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아직 해보지 않은 많은 일 중에 앞으로도 할 것 같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저는 스카이다이빙과 번지점프는 못할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짜릿함을 느끼는 활동이지만, 저는 해보고는 싶어도 결국은 못할 것 같습니다. 스카이다이빙은 낙하산이 잘 작동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비행기에서 뛰어내립니다. 번지점프는 내 몸에 묶인 줄이 나를 잡아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뛰어내립니다. 만약의 사고도 일어나지 않도록 낙하산을 점검하고 또 점검합니다. 몸을 묶고 있는 줄이 제 역할을 하도록 확인하고 또 확인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불안합니다. 낙하산이 잘못될까, 줄이 풀어질까 하는 걱정이 스릴을 맛볼 기회를 빼앗아갑니다. 그렇다고 걱정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자동차 사고를 걱정해서 차를 못 타거나, 화재가 걱정되어 전기제품을 사용하지 못하는 일은 없습니다. 자전거를 타다 여러 번 넘어져서 위험한 적도 있었지만, 여전히 자전거를 타고 다닙니다. 사고의 빈도나 위험성 때문일 수도 있지만, 결국은 제가 스카이다이빙이나 번지점프의 안전장치를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고도 그렇지만,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것 자체도 무섭기 때문입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마르코 4,40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고 묻습니다. 제가 대신 답을 해야 한다면, 저는 이렇게 답을 했을 것 같습니다. “배가 뒤집힐까 봐요.”, “물에 빠질까 봐요.”, “물에 빠지면 죽을 수도 있으니까요.”라고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럼 또 물어보셨겠지요. 왜 그런 걱정을 하느냐고 말입니다. 그러면 저는 “바람이 너무 세고, 파도가 너무 높아서요.”라고 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요. 그저 운에 맡길 수밖에 없어서요. “라고도 했을 것 같습니다. 제가 경험이 많은 선장이고, 그 정도 파도는 충분히 뚫고 갈 자신이 있다면 겁을 내지 않았을 겁니다. 오히려 더 정신을 차리고, 해야 할 일을 할 것입니다. 겁먹은 선원들에게 걱정하지 말고, 나를 믿고 따르라고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왕좌왕하는 제자들에게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고 하십니다. 이 정도 파도는 우리를 해치지 못할 것을 모르느냐고 하시는 것도 같고, 예수님이 제자들이 위험에 빠지게 두지 않을 것을 왜 못 믿냐고 하는 것도 같습니다. 또 예수님의 바람과 호수까지도 복종시키시는 힘을 믿지 않냐고 하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며 예수님의 능력을 보아 온 제자들이지만, 예수님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몰랐습니다. 이런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한 후에는 하느님이 항상 함께 하실 것임을 굳게 믿게 됩니다. 더 이상 죽음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어떤 권력도 어떤 위협도 그들을 겁에 질리게 하지 못합니다. 죽음까지도 이겨내시는 예수님을 보고 알기 때문에 제자들도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게 되었습니다.
혼자라고 생각되면 무서워집니다. 자신의 힘으로 이겨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겁이 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면 두렵습니다. 그러나, 함께 하는 사람이 있다면 용기가 납니다. 자기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그 문제를 잘 풀어갈 수 있는 사람이 도와준다면 한번 도전해 볼 수 있습니다. 그 길을 먼저 가본 사람이 안내를 해주면 좀 더 쉽게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습니다. 항상 내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친구가, 선생님이, 길잡이가, 가족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항상 제 옆에서 저와 함께 제 속도에 맞춰 함께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바람과 호수도 잠재우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계신 분이 계십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두 다 알고 계시는 분이 계십니다. 언제라도 제가 손을 내밀면 잡아주실 분이 계십니다. 제가 의심을 버리고 믿기만 하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