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지나가는 말 한마디나 작은 정보의 조각에서 시작하곤 한다. 별을 보고 싶다는 아내의 한마디에서 우리는 여름휴가를 몽골로 가기로 했다. 사막과 초원 그리고 말. 몽골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이게 다였지만, 그 하늘은 별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길을 준비했다.
기간과 여행지에 따라 다양한 상품이 있었으나, 우리는 4박 5일의 가장 짧은 일정으로 사막과 초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여러 여행사의 다양한 패키지 상품을 찾아보다가, 공정여행이라는 표현에 끌려 작은별여행사를 선택했다. 몽골 울란바토르로 가는 항공편은 대한항공과 몽골항공에 올여름부터 아시아나항공이 추가되었는데, 우리는 결정이 늦어진 탓에 새로 개설된 아시아나의 저녁 출발, 새벽 도착 편을 예약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는 밤 비행기도 나름 괜찮았던 것 같다. 비행기 안에서 보내는 하루가 있었고, 몽골에서의 3박은 모두 게르에서 보내는 일정이었다. 예약을 위한 모든 문의는 카톡 상담으로 이루어졌다. 대면 문의는커녕 단 한 번의 전화 상담도 없었지만, 일사천리로 예약이 진행되었다. 출발 이틀 전에 여행사에서 물어볼 것이 없냐고 전화를 해주셨는데 그것이 유일한 통화였다. 최소 출발 인원이 4명이었지만, 우리 가족이 4명이었기에 우리가 원하는 일정에 출발은 가능했고, 우리가 선택한 일정에는 다른 사람들이 없어서 우리 가족만의 맞춤여행이 되었다. 덕분에 일정에 쫓기지 않는 우리만의 여유로운 여행이 되었다.
8월 3일. 저녁 8시 45분에 출발해서 11시 20분경에 도착하는 항공편에는 다양한 목적으로 몽골로 향하는 여행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7~8월이 몽골 여행 최적기이어서 몽골항공과 대한항공으로는 아예 항공권을 구할 수 없었는데, 아시아나도 만석이었다. 오후 5시 도착하는 몽골항공편을 이용하는 것과 비교하면, 첫날 도착이 늦어서 도착 후 마트에서 필요한 물품을 살 시간이 없어진 것과 첫날 숙소에 도착하는 시간이 자정이 넘는다는 것뿐, 전체 일정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어쩌면 한국에서의 하루 일정을 마치고 떠날 수 있고, 돌아오는 것도 울란바토르에서 하루 자고, 아침 비행기를 타고 오는 것보다 더 좋을 수도 있겠다. 여행사와의 상담 전화에서 마트에서 물건을 살 시간이 없다는 말은 들었지만, 우리는 달랑 컵라면 4개만 여행가방에 담았을 뿐 나머지는 여행지의 풍습에 따르기로 했다. 비행기가 약간 지연되어 첫날 숙소인 후스타이 국립공원의 캠프촌에는 다음날 새벽 2시가 되어서야 도착하였다. 처음 만난 게르는 생각보다 깨끗하고 편안한 느낌이었다. 특별히 깜깜한 밤에는 숙소와 별도 건물에 있는 공용 화장실과 샤워실을 사용하기에 조금 불편하였지만, 혹시나 해서 가져간 손전등이 참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별을 보기 위해 출발한 여행이라 늦은 시간이지만 짐을 풀자마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흐린 날씨가 걱정이었지만 그래도 하늘은 절반을 열어 우리에게 맛보기로 별을 보여주었다. 반쪽 하늘을 채운 별을 보며 아쉽지만, 남은 이틀은 하늘을 가득 채운 별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잠자리에 들었다.
8월 4일. 8시에 아침을 먹고 9시 반에 다음 목적지인 엘승타르해 미니 사막으로 가기로 했다. 아침은 몇 조각의 빵과 소시지, 계란이 밥과 함께 나왔다. 식사 후 잠시 남은 시간에는 몽골 전통 의상을 입고, 가족사진을 찍는 여유 시간을 가졌다. 뭔가 허전한 듯한 옷이었지만, 무겁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사실 따뜻하기보다는 땀이 슬슬 날 정도였다. 그리고 나서 4시간가량의 이동이 시작되었다. 매일 반복된 차량 이동은 이번 몽골 여행의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우리가 가는 사막의 이름이 bayangobi였는데 bayan은 부자라는 뜻이고 gobi가 사막이라고 했다. 고비사막이 역전앞처럼 사막이 이름에 두 번 들어갔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바얀고비에 도착해서 두 번째 게르에 짐을 풀고, 낙타 타기와 샌드 보딩을 하기 위해 사막으로 향했다. 눈앞에 앉아있는 낙타는 생각보다 컸고, 사람을 태우고 나서 뒷다리부터 일어나기에 몸이 갑자기 앞으로 쏠리는데, 낙타를 타는 중에 가장 무서운 순간이었다. 낙타의 뒷다리는 마치 무릎이 앞뒤로 있는 것처럼 관절이 2개 있었는데, 몇 번을 바라보아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30분 정도 인솔자의 손에 끌려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걸었는데, 터벅터벅 걸어가는 낙타 등에는 시간을 천천히 가게 하는 마법이 있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 몇 명을 등에 태웠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올라탄 낙타는 어딘지 모르게 지쳐 보였다.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낙타 무리에는 한 마리의 수컷이 있다는데, 내가 탄 낙타가 바로 그 숫낙타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다른 낙타보다 조금 더 덩치가 큰 것 같기도 했다.
낙타를 타고나서는 샌드 보딩을 했다. 이름은 거창하게 샌드 보딩이지만, 결국 눈썰매를 모래 언덕에서 타고 내려오는 것이었다. 짧지만 경사가 심해서 나름 속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신나게 썰매를 타고 내려가면 그다음은 모래언덕을 다시 올라와야 했는데, 정말 리프트가 그리운 순간이었다. 몇 번을 타고 오르며 다리에 힘이 빠져서 이제는 그만 타려는 순간 가이드분이 다 같이 점프를 하며 가족사진을 찍자고 해서 마지막 힘을 짜서 다 같이 점프를 했다. 박자를 맞추기 힘들어 몇 번 힘들게 뛰어올랐는데 사진은 정말 멋지게 남았다. 그리고 저녁을 먹으러 캠프로 돌아가는 길은 차로 이동하는 대신에 사막을 30분 정도 걸어갔다. 발자국 하나 없는 모래 위를 걷는 기분은 밤새 내린 눈 위에 처음 발자국을 남기는 느낌이었다. 사막이 계속 늘어난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처음 만난 사막은 바닷가 모래사장과는 다르게 저 멀리에 뭐가 있을지 궁금하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점심은 이동 중에 휴게소에서 현지식으로 먹었는데, 한국 사람들이 많이 여행을 와서 그런지 제육볶음도 메뉴에 있었지만, 나는 양고기로 국물을 낸 국수에 도전을 했고, 우리나라에서 먹던 돼지국밥과 어딘지 비슷한 느낌이었다. 저녁은 캠프에서 밥과 함께 양고기, 닭고기 요리를 먹었는데 꼭 김치 같은 한국 반찬이 없어도 몽골 맥주와 함께 먹기에는 좋은 안주가 되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이었다. 어제 반만 보여준 하늘은 오늘 낮에도 구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해가 넘어가면서 구름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고, 세상이 어두워진 이후에는 선명한 북두칠성과 함께 은하수까지 눈앞에 펼쳐졌다. 이제까지 보았던 밤하늘이 아니었다. 이름을 아는 몇 개의 별자리 사이에도 수많은 별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핸드폰을 삼각대에 고정하고 셔터스피드를 최대로 늘이고 나서 밤하늘을 핸드폰에 담기 시작했다.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한 후에 게르와 함께 어우러진 은하수를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별을 보자고 출발해서 하늘 길과 비포장 도로를 달려 마침내 '와~'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 하늘에도 같은 별이 비추고 있을 텐데, 지금 이 순간은 몽골 사람들이 더 축복받은 듯한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DSLR이면 더 좋겠지만, 핸드폰을 삼각대에 고정하고 전문가 모드에서 ISO는 400~800으로 맞추고 셔터 속도를 30초 정도로 하면 충분히 밤하늘의 별을 핸드폰에 담을 수 있다.)
8월 5일. 오늘도 아침을 먹고 어제보다 더 긴 장정에 올랐다. 아침은 어제와 비슷한 메뉴였는데, 몽골 사람들이 소시지와 계란, 빵을 아침으로 많이 먹는 건지 외지인을 위한 캠프라는 특성상 이러한 음식이 나오는 건지는 모르겠다. 어제는 200여 km를 차로 이동했는데 오늘 목적지인 테를지까지는 400km를 넘게 이동해야 한다고 했다. 포장도로라고 해도 도로 상태가 무척 나쁘고 대부분 왕복 2차로의 좁은 길이라 6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화장실을 들를 겸 잠시 머무른 휴게소는 어제 점심을 먹었던 곳이었는데, 오늘은 잠시 정전이 되어서 영업이 중단된 상태였다. 그와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어제는 화장실 사용료를 100투그릭(원화 약 50원)을 받았는데, 오늘은 돈을 받는 사람이 없었다. 받는 것이 정상인지 안 받는 것이 정상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따로 환전을 하지 않았고, 가이드분께 현지화를 받아 사용하고 나서 나중에 원화로 돌려드렸다. 우리 가이드는 한국에 유학 온 분으로 방학 때는 몽골로 돌아와서 여행 가이드를 한다고 했다. 여러모로 가이드를 잘 만나서 편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테를지를 향해 다시 출발해서 울란바토르 시내 상점에 식사도 하고, 간단한 물건도 살 겸해서 멈춰 섰다. 첫날 우리가 마트에 들리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마트에서 살 것이 없었다. 상점 안 푸드 코드에서 점심으로 먹은 현지식도 양고기와 닭고기 요리였는데, 매 끼니 고기를 먹는다고 아이가 좋아한다.
오전부터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 비는 울란바토르를 지나면서 폭우로 변해있었다. 특히 울란바토르를 지나 테를지로 가는 길은 물이 넘쳐서 자동차 바퀴의 2/3가 잠길 정도로 깊은 물길이 도로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차가 떠내려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올 7~8월에는 평소보다 비가 많이 내렸다고 했다. 여행자들에게는 좀 아쉽고 불편하겠지만, 물이 귀한 몽골사람들에게는 참 고마운 비라고 한다.
테를지 국립공원은 드넓은 초원으로 여행자들을 위한 많은 캠프촌이 있었고, 현지인들도 여가를 즐기는 장소라고 했다. 우리 가족만 있다 보니 여유롭게 이동하기도 했고, 거기에 엄청난 빗길을 뚫고 오느라 5시가 다 되어서 테를지에 도착했다. 거북바위를 잠시 둘러보고 숙소를 향했는데, 잦아들기는 했으나 여전히 비가 오고 있어서, 일단 말을 타기로 한 곳으로 가서 상황을 보기로 했다. 그런데 기적처럼 비가 멎는 것이다. 비록 말과 안장이 젖어 있기는 했지만 내일 날씨를 알 수가 없으니 승마체험을 계획대로 하기로 했다. 몽골에서는 말을 마음대로 탈 수 있다고 해서 더욱 기대되었는데, 우리 같은 초보는 마부가 이끄는 대로 말을 타고 걷는 것이지 혼자 말을 달리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1시간 정도의 승마체험이었는데 나중에 듣고 보니 승마가 좋아서 매년 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분들은 다른 곳에 가지 않고 테를지에 2~3일 묵으면서 승마를 즐긴다고 했다. 정말 맘껏 초원을 달리면서 말이다. 어제 낙타와는 다르게 그저 걷는 것인데도 위아래로 움직임이 심했고, 한 시간 후에 말에서 내렸을 때는 엉덩이와 허벅지만 아픈 것이 아니라 무릎이 아팠는데, 작은 움직임이지만 1시간 동안 무릎이 졉혔다 폈다를 반복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하로 흔들이는 말에서 앞뒤로 허리가 흔들리는데, 나름 운동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기회가 된다면 그리고 그 정도 실력이 된다면 맘껏 초원을 달리면 나도 승마에 중독되어 몽골을 주기적으로 찾을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말을 타면서 본 Tereji boarding school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궁금증을 자아냈는데, 가이드의 설명은 몽골은 유목민의 전통이 있어서 여전히 시골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지 않고 띄엄띄엄 살고 있고, 아이들은 그지역 기숙학교에서 학업을 진행한다고 했다. 방학이면 집으로 가지만, 시골의 아이들은 학기 중에는 기숙사에서 생활한다고 했다. 가이드 덕분에 몽골에 대한 많은 것들을 새롭게 배우게 되었다.
테를지를 포함해서 우리는 3박을 모두 게르에서 묵었는데, 무엇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둘째 날 묵은 바얀고비의 게르가 좀 더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게르에는 난로가 있고 그 위로 연통이 이어져 있는데, 그래서 지붕을 밀봉하기 어려운지, 낮의 폭우로 물이 새는 집들이 몇 집 있었다. 우리가 묵은 방도 물이 샌 흔적이 남아있었다. 비가 오고, 산등성이에 숙소가 있다 보니 어제보다 더 서늘한 느낌이었고, 어제에 이어 난로에 불을 지폈다. 어제는 성냥과 종이로 나무에 불을 지피려 하니 오랜 시간이 걸렸을 뿐 아니라 새벽에는 결국 불이 꺼지고 말았는데, 오늘은 토치로 불을 붙이니 좀 더 수월하게 불을 넣을 수 있었다. 정말 따뜻하다를 넘어 땀이 줄줄 흐른다. 그래서 방문을 열어두었었는데, 장작이 너무 빨리 타서 그런지 새벽에는 추위를 느낄 수 있었다. 불을 넣으면 덥고, 꺼지면 추운 상황인데, 10시경에 가득 불을 넣고 가고, 새벽 3시경에 다시 한번 불을 넣어주는 식으로 난방을 하고 있었다. 비록 유지 시간이 좀 아쉬웠지만, 장작이 타고 있는 동안은 계속 더위에 뒤척일 수밖에 없었다. 숙박객에게 맡기면 불의 양을 조절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불을 꺼뜨리고 또 관리자에게 연락을 하곤 해서 대다수의 게르 캠프촌은 정해진 시간에 불을 넣어주는 방식을 택한다고 한다. 우리가 묵은 테를지의 캠프에는 한국사람을 위해 공연도 있고, 라면을 끓여주기까지 하는 것을 보니 왜 한국 사람들만 있는지 이해가 되었다.
3일 차 저녁은 허르헉이라는 양고기 요리와 맛있다는 말에 별 고민 없이 추가한 꼬치요리와 함께 했다. 허르헉은 양고기를 달군 돌과 함께 오랫동안 삶은 요리로 몽골에서 귀한 손님을 위해 대접하는 음식이라고 했다. 약간의 양고기 특유의 냄새가 있기는 했지만, 고기는 매우 부드러웠다. 꼬치에는 양고기를 양념을 한 것과 안 한 것이 같이 꽂혀 있었고, 크기는 포장마차에서 먹던 꼬치를 생각했었으나, 꼬치 하나만 먹어도 배부를 정도의 크기였다. 이때 가이드분이 파이에 촛불을 켜서 들고 오셨다. 오늘이 작은 아이 20번째 생일이라고 낮에 했던 이야기를 기억하시고 케이크 대신에 파이를 구해오셨던 것이다. 생각하지도 못한 그러나 기억에 남을 작은 생일잔치가 되었다. 우리가 다 먹지 못할 만큼의 음식이 앞에 있어서 파이는 함께 생일 축하곡을 불러주신 다른 여행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고 보니 음식 사진을 찍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새로운 맛과 음식을 만나는 것도 또 하나의 묘미인데, 눈과 입으로만 즐기고 기록을 제대로 남기지는 못했다. 그런데 나와 둘째는 식사를 하고 나면 꼭 배가 아파서 고생을 한 것 같다. 입은 음식을 반기는데, 속은 놀란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식사를 하면 소화제를 같이 먹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8월 6일. 오늘은 울란바토르 시내 여행을 하는 날이기도 하고 내일 새벽 1시 20분 비행기로 돌아가니 실질적인 여행의 마지막 날이기도 하다. 다른 팀들보다 여유롭게 식사를 하고 9시에 길을 나섰다. 어제까지 쏟아부은 비가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었지만, 길을 나서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테를지로 들어올 때 차가 물에 쓸려갈까 걱정을 하며 들어왔는데, 나가는 길에는 이미 물이 다 빠져서 어제와 같은 곳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테를지를 나가기 전에 천진벌덕이라는 곳에 있는 칭기즈칸 기마상을 보러 갔다. 40m 높이의 은색 금속으로 만들어진 동상은 웅장하기는 하지만 뭔가 뜬금없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길 건너편에는 칭기즈칸의 어머니 동상과 공원도 조성되고 있었다.
울란바토르 시내는 서울의 출퇴근 시간처럼 길이 막혔다. 어제 내린 비가 도시에는 여전히 넘쳐흐르고 있었고 신호등이 없이 눈치껏 유턴하는 도로 구조도 길을 더 막히게 하고 있었다. 이태준 열사 기념비와 자이슨 전망대를 보는 것이 오후 일정이었는데 길이 막혀 먼저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보통 패키기 여행처럼 미리 예약된 식당으로 다니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 자리에서 몇 군데 식당에 들어가서 메뉴를 보고 오더니 한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메인 메뉴를 먹기 전에 우리나라 호떡처럼 생긴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호떡 안에 설탕이 아니라 고기가 들어 있었다. 일종의 만두인 모양이다. 다만 모양은 호떡처럼 생겼고, 속은 얇은 고기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꼭 먹어 볼만 한 간식이었다. 그리고 볶음밥과 양고기 덮밥이 나왔는데, 먼저 먹은 몽골식 만두가 간식이기에는 너무 양이 많아서 결국 음식은 절반도 채 먹지 못하고 말았다.
자이슨 전망대는 일종의 전승기념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의 지배를 받던 몽골은 소련의 도움을 받아 독립하고, 소련과 함께 2차 세계 대전에 참여하여 승전국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소련의 도움을 받은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어서 소련의 계획에 따라 지식인들이 학살되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태준 열사도 그때 희생되었다고 한다. 자이슨 전망대에서 바라본 울란바토르 시내는 도시화가 점점 진행되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는데, 도심에는 고층 건물이 가득하지만, 도시 외각에 상하수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게르촌도 보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아파트나 고급 주택이 지어지고 있었다. 소련이 울란바토르를 설계할 때 50만 명이 거주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데, 지금은 150만 명이 살고 있어서 모든 도시 시설이 수용한계를 넘었다고 했다. 몽골 전체 인구가 300만 명이라는데, 울란바토르에 그 절반이 산다고 했다. 전망대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은 여러 가지 몽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몽골은 지금 몽골 문자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소련의 영향으로 러시아에 사용하는 키릴 문자를 쓰고, 중국의 자치구인 내몽고에서는 여전히 몽골 문자를 사용한다고 했다. 내몽고에서는 중국 정부가 하나의 중국 정책으로 중국어만을 사용하게 하고 있음에도 굳건히 몽골어와 문자를 지키고 있고, 과거 외몽고라고 불리었던 몽골은 자유를 누리고 있지만, 소련의 영향으로 키릴 문자를 사용하는 것은 다소 아이러니했다.
이태준 열사 기념관은 나라를 잃은 한 지식인의 안타까운 삶이 기록되어 있었다. 의학을 공부했으나 나라를 잃고 독립운동에 투신했고, 몽골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의술을 잘 베풀어 몽골 왕의 주치의에까지 올랐지만, 소련의 교묘한 지식인 숙청에 휘말려 38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에 몽골을 떠날 기회가 있었으나, 의열단원으로 폭약전문가를 만나기로 한 계획 때문에 몽골에 남았다가 죽음을 맞이했다고 했다. 그에게는 1990년에 대한민국 건국훈장이 추서 되었다. 기구하지만 매 순간 주어진 자리에서 자신의 생각을 실천하며 진정 멋진 삶을 살다 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쇼핑에는 전혀 생각이 없었고, 우리가 원하지 않으면 갈 필요도 없었으나, 아내의 희망에 따라 국영백화점과 캐시미어 factory store을 들렸다. 몽골의 캐시미어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한국에서의 가격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가격 비교를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견물생심이라 몇 벌은 사게 되었다. 사실 저녁을 먹은 식당이 수하바타르 광장 옆에 있는 캐시미어 매장 3층이어서 식사 후에 남는 시간에 잠시 들려보니 factory store과 같은 물건을 같은 가격에 팔고 있었다. 꼭 캐시미어 제품을 사고 싶다면 한 업체 것만 취급하는 factory store보다는 고비와 고요를 모두 취급하는 광장 옆 매장을 찾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가이드에게 왜 처음부터 이곳으로 오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아무리 한국 여행객들에게 같은 가격이라고 해도 믿지 않고 factory store로 가지 않았다고 항의하기 때문에 무조건 factory store로 데리고 간다고 했다. 이해가 되었다.
저녁식사 전 마지막 일정은 수하바타르 광장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칭기즈칸이 고대 몽골을 위대하게 만든 사람이라면 수하바타르는 독립의 아버지 격으로 이 두 사람의 얼굴이 몽골 지폐에 들어있다고 했다. 광장의 이름은 한때 칭기즈칸 광장으로도 불렸으나, 원래대로 지금은 수하바타르 광장으로 불린다고 했다. 중앙에 수하바타르 기마상이 있고, 의사당 중앙에는 칭기즈칸 동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주변에는 역사박물관, 정당들의 사무실, 오페라하우스, 극장이 있었고, 캐시미어 매장과 근대식 고층빌딩이 다소 어울리지 않게 자리하고 있었다. 역사박물관이 있는 것을 처음에 알았으면 캐시미어 매장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던 시간에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었을 수도 있었는데 미리 몽골 여행을 공부하고 간 것이 아니어서 어쩔 수 없었다.
몽골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샤브샤브였다. little sheep이라는 식당이었는데, 우리나라의 패밀리 레스토랑과 같은 느낌의 깔끔한 식당이었고, 현지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번 몽골 여행에서 좋았던 또 다른 점은 한 번도 한국음식점에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테를지에서 허르헉을 먹을 때 김치찌개가 반찬으로 나와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다른 패키지여행은 항상 계약된 한식당에서 국적불명의 한국요리를 먹곤 했는데 이번에는 모든 식사가 현지식인 점이 더욱 맘에 들었다. 이동 중 휴게소나 마트 안 푸드코트, 자이슨 전망대 근처의 몽골식 fast food 모두 만족이었다. 밤늦게 비행기에서 내리자 혹시나 우리가 배가 고플까 햄버거를 사 가지고 온 가이드와의 첫 만남부터 몽골 음식이 함께 했었다. 생맥주 한잔과 함께 한 양고기, 소고기 샤브샤브와 볶음밥은 몽골을 떠나는 것을 아쉽게 하기에 충분했다.
8월 7일. 11시가 다되어 공항에 도착했고, 1시 20분 비행기여서 게이트 옆 벤치에서 2시간 정도를 보내고, 또다시 3시간 비행기에 몸을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꼭 몽골을 이번 여름에 가겠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아이들이 모두 함께 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단순히 별을 보고 싶다는 아내의 말 한마디에 네 식구가 멋진 여름휴가를 보냈다. 모든 것이 완벽하고 편안한 휴양지에서의 휴가는 아니었지만, 꼭 한 번은 눈으로 직접 보고, 가슴으로 느껴볼 만한 몽골에서의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편안한 여행을 준비해준 작은별여행사와 가이드 오카, 운전기사 후이카에게 감사를 전한다.
다음에는 어디에서 또 어떤 새로움을 마주하게 될지 벌써 가슴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