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민족의 얼굴이다.
얼어붙은 임진강을 건넌 할머니의 생존담과 대학생을 지원하러 나온 넥타이 부대에 대한 엄마의 이야기는 익히 들어왔다.
한국전쟁이 두 세대 전, 군부독재와 민주화가 고작 한 세대 전이었다.
그리고 계엄령 발발 후 가장 먼저 국회 앞으로 나갔던 이들은 그 시절을 몸으로 기억하는 그들이었다.
믿을 수 없어 달려 나왔다는 노인과 담을 지키려 몸을 부딪히는 부모들의 모습을 화면 너머 나는 지켜보기만 했다.
오늘 엄마와 나선 국회의사당 앞에서 가장 크고 가깝게 들린 목소리는 여학생들의 것이었다. 대학생과 사회초년생은 물론, 패딩과 플리스를 껴입고 각종 야광봉을 흔들던 중고등학생들까지. 앞에 턱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당부를 메아리치고, 바위계단을 오르는 한 명 한 명을 부축하고, 쓰레기는 이곳에 버리고 가라는 자원봉사자에게 새것이라며 핫팩을 건네며 감사인사를 하고, 한 목소리로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는.
그 바탕에는 전국의 노동자 연합, 퀴어 연대, 학생회, 행동 단체들과 정당의 깃발들이 휘갈겼다.
정부의 억압이 특정 무리가 아닌 국민 전체를 겨냥하는 순간마다 가장 먼저 나선 이들은 억압의 얼굴을 아는 이들이었다. 그들을 억압하던 자들이 이제 와서 모두의 자유를 외치더라도, 그들의 자유 또한 보호받을 자격이, 존엄성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폭력은 습관성이라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늘 억압되어 왔던 이들이 다시 가장 먼저 표적이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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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 한 줌은 그렇다 치고, 혼란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 급급한 자들,
빳빳한 고개를 돌려 정면을 응시하길 -
맞닿은 빤빤하고 자글자글한 피부
갈라지며 소리 내는 입술
허공을 메우는 형형색색의 빛
보라, 민족의 얼굴이다.
그대들이 외면한.
그럼에도 치켜들어 올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