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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가는대로 Jul 05. 2024

연중 제14주일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등수를 매기는 것을 좋아하는 시대입니다. 어떤 것에나 순위가 매겨집니다. 높은 순위에 올라가면 뭔가 이뤄질 것처럼 생각합니다. 학교에서 시험을 보고, 성적에 따라 순위를 매기는 것을 넘어서 모든 일에 등수가 매겨집니다. 정보의 바다에는 다양한 순위들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우열을 비교하는 것이 쉬워졌기 때문입니다. 집 근처 식당도 방문자들의 리뷰가 달리고, 평점이 제공됩니다. 왠지 평점이 높으면 더 맛있을 것 같습니다. 어딘가 여행을 가게 되면 평점에 더 신경을 쓰게 됩니다. 이동하는 것도 비교해서 어떻게 가는 것이 더 빠른지, 어떻게 가는 것이 더 편리한지 찾아보고야 움직입니다. 식당 간판에 적혀 있는 메뉴에 눈길이 가기도 하지만, 구글 평점을 따라가고 있는 저를 발견할 때가 많습니다. 비교를 통해 작은 것이라도 더 이익을 얻어야만 이 세상을 제대로 사는 것 같기도 합니다. 때로는 그렇게 비교해서 좋은 것을 잘 찾아내는 사람이 부럽기도 합니다.


물건이나 식당만이 아니라 사람도 비교합니다. 누가 더 잘 생겼는지, 누가 더 직장이 좋은지, 누가 더 머리가 좋은지, 누가 더 춤을 잘 추는지 등등. 비교하는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남들만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다른 사람과 비교합니다. 지금 내 모습은 어떤지, 내가 가진 것은 얼마나 있는지 말입니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행복의 시작이라는 것은 너무나 잘 알면서도 내가 더 많이 가진 것은 뽐내고, 내가 덜 가진 것은 아쉬워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은 자신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더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고, 건강한 몸을 가지기 위해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가끔은 선을 넘기도 합니다. 대학이 인생이 전부인 것처럼 모든 시간을 학원에서 보내고, 시간과 노력 대신 단시간에 몸을 만들기 위해 돈으로 대신하기도 합니다. 남보다 앞서지 못하면 좌절하기도 합니다. 세상의 다른 많은 길들은 보이지 않고, 그저 눈앞의 길만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것들을 비난할 수만은 없습니다. 세상이 그렇게 가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많은 이가 한 발이라도 남보다 앞서기 위해 아등바등합니다. 만족하기보다는 나보다 앞에 있는 사람의 뒷모습을 쫓아가는 것이 살아가는 방식이 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정글이 아니지만,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 코린토2 12,10


오늘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잠시 멈춰서 생각해 보라고 하십니다. 힘든 세상을 뚫고 가기 위해 더 강해지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약할 때 오히려 강하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제가 약할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약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좌절한 적도 있겠지만,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저는 약할 때 겸손해졌습니다. 약할 때는 앞으로 나서기보다 한 발 뒤에서 기다렸습니다. 약할 때는 기도를 하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약할 때는 다른 사람 말을 더 많이 들었습니다. 약함을 극복하고 강해지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저 스스로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우리가 해내면 된다는 열린 마음을 얻었습니다. 제가 강한 척할 때는 가까이 오지 못했던 사람들이 약해지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강할 때는 제게 무언가를 얻으려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다면, 제가 약할 때는 제게 무언가를 주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제 스스로 좌절하고, 마음의 문을 닫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제게 다가오는 도움을 강해 보이기 위해 거절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혼자 못했던 것을 둘이 셋이 모여서 해냈습니다. 마음의 문이 열여 있어야만, 하느님도 들어와서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덕분에 저는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해졌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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