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향을 품은 노지 냉이 예찬
‘앗, 25일! 오늘은 꼭 사야 해!’
서둘러 오일장이 열리는 우리 동네 중심가(?)로 향했다. 매년 이맘때마다 장날을 기다렸다가 한두 번씩 꼭 찾게 되는 이유는 바로 ‘노지 냉이’를 사기 위해서다. 처음 이사 온 7년 전에도 이미 기세가 많이 기운 아담한 장이었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그 모양새가 점점 더 빈약해져 가는 것이 아쉽다. 그럼에도 있을 건 있고, 없을 건 없는 다정한 장터는 날짜만큼은 꼭꼭 맞추어 빠짐없이 열린다. 다른 채소들보다 한 줄 앞서 나와 자리한 냉이가 반갑다.
“아주머니, 냉이 얼마예요? 한 바구니 주세요.”
“이거 노지 냉이예요. 모르는 사람들이 초록색 달라 그러지, 이런 게 정말 맛있는 거야.”
“맞아요. 노지 냉이가 정말 맛있어요.”
초록 보다는 노르스름한 빛이 더 많은 노지 냉이는 마트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귀한 몸이다. 노지 냉이는커녕 냉이를 먹어본 기억도 드문 내가, 매년 2월마다 이렇게 그 냉이를 찾아 장날을 기다리게 된 건 바로 삼 년 전 그날 이후다.
거실 창밖 풍경이 그다지 새로운 것 없는 3년 전 2월의 어느 날. 아랫집 주황 지붕 할머니가 휑한 밭에서 손을 바쁘게 움직이고 계셨다. 옆 동네 친구분이신지 처음 뵙는 할머니와 수 시간을 앉아 계신 걸 보니, 분명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계신 것이 틀림없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할머니들은 밭으로 출근하셨다. 셋째 날, 나는 결국 호미와 봉다리를 들고 밭으로 향했다. 할머니들은 갈색 흙 사이로 마음대로 자란 것 같은 초록 식물들 사이에 숨은 냉이를 캐고 계셨다. 그 자리에서 냉이 과외가 시작되었다. 비슷해 보이는 식물들 사이에서 냉이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한참이 지나서야 냉이의 얼굴을 알아보게 되었다.
두 시간 동안 한시도 한눈을 팔지 않고 열심히 냉이를 찾아냈다. 할머니 두 분이 이미 이틀이나 훑으신 밭이었지만, 다행히 내 몫의 냉이는 남아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해지고 나서야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고 일어나는데, 할머니는 검은 봉다리에서 한 움큼 꺼낸 냉이를 내 봉다리로 옮겨주셨다. 제법 큰 봉다리를 한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난 노지 냉이를 찬양하게 되었다. 냉이 튀김, 냉이 된장국, 냉이 간장 무침, 냉이 스파게티. 무엇을 만들어도 그저 놀라운 맛이었다. 마트 냉이와는 존재감 자체가 달랐다. 승자의 향을 머금었다. 곱지 않은 뿌리에 달큼함이 서려 있었다. 입안에 생기가 돌았다.
그 진한 향과 맛에 얼마나 반했던지 오일장이 열리는 날 냉이를 찾아 나섰다. 소중한 사람과 꼭 나누고 싶었다. 장에서 구입한 냉이와 직접 캔 냉이를 모아 서울에 사시는 부모님께 택배로 보내드렸다. 냉이와 달래도 잘 구분 못했던 막내딸이 시골로 내려가 보내준 노지 냉이에 엄마는 어이없으면서도 기특하다는 듯 웃으셨지만, 곧 근처에 사는 언니네 가족과 정말 맛있게 먹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살짝 웃긴 얘기지만, 남들은 잘 알 수 없는 엄청난 보물을 발견한 것 같았다.
그렇게 노지 냉이에 반했는데, 내가 직접 캔 냉이를 먹는 호사는 그 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 봄과 함께 동네에 3년 계획의 정비사업이 시작되었고, 2층짜리 사무실과 공사 창고가 하필이면 그 냉이밭에 세워졌다. 포크레인이 땅을 다듬고, 시멘트는 붓고, 컨테이너 건물을 짓는 과정을 지켜보며 이제는 만나지 못할 냉이 생각에 마음이 쓰렸다. 들어선 건물이 동네의 풍경을 바꿔놓은 것만큼이나, 그 밭에서 더는 냉이를 캘 수 없다는 사실이 오래 아쉬움을 남겼다.
오일장에 가면 할머니들이 캐서 파시는 노지 냉이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작은 위안이었는데, 올해 나가보니 냉이 바구니가 놓인 자리 개수가 예전 같지 않다. 해마다 줄어드는 바구니를 보는 마음이 조급해진다.
올해는 시장에서 산 냉이로 냉이전을 만들었다. 캔 시간만큼 다듬어야 하는 수고를 덜어 다행이면서도, 삼 년 전 더 진한 향을 품었던 냉이가 자꾸 떠올랐다. 그럼에도 노지 냉이는 여전히 향긋했다.
앞으로 몇 해나 더 이 냉이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매년 2월이 되면 그 밭과 냉이의 깊은 향은 어김없이 나를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