴은 이모들과 빵집에 방문하여 여러 개의 슈게트를 구매한다. 이모들의 댄스 강습소에서 반주 음악을 연주해주는 중간중간 폴은 피아노 위에 줄지어 올려둔 슈게트를 하나하나 먹는다. 이모들이 어린아이들의 댄스를 봐주는 중간에 한 소년이 폴의 마지막 남은 슈게트를 먹어 치운다. 폴은 벌떡 일어나 이모들과 소통하는 칠판에 슈게트를 적고 밑줄까지 친 뒤 밖으로 나간다. 폴은 슈게트를 사러 나가는 중에 우연히 마담 프루스트의 집을 방문하게 된다.

슈게트는 큰 특징이 없는 빵이다. 작은 크기에 표면에는 우박 설탕이 콕콕 박혀있는 귀여운 모양이지만 속은 텅 비었다. 이런 슈게트를 사기 위해 폴은 하던 일을 멈추고 밖에 나가 버리기도 할 정도로 슈게트는 폴에게 있어 중요한 음식이었다.



속이 텅 비어있는 빵과 마음을 닫고 말을 하지 않는 영화 초반의 폴을 비슷하다. 속이 비어있는 슈게트처럼 영화 초반의 폴의 마음은 공허하다. 어린 시절의 그는 부모님의 모습을 모두 보고 있었지만 그들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후 기억의 대부분을 잃어버리고 아주 오래 전의 작은 기억 한 조각만으로 아버지를 증오하고 이모들을 신뢰한다. 마담 프루스트의 도움으로 기억의 퍼즐을 하나하나 맞추어 보며 점차 아버지에 대한 오해를 풀고 이모들의 뜻을 더 이상 따르지 않기로 다짐하며 자신의 의지로 자신만의 생각을 채워나간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속이 빈 슈게트를 먹지 않는다.



아주아주 사소한 한 가지 사실 더. 폴의 우연한 방문 이후 자신의 집을 기억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마담 프루스트는 아스파라거스 차와 마들렌을 대접한다. 폴이 정신을 잃자 장님 이웃 아저씨의 기억 못 하는 게 확실하냐는 질문에 마담 프루스트는 “네. 아스파라거스가 들었거든요. 기억을 씻어낸 다음 오줌으로 내보내죠.”라고 대답한다. 실제로 아스파라거스 속 비타민c, e, 셀레늄은 항산화 성분이 풍부해 인지기능이 저하되는 것을 막아 노화로 인한 기억력과 판단능력이 저하를 예방하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아미노산의 일종인 아스파라긴산은 소변의 합성을 촉진하여 이뇨작용을 돕는 성분으로도 알려져 있다.



빨간색과 초록색

과거는 지성의 영역 밖, 우리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물질적인 대상 안에 숨어있다. 그리고 우리가 죽기 전에 이 대상을 만날 수 있을지는 순전히 우연에 달려 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中


영화 초반 장님인 남자에게 마담 프루스트는 “당신은 색을 모르니깐요’라고 말한다. 앞을 볼 수 없는 장님인 남자에게는 당연한 이야기이다. 실제로 남자가 차를 마시고 기억의 호수로 빠져들었을 때의 장면은 흑백이다. 딱 한 가지 색만 빼고. 선글라스에 비치는 붉은 잔상과 붉은 원피스. 그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색이다.



영화는 아주 다양한 채도와 명도의 빨간색과 초록색으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두 가지 색상이 들어가지 않은 장면을 찾기가 어렵다. 특히 빨간색을 이야기해보자면, 현재의 장면과 기억 속 장면에서 모두 빨간 계열의 색이 등장하지만 폴의 기억 속에서의 빨간색은 현재의 빨간색들보다 비중이 크고 채도가 높다. 그중에서도 폴의 해변에서의 기억은 거의 빨간색으로만 되어있다. 폴의 기억과 남자의 기억에서 빨간색이 중심 색상이라는 점, 현재의 장면들에서는 그와 비교되게 초록색이 많이 사용되었다는 점, 그리고 초록색 벽지로 된 폴의 방에서 유일하게 붉은빛이 나오는 공간이 어머니와의 추억이 어린 물건과 사진을 모아둔 책상이라는 점으로 빨간색과 초록색의 분명한 경계를 알 수 있다. 빨간색과 초록색이 과거 기억과 현재를 나누는 색이라고 한다면 기억을 나타내는 빨간색이 현재까지도 중간중간 보인다는 것에서 폴의 기억이 아예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니라 의식하지 못하는 자신의 삶 속에 구석구석 숨어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처를 치유할 힘이 생긴 후에야 그 상처를 다시 들여다볼 수 있다. 잊고 지낸 아픈 과거가 생각나는 것은 현재의 내가 그것을 이겨낼 힘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폴은 상처를 들여다보는 과정에서는 마담 프루스트의 도움을 받았지만 결국 그 아픈 과거를 두 눈으로 보고 그 상처 위에 두 다리로 일어난 사람은 본인인 폴이었다.

몇 년 전에 나 자신이 했던, 내 주변 사람이 나에게 했던, 어쩌면 서운하거나 어쩌면 자려고 누웠다 허공에 발길질을 하게 될 일들이 나 자신을 괴롭힌다면, 그것은 내가 그것을 제대로 인지하고 이겨내어 다시는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을 힘이 생겼다는 의미로 생각하고, 마음이 준비한 따뜻한 홍차에 마들렌을 함께 먹어보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