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이라는 이름표
종교가 무엇일까? 나에게 신앙은 어떤 의미가 있나?
순교자성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을 지내며, 순교자들의 삶이 아니라 잠시 내 삶을 돌아본다.
처음 내게 종교는 친구와 함께 찾아왔다. 초등학교 시절 친한 친구가 일요일 아침에 아파트 주차장에서 내려오라고 큰소리로 불렀다. 370원을 들고 오라고 했다. 개신교 장로교회였다. 이렇게 나의 신앙생활은 시작되었다. 나름 열심히 다녔다. 매주 성경공부도 따로 하고, 거의 빠지는 날 없이 교회를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교회에 나가기가 싫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확한 이유는 생각나지는 않지만, 억지로 기억을 짜 맞춰보면, 무리한 전교가 이유였던 것 같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나에게 누군가가 다가와 예수님을 믿으라고 했다. 교회를 다니고 있다고 했더니, 그 교회 말고 자신들의 교회로 나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내가 다니던 교회 바로 옆에 있는 또 다른 교회였다. 그때 신앙이 흔들렸던 것 같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신앙은 막을 내렸다.
주말에 집에서 놀고 있는 나를 이번에는 부모님이 성당으로 데리고 갔다. 원래는 신자셨던 부모님은 오랫동안 냉담 중이셨는데, 내가 교회를 열심히 나가는 것을 보고 다시 성당을 나가고 계셨다. 이렇게 나의 신앙생활 2막이 시작되었다. 강요하지 않는 문화 덕분에 조용히 내 자리만 지킬 수 있었던 덕에 갑작스러운 개종(?)에도 불편함은 크지 않았다. 이렇게 성당을 나가고 영세를 받은 지도 40년이 되었다. 그동안 나에게 신앙은 나를 설명하는데 빠질 수 없는 단어였다. 대학에서는 꼭 참여하고 싶은 동아리의 정기 모임이 주일학교 교사회 모임 시간과 겹쳐서 주일학교 교사회 이외에는 다른 모임을 해보지도 못했다. 한때는 신학교에 진학할까도 고민했었다. 주일 미사를 거르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금방 내가 신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앙인이라는 보이지 않는 이름표를 항상 달고 다녔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이름표는 내 삶의 등불이었다. 할까 말까, 해도 될까 안될까를 결정할 때 가장 먼저 신앙인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했으니 말이다. 심지어 미팅을 한번 하고 나서야 미팅을 하면 신자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더 이상 미팅을 하지 않을 정도였다. 정말 신앙은 나를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단어였다.
그럼 내가 박해시대에 태어나서, 신앙을 접했다면 신앙의 선조들처럼 순교했을까? 아마도 그 당시에 태어나서 신앙을 접하고 박해를 당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순교를 선택했다면 그랬을 것도 같다. 하지만 이 질문을 지금 박해를 받는다면 순교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 답은 모르겠다도 아니고, 못할 것 같다. 신앙이 여전히 내게 중요하지만 말이다.
신앙이 삶 안에 있는 것인지, 삶이 신앙 속에 있는 것인지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같은 말 같지만, 나는 삶 안에 신앙이 있는 것은 신앙을 기준으로 판단하면서 삶을 사는 것이고, 신앙 속에서 사는 것은 세속의 삶이 없이 신앙인으로만 사는 것으로 정의한다. 그래서 나는 신앙을 간직하고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답한다. 신앙은 내게 등대가 되는 것이지, 나를 가두는 울타리는 아니다. 언제 어느 곳에서든 신앙의 등대를 바라보며 내 삶이 가는 방향을 점검한다. 울타리 안에서 갇혀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직접 전교를 하지 않는다. 대신 누군가가 신앙을 가지고 싶을 때 내 삶을 보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도록 살아가려고 한다. 적어도 나 때문에 신앙을 포기하는 사람은 없도록 말이다. 내가 달고 다니는 보이지 않는 이름표는 정말 크다. 누구나 바로 알아볼 수 있다. 내가 신앙을 중요하게 생각할수록 이름표는 커진다. 이게 지금 내가 하는 신앙생활이다. 요즘은 가끔 주일 미사를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한 번도 이름표를 떼고 다닌 적은 없다. 교회에 나가기 때문에 신앙인인 것이 아니라 신앙인으로 살기 때문에 신앙인이다. 천국에 가기 위해 교회에 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신앙인으로 살았기 때문에 천국에 가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는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한다. 어쩌면 내가 지고 가야 하는 십자가는 신앙인이라는 커다란 이름표인지도 모르겠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 루카 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