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린 말론 & 아만다 뎀므, 2015년 7월 26일, 더 컷
[1부 : 에세이]
강간 사건에 연루된 여성 피해자들을 위한 사회적 변화는 지난 몇 년 동안 급속도로 발전되었는데, 이는 여성 사회운동이 시작된 이후로 가장 많은 변곡점을 이끌어냈다. 대표적인 예로는 2014년 10월에 잡지 [필라델피아]의 한 기자가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한니발 뷰레스(Hannibal Buress)가 빌 코스비(Bill Cosby)에게 비난을 하는 동영상을 업로드한 것이었다. 당시 뷰레스는 "코스비는 TV에 나와서 '제발 흑인들은 바지를 제대로 착용하길 바란다. (...) 나는 이런 말을 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나는 코미디 시트콤으로 성공한 사람이니까..'라고 말했다지만, 당신은 그저 여성들을 강간한 사람일 뿐이에요. 젠장, 이 광기 좀 어떻게 줄여보세요. 당신의 프로그램인 [코스비 쇼]를 보게 되면 최소한 기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은 거기서 상남자(dude) 이미지이지만, 사람들은 아주 좆같은 테플론(Teflon, 실수나 불법 행위를 한 뒤에도 타격을 입지 않는 사람)이라고 본다니까요. 제가 이 말을 여기 무대 위에서 하면 관객분들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할 겁니다. 아무튼, 이런 좆 같은 얘기는 짜증 납니다." 이 동영상은 급속도로 사람들의 입소문에 타면서 도저히 멈출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논란을 이끌어냈고, 빌 코스비의 평판에 재난을 초래하는 사건이 되고야 말았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뷰레스가 코스비를 강간범이라고 비난했던 장면이 아니라, 전 세계가 그의 비난을 귀담아 들었다는 점이었다. 약 10년 전에, 14명의 여성들이 코스비를 강간 혐의로 고소한 바가 있었다. 2005년 전직 농구스타이자 템플 대학 체육 관련 학과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안드레아 컨스턴드(Andrea Constand)는 당시 학교 이사회 멤버인 코스비를 만난 적이 있었다. 조사당국에 그녀가 언급한 진술에 따르면, 자신이 준 약물로 인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컨스턴드 몸을 코스비가 만지면서 그녀의 성기에 자신의 손가락을 삽입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러한 진술이 대외적으로 공개가 되자,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활동하는 변호사 타마라 그린(Tamara Green)은 한 TV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약 30년 전쯤 코스비가 자신에게 약물을 주입했고, 성적 공격을 단행했다고 폭로했다. 결국 컨스턴드 대 코스비 재판에는 여성 12명이 출두해서 익명으로 증언을 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다. 증인들 가운데서 몇몇은 스스로 이름을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여성들은 대부분 대중으로부터 거짓말이 아니냐는 의구심과 더불어 협박에 노출되었고, 그들이 가졌던 직업적 특성에 대해서도 공격을 받았다.
컨스턴드와의 법정 공방에서 코스비가 증언했던 기록이 지난주에 공개되었다. 그는 젊은 여성들에게 약물인 퀘일루드(Quaalude)를 의도적으로 먹이면서 섹스만을 하도록 유도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퀘일루드라는 약물을 사람이 먹으면 곧바로 정신이 혼미해진다. "저는 퀘일루드를 사용했습니다."라고 말한 코스비는 이어서 "'한잔 해.'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았어요."라고 답했다. 그는 모델 에이전시와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대도시에 상경해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젊은 여성들이 주된 타깃이었다고 한다. 또한 법원 기록물에는 자신의 행동이 강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확신하는 코스비의 진술이 있는데, 그는 섹스를 하기 위해서 저녁식사를 사주는 것과 섹스를 하기 위해서 약물을 주는 것과는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인식하는 듯 보였다. '합의'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품격 있는 사람이 바로 저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로맨틱한 성적 분위기에서 여성들이 품는 감정 같은 것 말이죠."라고 말했다. 만약 여성들이 그를 만나기로 했다면, 법원 기록물의 주장을 바탕으로, 코스비는 그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권리를 느꼈던 것이었다. 코스비를 고소하는 사건과 그에 따른 해결 과정이 장기화가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코스비가 법원에서 진술했던 신조를 의외로 많은 여성들이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코스비의 스태프들, 변호사들, 친구들, 그리고 여타의 사람들이 사건들이 공개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법원에서 진술을 한 다음 몇 달이 지나서 코스비는 컨스턴드와 합의를 빠르게 보았다. 몇몇 사람들이 줄기차게 공론화 시도를 했었지만, 강간 관련 고소 고발은 점차 대중의 이목으로부터 멀어져갔다. 카디건 재킷을 입은 코미디언 대부가 그런 짓을 했었을 거라고 믿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 누구도 이런 논란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내셔널 인콰이어러]는 강간을 당했다는 여성들에 대한 특집기사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코스비 측이 A4 2장 분량의 특종기사, 강간 논란에 대한 코스비 측의 주장을 주기로 먼저 다가옴에 따라, 기사는 결국 백지화되었다. [피플]은 12명의 증인들 가운데서 실명을 밝히면서 컨스턴드를 옹호하던 여성을 다룬 기사를 실었지만, 코스비의 경력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계속 이어져갔다. 지난 2014년에만 하더라도, 스탠드업 무대에서 뷰레스의 폭탄발언, NBC 방송의 신설 가족 시트콤 발표, 유명 작가인 마크 휘태커(Mark Whitaker)가 쓴 자신의 전기가 발간되었지만, 그럴 때마다 코스비는 논란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거나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빌 코스비로부터 강간을 당했다는 여성 피해자들의 진술과 양상은 꽤 오랜 기간 동안 진행된 조사연구나 다름없는 기능을 지녔다. 사건이 있고 난 다음 그들은 과연 어떻게 트라우마를 대처했을까, 그리고 당시 강간사건에 대해서는 사회가 과연 어떻게 대처하고 처리하려 했을까? 코스비가 강간을 자행했다는 첫 번째 사건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강간은 낯선 사람이 자행하는 매우 폭력적인 사건이라는 인식이 주를 이뤘다. 만약 아는 사람이라면, 여성 피해자가 강간이라고 느꼈다 하더라도, 그것은 범죄로 치부되지 않았다. 코스비로부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소수의 여성들은 그가 수차례 괴롭히거나 강간했다고 주장했다. 한 여성은 코스비가 옛날에는 약물에 찌든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1970~1980년대에 대학 캠퍼스에서 많이 벌어졌던 [Take Back at Night]이나 [No means No]으로 위시된 학생운동 덕택으로 강간 사건의 피해자들 가운데서 80~90%는 피의자를 알고 있다는 점이 널리 퍼졌다. 남성 피의자들이 처한 상황과는 상관없이 여성들의 침묵과 오히려 부끄러워하는 사회적 경향은 지속되었다. 만약 돈 많은 남성을 강간 혐의로 고소한다면, 대중은 여성 피해자가 돈이나 인지도를 노리는 거라고 힐난거렸다. 자신을 고소한 여러 여성들에게 코스비는 "너희를 믿어 줄 사람이 과연 있을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여성은 왜 목소리를 높이고 있을까?
하지만 젊은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피해 사실을 널리 퍼뜨리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야 말로 강간 사건에 대처하는 적절하지만 유일한 무기라는 공감대가 온라인에서 퍼지고 있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 캠퍼스에서 침대 매트리스를 들고 다니며 남학생들의 성폭행 사건을 항의하는 엠마 슐코위츠(Emma Sulkowicz)는 이러한 공감대의 극단적인 경우였다. 슐코위츠가 속한 세대는 지난 몇 년간 일어난 강간 사건과 그에 따른 반응에 대해서 다른 세대와 달리 유독 공격적이며 과격한 양상을 지닌다. 2012년 오하이오 주 스튜벤빌에서 일어난 사건이 대표적인 예인데, 고등학교 미식축구 선수들이 한 파티에서 술에 의해 정신을 잃은 여학생을 성폭행하고 나체 사진을 촬영한 뒤 학교 친구들과 공유하며 자랑스럽게 떠벌린 적이 있었다. 같은 해에 미주리 주의 한 10대 여성 치어리더는 학교 상급자로부터 성적 공격을 당했는데, 그로부터 며칠 후 같은 반 친구들은 그녀를 SNS에서 놀렸고, 어떤 무리에 의해서 피해자의 집이 화염으로 인해 전소되기도 했다. 이 모든 과정을 전 세계 네티즌들은 온라인에서 쭉 지켜봤다. 어떻게 이런 사건이 지금도 벌어질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사건들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고, 무시해서도 안 된다. 마치 성경의 구약에서 나오는 사건과 비슷한 지경에 이르렀다. 여기서 드는 질문 한 가지. 그렇다면 지금과 달리 강간 사건의 중요한 열쇠가 되는 증거들이 디지털화가 되지 못했어도 대중은 여전히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을 믿고 보호할까?
빌 코스비 같은 한 국가를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이 수십 년 동안 여성들에게 강제로 약물을 먹이고 강간을 했으며, 그 후에 아무런 후속 조치가 없었다는 점은 미국의 젊은 세대에 아마도 크나큰 충격을 안겨다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젊은 여성들은 코스비를 고소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무엇을 주었는데, 그것은 바로 사회에서 목소리를 나름대로 높이는 방법, 그리고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그 목소리를 더욱 높여주는 장치들이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그리고 여러 온라인 포럼에서 뷰레스 동영상이 자주 업로드되면서 코스비의 잔혹함에 수많은 네티즌들이 이구동성으로 분노를 언급하고 있다. 바바라 보우먼(Barbara Bowman)은 컨스턴드 재판이 벌어졌을 때 워싱턴 포스트에 기명 칼럼을 기고한 바 있는데, 자신의 피해사실을 그간 그 누구도 믿지 않았다는 점을 성토했다. 보우만의 글이 신문에 실리고 난 다음 3일 후에는 또 다른 피해자인 조안 타쉬스(Joan Tarshis)도 1969년에 코스비가 자신에게 약물을 먹이면서 강간했다는 점을 공개했다. 그 해 11월까지 코스비가 자신을 강간했다고 말한 여성들의 수는 16명으로 늘어났다. 그러자 코스비는 템플 대학 이사회에서 사임을 표명했고, 컨스턴드와의 합의 때문에 지불된 금액으로 인해 곤궁에 처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페이지 식스(Page Six)라는 언론사 기자에게 "중립적인 시각에서 뛰어난 저널리즘의 기준을 제시할 흑인사회 미디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12월이 되자 12명이 추가적으로 코스비 강간 피해 사실을 폭로했다. 티나 페이(Tina Fey)와 에이미 풀러(Amy Poehler)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코스비를 심한 조롱을 가하기도 했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는 아마도 빌 코스비랑 커피 한 잔 하는 줄 알았나 봐요." 변호사이자 영화배우인 글로리아 알레드(Gloria Allred)는 코스비로부터 당한 여성들이 10명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미국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도 그와 관련된 얘기를 꺼낸 바 있는데, "여성이든, 아니면 남성이든, 당사자가 모르게 약을 먹이거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섹스를 한다면, 그것은 강간"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언급했다.
지금까지 빌 코스비를 강간과 성적 학대 혐의로 고발한 여성들의 수는 46명이다. 그 가운데서 35명이 우리의 뉴욕 매거진과 인터뷰를 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35명의 여성들의 나이는 20대 초반부터 80대 고령까지 다양했고, 베벌리 존슨이나 재니스 디킨슨 같은 슈퍼모델부터 식당 종업원과 플레이보이의 바니걸과 언론인, 그리고 방송인까지, 그 직업도 나이대만큼 다양하다. 이들은 코스비로부터 피해를 입은 여성들이 더 있으며, 안타깝게도 그들은 여전히 침묵을 선택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지금으로부터 6개월 전에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때 우리는 코스비를 대외적으로 비난하고 고소한 여성들 30명을 상대로 인터뷰를 하려고 했으나, 그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응징을 하려고 하는 여성들이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했다. 피해를 입었던 여성 한 명이 우리 프로젝트에 응하자 다른 사람들도 이어서 우리와 접촉했고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기사화되기 며칠 전에 우리는 마지막 여성 2명을 사진 촬영했다. 이로써 우리와 함께한 여성들의 수는 35명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첼란 라샤(Chelan Lasha)는 우리에게 "나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그녀가 17살이었을 때 코스비가 강제로 약을 먹이게 만들었다면서 작년에 그를 고소했다. "그보다 더욱 힘이 있다고 느껴요."
사진과 에세이와 함께 만든 그녀들만의 인터뷰는 어쩌면 트라우마와 생존에 대한 기록이다. 그리고 지난 수십 년 동안 이어왔던 사건들을 회고하는 것과 다름없다. 피해를 입어 고소를 진행한 여성 35명들을 따로 인터뷰했지만, 사건에 대한 묘사부터 그에 따른 정신적 아픔까지, 그들의 이야기는 놀랍도록 유사했었다. 그들이 언급한 모든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너무나 끔찍하다(Each story is awful in its on right). 하지만 이렇게 많은 여성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개별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같이 공유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면 그 끔찍함은 배가 되고 만다. 피해를 입은 사람이 자신만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으면서 그들은 위안을 얻었고, 세상 어딘가에는 자신들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점과 더불어 인생에서 가장 두려웠고 힘들었던 순간을 이제는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고무적인 반응을 보였다. 35명의 여성들은 미국의 10개 주에 흩어져 살았고, 최근까지 서로의 존재를 전혀 몰랐었다. 하지만 코스비 관련 뉴스에서 상대방의 이야기나 증언을 듣고 SNS에서 서로들 간의 존재를 확인했다. 또한 뉴욕 매거진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따라 이곳에 마련된 사진 촬영 장소에서 서로를 만나면서 그들만의 유대감을 이끌어낼 수가 있게 되었다. 이것은 마치, 타쉬스가 말한 것처럼, "하나의 슬픈 자매애(a sorrowful sisterhood)'였을 것이다.
[2부 : 증언]
- 사건 (The Incidents)
내 에이전트가 연예계에서 아주 큰 손인 사람과 연락이 닿았다고 전해왔어요. 전도유망한 재능을 지닌 젊은 신인들에게 대단히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그 사람이 빌 코스비라는 점을 나중에 알아차렸습니다. 그로부터 개별적으로 연기 레슨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인생의 기회나 다름없었죠. 운전수가 저를 픽업하러 왔습니다. 제 에이전트가 대신 돈을 지불해 주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프로처럼 진행되었습니다. 문이 열리자 저쪽에 서 있는 코스비가 보였어요. 셔츠를 입었던 그는 저를 매우 편안하게 대해주었죠. 저는 그 사람 앞에서 독백 연기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시큰둥한 표정이었어요. 그리고 그는 "즉흥적인 연기를 해보도록 하지요."라고 말하면서 제 대본을 앗아갔습니다. 배경은 한 술집이고, 주인공은 술에 취한 사람이라는 조건을 얘기하더군요. 저에게 화이트 와인 한 잔을 따라줬습니다. 그는 저에게 술은 하나의 소도구일 뿐이라고 말했어요. 이 말인즉슨 제가 그 술을 꼭 마셔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그 후의 기억은 잘 나지가 않아요. 다만 그의 침실로 함께 걸어갔던 장면은 기억이 납니다. 그는 옷을 벗은 상태였고, 제 입술을 강제로 훔치려고 했었죠. (하이디 토마스)
제 모델 에이전트로부터 빌 코스비를 소개받았습니다. 코스비가 저를 보고 싶어 한다는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코스비가 만드는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있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그와 함께 하는 저녁식사 약속이 잡혀서 저는 얼른 그곳으로 갔었죠. 하지만 코스비 외에 그 누구도 거기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저에게 와인 한잔 먹지 않겠냐고 물었습니다. 그가 따라준 술을 몇 번 홀짝였습니다. 맛은 정말로 이상했던 기억이 나네요. 술을 들이킨 저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는 제 겨드랑이에 양손을 바치며 저를 부축해주었습니다. 그는 저를 안고 옆방으로 이동했습니다. 그 방 벽면에는 거울이 있었는데, 그는 제가 그 거울을 보게끔 지시했습니다. 뭔가 저한테 안 좋은 일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이었죠. 그러고 나서 제 오른손을 잡은 코스비는 제 허리를 감싸 안았습니다. 그 후 저는 땅바닥에 정액이 묻었던 장면만 기억이 나네요. 제 손에 술이 묻었다는 것도 그렇고요. 그제야 그가 성적인 행동을 취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얼 앨리슨)
코스비는 저와 제 친구와 같이 저녁식사를 대접해주었죠. 그가 밥을 사준 곳은 정말로 흥한 스테이크 레스토랑이었습니다. 그는 제 친구에게 말을 많이 걸었고, 그녀에게 어필하고자 노력하더군요. 그러던 그가 알약 하나를 보이더니 제 와인잔 옆에 놓으면서 "이것 말이죠, 그쪽 기분을 정말로 좋게 만들어줄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제 친구에게도 역시 권했습니다. 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제 아들을 잃었거든요. 그래서 "훌륭하군. 내 기분을 좋게 해준다고? 한번 네 말이 맞나 보자"라고 생각한 저는 그 알약을 집어 레드와인을 마시며 삼켰습니다. 이 광경을 바라본 코스비는 또 다른 알약을 하나 꺼내더니 제 입 안에 넣어주었고, 제 친구에게도 주었습니다. 두 번째 알약을 먹자마자 제 얼굴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집에 가고 싶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는 우리를 집까지 바래다주겠다고 답했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던 도중, 저는 고개를 숙이며 고꾸라졌고 메스꺼움 때문에 연신 정신 차리고자 노력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2인용 안락의자에 그가 제 친구와 함께 앉아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당시 그의 얼굴에는 포식성이 잔뜩 그려져 있었습니다. 제 친구는 완벽하게도 정신을 잃었거든요. 제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소리 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친구 못지않게 약물에 취했거든요. 그가 저에게 다가와서 앉은 다음 바지 지퍼를 내리더군요. 그는 저에게 후배위(doggy style)를 강요했습니다. 사정을 한 다음 그는 나가더군요. 그가 방문을 닫으려고 하는 찰나에 저는 "여기서 어떻게 나갈 수 있죠? 집에 어떻게 갈 수 있냐고요?"라고 묻자 그는 퉁명스럽게 "택시 부르면 되지."라고 말하더군요. (빅토리아 발렌티노)
저와 빌은 그간 친구 사이로 지냈습니다. 그의 와이프와 함께 1~2번 정도 같이 저녁식사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와 함께 일을 한 적도 있었고요. 수년 동안 협력을 한 관계였기 때문에 그의 입장에서 저는 놓치기 싫은 사냥감였을지도 모릅니다. 그가 저를 강간했을 때, 저는 정말로 크나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가 정말로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그는 정말로 미쳤던 게 아니었을까요? 제가 그의 침실로부터 나가려고 하자, 그는 "알았어. 같이 나가자고. 직원들이 우리를 밑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라고 말하더군요. 그 후로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저를 처음 만난 것처럼 대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캐티 맥키)
저는 그때 아주 지독한 두통을 앓고 있었어요. 저는 "코스비 씨, 혹시 타이레놀(Tylenol) 같은 것 있어요? 두통 때문에 정말 미치겠네요."라고 물어봤습니다. 그는 "타이레놀보다 더욱 좋은 약이 있어요."라고 답하더군요. 저는 "저는 마약 같은 것에 손대지 않는다는 점 잘 아실 텐데요."라고 응수하자 그는 "당신은 저의 최고의 친구입니다. 제가 당신을 감히 어떻게 할 수 있나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를 믿었습니다. 제가 기억나는 것은 그가 준 약을 입 안으로 삼켰다는 것입니다. 침대로 갔던 장면은 도저히 기억나지 않아요. 자초지종을 몰라하면서 일어난 제 자신이 기억나기는 합니다. 눈을 떠 보니까 제 옷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제 옆에는 빌 코스비의 친한 동료가 자고 있더군요. 그 역시 전라 상태였습니다. 잠에서 깬 그는 나를 바라보며 능글맞게 미소를 짓더니 "어젯밤 괜찼았죠?"라고 묻더군요. 저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거죠? 당신은 언제나 죽은 시체랑 섹스하나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옷을 입고 방문을 열고 나오자 빌 코스비가 거기에 있더군요. 코스비는 저에게 "어디 가세요?"라고 물었습니다. "제 몸을 어떻게 한 거죠?"라고 묻자, 그는 "오, 당신이 지독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기에 제가 퀘일루드라는 약을 줬던 것 뿐이에요."라고 답했습니다. 저는 그 순간, 빌에 대한 증오보다는 그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는 게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는 저로 하여금 자신만의 재미를 본 것 뿐이었어요. 이런 사실은 정말로 절망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조이스 에몬스)
- 그 후 (The Aftermath)
플레이보이 클럽을 관리하는 상사에게 빌 코스비가 저를 강간했다는 얘기를 전했습니다. 그 상사가 저에게 해줬던 답변이 뭔지 아세요? 그녀는 저에게 "코스비가 휴 헤프너(플레이보이 지 창립자)의 친한 친구라는 점 잘 알지?"라고 물었고, 저는 "예, 알고 있어요."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그 누구도 너를 믿지 않을 거야. 나는 그저 네가 입을 계속 다물어줬으면 해."라고 말하더군요. (피제이 마스턴)
사람들은 오늘날 종종 이렇게 말을 하지요. "사건 직후 왜 경찰서에 가서 신고를 하지 않았나요?" 2005년에 우리와 비슷한 피해를 입은 안드레아 컨스턴드가 경찰에 신고했을 때, 그녀를 위한 사건 해결 과정은 과연 어떠했나요? 아무것도 없었어요. 2005년만 하더라도, 그때까지, 빌 코스비는 미디어를 완벽하게 통제했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5년 현재, 우리는 소셜 미디어를 가지고 있어요. 우리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온라인에 있는 우리만의 목소리는 어디론가 떠나지 않을 거예요. (타마라 그린)
사건을 공론화하려고 싶었던 순간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사회에서 매장시키는 데 있어 촉발될 여지가 있는 엄청난 압박감을 견딜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거든요. (주얼 알리슨)
1975년에는 공론화가 되어도 사건은 금방 묻혔죠. 그때 강간은 공원에서 일어난 단순 폭행사건과 별반 다르지 않게 치부되었기 때문이에요. 저는 이런 사회적 경향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채 그저 오랫동안 억제할 수밖에 없었죠. 그러자 타인들에 대한 저의 신뢰에 엄청난 영향을 주더군요. (마르셀라 테이트)
강간을 당한 여성 피해자들은 그 후 인간관계에 대한 엄청난 어려운 고난을 겪고 맙니다. 저는 20대 때 내내 그래 왔어요. 정말로 친한 친구들도 사귀지 못하더라고요. 그것은 마치 검고 구역질 난 종양(tumor)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한 저만의 종양 말이죠. (피제이 마스튼)
빌 코스비가 출연한 젤로 푸딩 광고를 볼 때마다 저는 그때 당한 기억이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그때, 빌 코스비와의 만남은 제 인생에서 아주 막대한 영향을 끼쳤고, 저를 양지가 아닌 음지로 내몰았어요. (새미 메이스)
18세라는 나이는 매우 어리고 젊은 축에 속합니다. 내가 아닌 빌 코스비가 사건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너무나,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말았네요. 제 인생은 그다지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약물 중독 문제가 더욱 심해졌거든요. (린다 제이 트레이츠)
- 사태 (The Avalanche)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바바라 보우먼의 기사를 읽으면서, 특히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왜 믿지 않았는지를 눈여겨보면서, 저는 "그래, 바로 이거야. 나도 지금 말할 게 있어. 지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얘기를 해야 해. 나한테도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아마 어떤 사람은 나를 믿어줄 거야."라고 마음속으로 말했습니다. 마치 눈사태가 벌어지는 가운데 한 협곡에서 요들송을 부르는 기분과 비슷했습니다. 저는 법정 공방을 통해 합의금을 전혀 받지 못할 거라 일찍이 예상했습니다. 그저 빌 코스비로부터 강간을 당한 한 명의 여성으로 사람들이 기억해주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저만 홀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요새 느끼고 있어요. (조안 타쉬스)
사건 증인으로서 동료 피해자들의 지지를 밝힌다며 앞으로 나서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를 둘러싼 한계를 명확히 인식했어요. 몇 년 전에, 오직 1~2명의 여성만이 그를 규탄했을 때 대중은 오히려 여성들에게 조소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현재 피해자들 수를 봤을 때 진실을 회피하기가 대단히 어려울 겁니다. (재니스 베이커 킨니)
경찰서에서 형사로 근무하는 친구 한 명이 있습니다. 그녀는 보고서를 진술하라고 저에게 기운을 북돋아주었죠. 제 남편은 "하지 마. 그 누구도 당신에 대해 알기를 원하지 않아. 그들이 나쁜 얘기를 수군거리지 않았으면 해."라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형사인 제 친구는 "너는 일을 꼭 진행시켜야 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리즈 로테 루블린)
잘 봐요. 빌 코스비는 미국의 아버지라 불릴 만큼 아주 유명한 방송인입니다. 저는 그가 만약 우리 아버지였다면 어땠을지 한 번 생각해보았죠. 반라 상태로 일어나서 강간을 하고 저에게 사랑한다며 속삭이는 남자가 과연 아버지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정말로 구역질 나는 일입니다. 그가 얼마나 파렴치한 일을 벌었는지를 미국 대중은 쉽사리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엄청난 반발, 엄청난 부정, 그리고 엄청난 분노가 뒤따라 오겠지요. (바바라 보우먼)
빌 코스비의 유산은 어쩌면 오 제이 심슨(O.J. Simpson)의 유산과 비슷하게 진행될 것 같아요. 오 제이 심슨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사람들은 보통 위대한 미식축구 선수라고 떠오르지 않아요. 스포츠 선수라는 생각이 처음에 들지 않는 것처럼, 빌 코스비 역시 "위대한 코미디언"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할 거라고 보지 않습니다. 아마도 "오, 연쇄 강간범(serial rapist)"이라고 생각할 거라고 봅니다. 바로 이것이, 그가 아닌 우리의 유산이겠죠. (조안 타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