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프라이어 사용법

인천 라면 형제를 생각하며,

by 조영미
김 넣은 데 김 났다

에어프라이어에 눅눅한 김을 넣었을 때였다. 나는 그날 전자레인지 대신 에어프라이어를 택했다. 이유는 딱 하나, 그것은 신제품이었다. 맛깔스러운 요리도 뚝딱 해낸다는 이 마법의 조리기계에는 뭘 넣어도 그것은 분명 고품질의 음식이 되어 줄 것이라 믿었다. 그것이 한 장의 김이라도 말이다. 깨물면, 파삭, 소리를 내는 김을 상상하며 에어프라이어를 돌렸다.

잠시 후 연기가 났다. 나는 기계 손잡이를 꾹 잡아 서랍 같은 밑동을 빼고 안을 들여다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김이 사라졌다!

김은 없고 김만 나네.

황당했다. 사라진 김을 찾으려 기계 안을 살펴봤는데, 불타올랐다. 에어프라이어 말이다. 떨리는 손으로 전원을 뽑아 불 붙은 기계를 싱크대에 던져 넣은 후 물을 세게 틀었다. 물소리는 커졌고, 연기는 더 거세게 올라왔다. 이제는 화재보다 화재경보기가 더 겁났다. 저녁 11시에 화재경보기가 울린다면 이 아파트 주민은 모두 밖으로 대피할 것이고, 나는 속옷도 잠옷도 아닌 차림으로 뛰쳐나가 “그러니까 우리집에서 경보기가 울린 건 맞는데요, 제가요, 모르고 김을 갖다가요”라며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겠지. 화재경보기가 울려서는 안 됐다. 나는 서둘러 창문과 대문을 열어젖히고, 마침 주방을 향해 얼굴을 내밀고 있던 선풍기를 돌렸다. 바람은 바람을 맞아 힘이 세졌고, 바람에 밀린 연기는 서서히 희미해졌다.




엄마도 주방에서 불을 낸다.

물론 나는 기계 작동에 능숙하거나 온갖 요리의 조리법을 꿰뚫은 똑, 소리 나는 주부가 아닌, 갓난아이가 자라서 병무청에 신검 받고 오는 그 오랜 세월까지 집안일을 배워가고 있는, 손이 무딘 엄마이다. 그러니까 손이 야물지 못한 이 엄마는 아이의 야식을 챙겨준답시고 냉장고와 찬장을 몇 번이고 열었다 닫았다 한 뒤에야 김을 부셔 넣은 주먹밥을 맛있어했던 아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하필이면 그 때, 집에는 먹다 남은 눅눅해진 김뿐이었고, 그것을 에어프라이어에 넣으면 갓 구운 김처럼 따뜻하고 바삭해질 거라 철썩 같이 믿었던 것이었다. 깃털처럼 가벼운 식재료는 에어가 돌고 돌면서 열을 내는 에어프라이어에 넣어서는 안 된다는, 과학인지 사실인지 상식인지 이 모두 다인지도 몰랐던 나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눌러대며, #에어프라이어 #넣으면안되는거 #김 등을 찾아보며 내가 얼마나 한심한 짓을 했는지 재차 확인하고 있었다.


잠시 후, 방에서 아이가 나왔다. 그는 제 엄마가 방금 전까지 뭔 일로 호들갑을 떨었는지도 모른 채 내게 다가와서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 배고파”

나는 아이를 올려다 보았다. 오늘따라 아이가 더 커 보였다. 저 큰 애를 삼시세끼에 간식에 야식까지 챙겨주며 스무 살 애기의 육아일기를 다시 쓰고 있었단 말인가. 이게 다 코로나 때문이야, 라고 탓하려다가, 또 에어프라이어 때문이라고도 말하지 못했다. 나는 아이에게 방금 전 주방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천천히, 조금은 흥분된 어조로 알려주었다. 아이는 말이 없었다. 눈을 몇 차례 껌벅거리더니 찬장에서 컵라면 하나를 꺼내 뜯었다. 그리고는 전기포트에 물을 끓인 뒤 컵라면에 부었다.




인천의 한 빌라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려던 10살, 8살 난 형제가 화재로 큰 화상을 입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평소 같았으면 학교 급식을 먹었을 텐데, 평소 같이 않은 날들이 지속되고 있었으니 자기들끼리 집에서 끼니를 해결하려다가 사고를 낸 것이다. 아이들의 주방을 상상해 본다. 가스레인지, 냄비, 프라이팬, 싱크대, 그리고 라면이 있었겠지. 라면을 끓이는 법은 쉽다. 물을 끓인다, 물이 끓는다, 라면을 넣는다. 에어프라이어 사용법도 쉽다. 서랍을 연다, 음식을 넣는다, 음식을 꺼낸다.


문제는 불이었다.

인천의 형제도 나도 불 때문에 식겁했다. 나는 비록 남들 다 쓰는 에어프라이어의 작동 원리도 모르는 어른일지라도 그나마 연기를 보고 사태를 의심할 줄 알았고, 불이 나는 기계의 작동을 멈추게 할 줄 알았으며, 화재경보기가 울리지 않게끔 소란을 떨 수도 있었다. 물론 순간 폭발 같이 손 쓸 수 없는 위험이 순식간에 일어나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사실 10세, 8세 아이들이라면, 라면 조리법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이 아이들이 라면을 끓이기까지의 과정은 단순하지 않았다. 그들은 급식 카드를 받아 편의점에 가서 살 수 있는 품목과 살 수 없는 과자들을 고르고 거르고 또 골라야 했고, 비닐봉지에 든 무언가들을 집으로 갖고 돌아와 그냥 먹을지 조리해 먹을지를 궁리해야 했을 것이다. 그날의 메뉴는 라면이었는데 물과 불이 필요했을 것이다. 물이 불로 뜨거워지기까지의 방법과 시간을 가늠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알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면,

엄마, 배고파


안타깝게도 아이들 곁에 엄마는 없었다.

라면 물 조절도 못 하는 어른 하나라도 집에 있었더라면, 한 끼 식사 푸짐하게 차려내지 못해도 제때 아이들에게 밥을 해 먹일 누군가가 있었더라면 이들은 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까. 엄마, 배고파, 라고 습관처럼 혹은 투정처럼 말할 수 있었더라면, 그랬다면, 엄마.


나도 그들처럼 아이들의 엄마를 기다려 본다. 수시로 기사를 클릭해 보았다. 오늘은 그랬다. 아이들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고, 아이들의 엄마가 왔단다. 아이들이 누워있는 병원으로.




드디어 새 에어프라이어가 도착했다.

이번에는 더 크고 새로운 제품이었다. 여기에 닭고기와 만두 등을 넣어보며 내 아이를 위해 한 끼를 차린다. 엄마가 새 기계를 제대로 작동시켜 조리한 음식을, 아이가 맛있게 먹는다. 마치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난 것 같지 않았다. 에어프라이어의 설명서를 찬찬히 읽어보다가 옆에 놓인 휴대폰을 들었다. 눈으로 인천 형제의 소식을 좇았다. 형이 의식을 찾았다. 동생도 형아를 따라 곧 일어날까. 그러겠지, 그래야 하겠지, 제발.


그들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모든 것이 예전 같지는 않겠지. 그래도 형제들이 건강하게 일어나 일상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세상에는 이 아이들의 한 끼를 걱정해 주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그리고 진심으로 이들에게 한 끼를 대접해 주고 싶어하는 엄마들이 많다는 사실을, "엄마, 배고파", 이 한 마디면 세상의 많은 엄마들이 흰 쌀밥, 김치, 만두, 치킨, 햄버거, 도시락, 그리고 라면 등이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흔들며 그들을 찾아갈 거라고, 우리는 정말 그럴 거라고.…. 형제들이 얼른 일어나 건강한 모습으로 일상을 되찾아 조금씩이라도 이 사실을 알아간다면 참 좋겠다. 제발 그렇게 됐으면 참 좋겠다, 얘들아.




이 글을 한 달 전쯤 썼던 것 같다.

언제끔 글을 올려야 할까, 잠시 고민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의 하루도, 아이들의 하루도 지나갔다.

이후 라면 형제에게 좋은 소식이 한 차례 들렸고, 며칠 전에는 동생이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들어야 했다.

아이들이 끼니 때문에 비극을 겪는 일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는 말밖에 전할 수 없어 어른으로서, 누군가의 엄마로서 미안한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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