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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 Dec 20. 2022

인간의 자격은 누가 부여하는걸까

-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읽고



 대학시절 내 전공은 일어일문이다. 전공 교수님은 나쯔메 소세끼 팬으로서 언제나 그의 작품을 강조하고 원서 수업을 할 때도 흥이 나셨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다자이 오사무에게 관심이 갔다. 



 다자이 오사무는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문인이며 패전 후에는 기성 문학 전반에 비판적이었던 무뢰파로 활동하였다. 비교적 평탄하고 엘리트 길을 걸었던 나쯔메 소세끼와는 다르게 무엇이 그리 괴로웠기에 5번이나 자살 시도를 하고 결국엔 자살에 성공해 비극적인 삶을 마감한 것인지 그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인간 실격 속의 나, 요조는 바로 다자이 오사무 자신을 투영해 쓴 소설이기 때문에 책장을 덮었을 때는 아.. 하는 짧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요조는 어릴 때부터 가면을 쓰고 살았다. 우울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들키기 싫어서 광대같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 사람들을 웃기거나 소위 장난꾸러기로 자신을 위장했다. 어느 날 동급생에게 그런 모습을 들키게 되고 그러자, 요조는 그가 죽기를 빌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를 죽이려는 마음만은 들지 않는다. 그러면서 요조는 생각한다.


 '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이 저를 죽여줬으면 하고 바란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제가 남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상대방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일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 이 얼마나 보통 사람과는 다른 사고방식이란 말인가? 화목한 분위기의 가정에서 자란 사람도 내면에 이런 생각을 품을 수 있단 말인가? 보통 성인이 되어 우울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의 가정환경을 살펴보면 어릴 적 어딘가에  문제가 있어서 나타나는 결과론적인 상황 아니었나? 궁금했다. 왜 이렇게까지 행동해야 하는지.

 

 요조는 죽을 때까지 술과 담배, 여자와 함께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오죽하면 책에서 술 냄새가 풍기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딱히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지만 책을 많이 읽었던 요조는 학창 시절 노력하지 않아도 성적이 좋았고, 집안도 부유해 많은 기대와 응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본인 스스로 인간에 대한 공포가 너무 컸고 자신의 우울한 모습을 숨긴 채 남을 속이며 살아가는 게 익숙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만 것이다.


 동거하던 여자와 첫 번째 동반 자살을 시도했을 때 여자는 죽고 요조는 산다. 후에도 계속 여자들과 동거를 하며 의욕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려 하지 않고 그녀들에게 빌붙어 그렇게 사는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며 술과 약에 취해간다.

 친한 친구가 그런 요조의 인생을 비난하지만 비난하는 친구를 조롱하며 그렇게 살아간다. 그리고 생각한다. 자신은 옛날부터 인간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고. 친한 친구에게조차 경멸받아 마땅한지도 모른다고.


 마지막에는 알코올 중독을 막으려 놓기 시작한 모르핀 주사에 중독이 되어 결국 정신 병원에 강제 입원을 하게 되고 쓸쓸한 세월을 보내게 된다. 

 요조가 "나는 올해 스물일곱 살이 됩니다. 사람들은 대개 마흔 넘은 나이 로들 봅니다."라고 마지막으로 술회한 것에는, 그 1936년에 자신의 생애는 끝나버렸다, 그다음은 인간으로서 살지 않았다, 라는 다자이의 통절한 의식이 나타나 있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분위기가 어두워서 가슴이 답답하고 한순간 우울해졌다.

 인간의 자격을 누가 정하는 걸까? 아니, 인간에게 자격이라는 말이 맞는 것일까?  어쩌면 남을 쉽게 믿지 못하고 경계하며 살아야 하는 요즘 세상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넌 인간으로서 실격이야"라는 말을 듣고도 남을 만한 사건을 많이 접하게 된다. 

 아동학대 사건, 이해할 수 없는 살인사건 등 우리 주변에 인간이란 탈을 쓰고 저지르는 수많은 악행들을 보며 이런 사람들에게 붙여야 할 수식어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을 읽고 인간 실격이라는 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다. 실격이라는 말에 인간 세상에서 저 멀리 떨어져 밑으로 한없이 추락하는 그림이 그려진다. 나도 어느덧 세 아이의 엄마로 40대의 삶을 살아보니, 나의 잣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여러 인간 군상들을 보아왔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경험해 갈 테지. 내 곁에 요조 같은 인물이 있다면 나는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비난만 하며 모른 척 살아갈까? 아니면 조언하며 어두운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을까? 아마도 나는 전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지금 우리 현실이라고 정당화하면서 나 살기도 바쁜데 누구의 삶에 끼어들 여력은 없다고 생각할 테지. 


 어떻게 행동해야 올바른 인간의 자격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지 계속 나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무엇보다 지금 나는 오늘을 힘차게 살아가자. 즐겁게 누리자. 적어도 스스로에게 실격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싶지는 않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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