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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가는대로 Aug 15. 2024

연중 제19주일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핑크대왕 퍼시의 이야기를 아시나요? 분홍색을 너무나 좋아했던 퍼시대왕이 있었습니다. 너무나 분홍색을 좋아하는 나머지  세상 모든 것을 분홍색으로 바꾸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세상의 나무도 풀도 동물도 모두 분홍색을 바꾸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늘만큼은 분홍색으로 바꿀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스승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하늘을 분홍색으로 바꿀 방법을 찾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자 스승은 분홍색안경을 주며, 이 안경을 쓰면 하늘이 분홍색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퍼시대왕이 분홍색안경을 쓰자 하늘이 놀랍게도 분홍색으로 변했습니다. 그래서 퍼시대왕은 너무나 만족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겠지만, 저는 소위 말하는 색안경을 끼다는 관점으로 이해해보려고 합니다. 퍼시대왕에게는 세상은 분홍색이어야만 했습니다. 분홍색이 아니라면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분홍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분홍색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퍼시대왕은 행복했을까요? 모든 것이 분홍색이라면 분홍색이 가장 좋다는 것이 성립될까요? 노란색도 있고, 하늘색도 있어야 분홍색이 상대적으로 마음에 드는 것이지, 모든 것이 분홍색이 되고 나서는 어쩌면 퍼시대왕은 분홍색을 왜 좋아했는지를 잊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색안경을 끼게 됩니다. 고유의 색깔을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끼고 있는 안경의 색으로 세상을 바라보고는 고유의 색과 상관없이 판단을 합니다. 우리가 끼는 색안경은 편견과 선입견이 되어 진실을 가리게 됩니다. 학연, 지연, 혈연이 대표적인 색안경입니다. 때로는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고, 때로는 테두리 밖으로 밀어내기도 합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요한 6,42

 

오늘 복음의 유다인들은 그들의 색안경으로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인간의 몸을 거쳐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그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만 예수님을 재단해 버립니다. 요셉과 마리아와 예수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국은 이러한 그들의 색안경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합니다. 생명의 빵을 이야기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들릴 리가 없습니다. 모든 진리는 요셉의 아들이라는 색안경을 넘어설 수가 없습니다.


어떨 때는 색안경을 쓰지 않으면 너무 힘들 때도 있습니다. 햇빛이 너무 짱짱한 한낮에 선글라스가 없으면 해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운전을 하기 너무 어렵습니다. 어떨 때는 자신의 신념과 가치가 색안경이 되기도 합니다. 무분별한 가치 속에서 진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신앙의 색안경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때도 내가 지금 색안경을 쓰고 있다는 것은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고유함을 보기 위해서는 색안경을 벗을 줄 알아야 합니다. 지하주차장이나 터널에 들어가면 한낮이라도 선글라스를 벗어야만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분홍색만 있는 세상에서는 분홍색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 될 수가 없습니다. 요셉의 아들 예수를 이미 알고 있더라도, 구세주 예수를 만날 수 있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쓰고 다니는 색안경을 잠시 벗어두고 예수님의 참모습을 마주 대하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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