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가운데 살아간다 -Living in dying
일반인을 위한 호스피스 교육을 다녀와서
삶의 끝이 죽음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 누구라도 예외 없이 죽음으로 삶을 마무리할 것이다. 그런데 죽음을 삶의 일부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죽음은 삶의 끝에 있는 것이므로, 저 멀리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죽음은 고려하지 않고 삶에 목을 매고 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어제, 오늘 이틀간 서울성모병원에서 진행하는 일반인을 위한 호스피스 교육에 참여했다. 나는 은퇴하면 무엇을 하고 싶냐고 질문을 받으면 호스피스 봉사자를 하고 싶다고 말하곤 했었다. 호스피스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나는 호스피스를 막연히 삶의 마지막에 아등바등 죽음을 거부하거나, 무기력하게 죽음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삶을 편안히 잘 마무리하게 돕고,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생각이 크게 틀리지는 않았지만,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자신의 삶의 끝이 갑자기 보이기 시작하면, 누구나 거부할 수밖에 없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이야기처럼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는 부정하고, 분노하고, 타협하고, 우울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시간이 혼자 감내하고, 이겨내야 하는 것이 아니고, 함께 삶을 살았던, 내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들과 인생의 다양한 순간을 나누었던 것처럼 죽음도 같이 준비해야 한다. 함께 한 모든 시간이 소중한 기억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서인지, 대만의 한 호스피스 병원에는 living in dying이라는 말이 적혀 있다고 한다.
우리는 잘 사는 법을 찾기 위해 고민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잘 보내주는 방법과 내가 삶을 잘 마무리하는 방법도 고민하고, 찾아야 한다. 말기암 환자의 1/3 정도가 집에서 가족들과 생의 마지막을 함께 하고 싶다고 하지만 현실은 수%만 그 희망을 이룬다고 한다. 삶의 마지막을 미리 고민하고, 설계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고 한다. 그 모든 과정을 남겨질 가족과 함께 말이다.
교육은 삶과 죽음의 이해, 연명의료결정법, 호스피스완화의료, 말기암 환자의 신체적 돌봄, 환자와 가족의 위한 물리적, 심리적, 영적 돌봄, 생애 말기의 윤리적 이슈, 사별가족 돌봄, 호스피스다학제팀과 자원봉사자, 그리고 죽음에 대한 준비로 이뤄져 있다. 교육에 참여하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모든 사람이 반드시 한 번은 받아야 할 교육이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린 그날 나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암으로 투병하셨지만, 0기 위암이어서 어느 순간은 아버지가 환자임을 깜박할 정도였다. 몸은 그래도 많이 쇠약해지셨지만, 더 오래 곁에 계실 줄 알았다. 대동맥류 수술을 하시고도 잘 회복하셨는데... 당신 발로 몸이 불편하다고 걸어 들어간 병원에서 다시는 걸어 나오지 못하셨다. 벌써 9년이 되었다.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는 환자들의 고통과 예후를 좀 알고 있었더라면, 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 조금은 다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하루하루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끼는 환자의 두려움과 후회, 고통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지만, 환자를 여전히 존엄한 인간으로 인정하고, 환자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조금은 함께 할 수는 있다. 환자로 인해 주변 사람들도 지치지만, 환자보다 더 힘든 사람은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환자의 평소와 다른 행동들은 환자가 변한 것이 아니라, 고통과 두려움이 주는 어쩔 수 없음이라고 한다. 그래서 호스피스 병동의 모든 식구들의 관심은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맞춰져 있다.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뿐 아니라, 그 가족들의 힘듦도 함께 하는 것이 호스피스완화의료라고 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안 되는 것이 없다고 한다. 환자를 위한 것이라면, 환자가 마지막을 잘 정리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말이다.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원목자, 봉사자로 이뤄진 호스피스다학제팀은 각자의 역할에 따라 환자의 마지막을 함께 한다. 호스피스 활동은 꼭 입원으로 통해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일반 병상에 있는 환자에게 호스피스를 알리는 자문형 호스피스, 직접 입원해서 적극적 도움을 받는 입원형, 그리고 자신의 집에서 도움을 받는 가정형이 있다. 서울성모병원은 가정형 호스피스 운영이 잘 되어서 병세 관리가 가능하다면, 절반 정도의 환자들이 본인이 원하는 집에서 생을 마무리한다고 했다.
연명의료결정법에 건강할 때 미리 의사 표현을 하는 사전연명의향서와 발병 이후 의사와 상의하여 작성하는 연명의료계획서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작성 시기는 다르지만, 두 가지 모두 본인만 직접 작성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마지막에 환자가 의사표현을 정확히 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족들의 의사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적성했다면, 가족들에게 미리 의사를 잘 전달해 두라고 했다. 또한 지금은 법제화가 되어서 미리 사전연명의향서를 작성하지 못했어도 환자가 지속적으로 연명치료 반대 의사를 가족들에게 알렸다는 것을 가족 2명 이상이 확인하거나, 의사를 표현하지 않았어도 배우자와 1촌 이내 가족 전원이 동의하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도 있다고 했다. 연명치료라는 것을 제대로 인지하게 된 것도 새로운 것이었다. 치료 가능성이 없음을 알면서도 진행되는 치료만 연명치료가 되고, 의사 소견에 따라 치료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확인되어야만 거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같은 방식의 치료라도 회복이 가능하다고 의사가 판단한다면 연명치료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치료가 가능한 경우라면, 산소호흡기를 떼는 것이 안된다는 것이다.
죽음은 멀리 하고 싶지만 그 거리는 내가 결정할 수는 없다.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삶이 죽음으로 가는 여정임을 알고, 하루하루 사랑하며, 감사하며 살아간다면, 언젠가 예상하지 못할 때 죽음이 찾아오더라도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왜 벌써 왔어요라고 투정을 부리며, 잠시 기다려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죽기 전에 소원이라고 말할 것들을 지금부터 더 열심히 해야겠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정말 사랑했어요. 많이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사랑하고,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강의 자료 구석에 있었던 "곁에서 볕이 되어주는" 호스피스라는 글귀가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