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2014 / <GQ KOREA>
집에 카세트테이프도 없고,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도 없다. 하지만 지금의 카세트테이프는 시대를 반영한다.
충무로 조광사진관의 탁자 위에는 카세트테이프 복사기가 놓여 있었다. 한 번에 다섯 장이 복사되는, E.U.M.이라는 한국 기업에서 만든 제품이었다. 테이프에 관해 취재하고 싶다고 연락한 터였다. 집에 손님을 초대하면 새로 산 근사한 책이 잘 보이도록 탁자에, 그것도 모든 물건의 제일 위에 올려놓는 것과 비슷했을까? 다른 점이라면 복사기에 감탄할 손님이 많을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복사기 주인인 사진가 박정근에 따르면 “4개월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중고 사이트 매물을 검색해” 찾았다. 판매자는 한 교회의 목사님이었다. 성직자여서인지, 테이프의 가치 몰락 때문인지 혼동하기 쉬운 5만원에 살 수 있었다. 택배로 받으면 고장날까 봐 직접 가서 받아왔다. 그전에도 15만원짜리 복사기를 구매한 적이 있는데 전원을 꽂자마자 내부가 타버렸다. 규모는 다르지만, 박정근에게 복사기는 데이브 그롤이 구입한 니브 콘솔(너바나의 <Nevermind>를 비롯한 수많은 명반을 탄생시킨 사운드 시티 스튜디오의 콘솔)과 유사했다. 박정근은 골동품 수집가가 아니다.
한때 그의 이름은 정치 면에서 익숙했다. 북한 트위터 계정 ‘우리민족끼리’의 게시물을 리트윗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 세계 최초의, 리트윗으로 구속된 사례다. CNN은 “한국에서는 농담으로도 감옥에 갈 수 있다”는 제목으로 이 사건을 보도했다. 1심에서 유죄,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가업을 이어 암사동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던 박정근은 이 사건으로 만신창이가 됐다. 정신적인 충격은 말할 것도 없고, 당장 사진관을 운영할 수 없게 되면서 입은 사회적인 타격이 컸다. 어려운 시절을 지나 다시 사진관을 열었지만 아버지 때부터 드나들던 동네 단골들의 발길이 끊겼다. 동네 장사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렇게 조광사진관 충무로점이 탄생했다. 이곳은 그의 재판을 도운 전우이자 친구들, 자립음악가조합의 본부로도 쓰인다. 박정근은 사진가이면서 펑크/하드코어 레이블 비싼트로피의 대표다. 짐작했겠지만 소속 아티스트의 앨범을 활발하게 테이프로 제작한다.
“전 세계 펑크/하드코어 신에서는 테이프로 제작하는 게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니에요. DIY 정신과 이어져 있고, 멍한 소리를 매력으로 느끼는 감수성을 가졌고요. 하지만 국내에서는 시도해볼 생각을 못했죠. 그러다가 레코드페어에서 엘 카스타라는 한국 전자음악가의 테이프를 발견했어요. ‘아, 한국에서도 테이프를 만들 수 있구나!’” 비싼트로피의 첫 번째 테이프 발매작은 포스트 펑크 밴드 노 콘트롤의 <무죄>였다. 복사기를 이용해 테이프 1백 장을 복사하고, 속지는 가정용 프린터로 1도 인쇄했다. 박정근과 음악가가 모여 테이프 케이스에 알맞게 속지를 접었다. 완성까지 이틀이 걸렸다. 한창 테이프가 팔리던 시절과 같은 5천원에 팔았다. 사람들의 눈에 안 띄었을 뿐 테이프가 음악 저장 매체로 쓰이고 있었다.
카세트테이프는 음성 신호를 저장할 수 있는 마그네틱 테이프를 가리킨다. 1962년 필립스에서 콤팩트 카세트테이프 형식을 처음 개발했고, 소니가 워크맨이라는 하드웨어를 발표하면서 대중화됐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가 테이프의 전성기였다. CD가 주요한 음악 매체였을 때도 시장은 작으나마 수요가 있었다. 값싸고 휴대가 간편했으며, 습관의 힘도 무시할 수 없었다. 진짜 위기는 테이프가 아닌 물리적인 음악 매체 전체에 도래했다. 음악을 소유한다는 개념의 발전은 외장 하드를 구입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테이프는 교회, 고속도로 휴게소, 어학서적에서 근근이 생명을 유지했다. 그러던 2010년, 소니가 워크맨 생산 중단을 발표했다. 2012년, 소니는 어학용으로 쓰이던 카세트 레코더마저 단종시켰다.
달라진 음악 매체 환경은 첨단과는 대체로 거리가 먼 파고다공원의 풍경조차 바꿔놓았다. 옛날 가요가 담긴 테이프와 카세트 플레이어를 팔던 길거리 좌판은 이제 옛날 가요를 1천 곡씩 담은 MP3 플레이어를 판다. 고속도로 휴게소에도, 어학서적에도 MP3 CD가 보편적이다. 다만 개발도상국의 선교 활동에 용이해, 교회만이 테이프 제작 업체의 여전한 고객이다. 역시나 앨범을 테이프로 내곤 하는 헬리콥터 레코드의 대표 박다함이 처음으로 테이프 제작 업체에 맡겼을 때 들은 말을 전했다. “설교 말고 노래 찍는 건 2년만이네.” 어떤 사람들은 설교보다 노래를 훨씬 좋아한다.
국제음반산업협회의 자료로, 바이닐 레코드는 2012년 대비 32퍼센트 많은 총 6백만 장이, 2013년 미국에서 팔렸다. 바이닐 레코드 판매액은 이미 2012년에 1997년의 최고치를 경신했다. ‘바이닐 레코드가 돌아왔다’는 말은 더 이상 허풍이 아니다. 하지만 스트리밍 역시 2013년, 전년 대비 51퍼센트 높은 수익을 올렸다. 가장 까다로운 LP와 가장 간편한 스트리밍 시장이, 나란히 급성장 중이다.
테이프는 공신력 있는 국제음반산업협회의 통계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다른 통계를 찾아본다 한들 테이프에 관한 어떠한 자료도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테이프 판매량 추이를 보여주는 그래프는 하나같이 2010년 이후 0으로 표기하고 있거나 ‘다른 매체’ 항목에 묶여 있다. 딱 하나, 2011년에는 전세계적으로 5백만 개의 테이프가 팔렸고 2012년에는 2백만 개로 급감했다는 집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장의 목소리와는 좀 다른 결과였다.
테이프 애호가라면 다 아는 캘리포니아의 레이블이자 레코드숍 버거 레코드가 증언했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판매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어요. 그동안 약 200개 타이틀을 내놨고, 총 20만 장이 팔렸죠.” 평균적으로 장당 1천개가 팔린 꼴이다. 요즘 나오는 LP중에서 1천 장 한정판은 한정판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 작년 레코드 스토어 데이에 발매된, 커버까지 온전한 LP로는 첫 발매였던 더 루츠의 <Things Fall Apart> 1천 장 한정판은 지금도 한국에서건 미국에서건 어렵지 않게 살 수 있다. ‘미국 최장수 연예 프로그램’인 NBC ‘투나잇 쇼’ 하우스 밴드의 걸작 앨범이 1년이 넘도록 1천 장이 소진되지 않았다.(*2013년, 1천장 넘버링 한정판 소진 후 또 한번의 리프레스가 있었다. 당시에는 별도 릴리즈로 구분돼있지 않아 혼동했다. 그럼에도 '1천장 한정판'의 함의는 유효하다. 해당 음반은 지금도 발매 가격과 큰 차이 없는 중고 거래가를 형성하고 있다.) <바이스>의 테크놀로지 웹진 <마더보드>에 따르면, 테이프는 “메이저 레이블과 대형 소매점으로부터 무시당하고 있다.” “페이팔과 밴드캠프를 통한 거래를 그들은 추산할 수 없다.” 테이프가 더 잘 팔린다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커져가는 테이프의 영향력에 비할 때 음악 산업이 왜 테이프를 과소평가하는지, 즉, 왜 돈을 쏟아붓지 않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어떤 음반은 CD보다 테이프가 더 잘 팔려요.” 박정근이 말했다. 펑크/하드코어 애호가들이 테이프 문화를 잘 아는 덕택이지만, 그의 설명을 들으면 테이프는 참 팔기 좋은, 또한 사고 싶은 음악 매체다. “앨범 2백 장 발매를 기준으로 크롬 공테이프 구입비 3만4천원, 속지 인쇄비 3만원, 케이스 구입비 1만5천원이 들어요.” 8만원 정도에 앨범 한 장을 제작할 수 있다. 소량 제작에 용이한 조건도 갖췄다. 테이프 제작 업체에 맡겨도 CD와 달리 소량 제작으로 인한 단가 상승폭이 크지 않고, 빠른 시간에 제작할 수 있으며(“CD는 일주일쯤? 테이프는 맡기면 다음 날.” – 박다함), CD든 LP든 가장 큰 비용이 발생하는 패키지에서, 비용도 절약하고 품질도 담보하면서 응용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 앨범 발매 후의 유통 측면에서도 가지고 다니기 편하며, 해외 배송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CD 역시 복사기를 통해 제작한다면 가격차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의 감각에 따라, CDR로 제작해서 가정용 프린터로 인쇄한 1만원가량의 CD에, 그러니까 곧 MP3로 변환하고 버려질, 곧잘 인쇄가 번지는 조악한 품질의 시디에 돈을 지불할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테이프는 저렴할 뿐만 아니라, 고유의 매력적인 경험을 환기하는 중이다.
프라이멀 스크림의 바비 길레스피는 “따뜻하고 두터운” 소리 때문에 테이프를 좋아한다고 밝힌다. 음악가 단편선은 “사운드가 멍청하다”며, 일본 발매용으로 제작된 자신의 앨범 <백년>의 테이프 발매를 반겼다. 박다함은 레이블 대표가 아닌 사용자로서 말한다. “테이프의 무게감과 잡히는 감이 재밌어요. 테이프가 쌓여 있는 것도 보기 좋고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매체 환경이 뭐가 중요해? 돈 때문에 음악하는 거 아니야, 라는 태도가 재밌죠.” 박정근은 테이프가 거래의 수단이 된다고 했다. “테이프를 내면 해외 레이블과 교환할 수 있는 창구가 열리죠. 테이프를 내는 레이블들이 다 수천 장 팔려고 음반 만드는 레이블들이 아니기 때문에 앨범을 교환하길 바라요. 세계 각지의 음악을 들어볼 수 있어요.” 얼마 전 박정근은 존경해오던 브라질의 그라인드코어 밴드 메르다의 <Indio Cocalero>를 테이프로 라이선스 발매했다.
“첫 번째 테이프 앨범을 제작하면서, 더 이상은 이렇게 막 만들면 안 되겠다 싶었어요. 테이프만의 고유한 경험을 줘야겠다고요. 예쁜 음반이 팔리는 시대이기도 하고요. 해외 레이블의 사례를 수집하기 시작했어요.” 메르다의 <Indio Cocalero>는 박정근의 야심이 반영된 역작이다. 휴대용 휴지를 구매해 휴지만 빼고 겉 비닐에 인쇄지와 테이프를 꽂았다. 밴드명이 포르투갈어로 ‘똥’을 뜻한다는 데서 착안했다. 앨범에 담긴 모든 곡의 가사와 해석이 담긴 종이는 휴지처럼 한 장 한 장 접어 넣었다. 크레딧을 적은 두 장의 종이 포함 21장이다. 유통할 때 비닐 케이스가 파손되는 경우를 막고자 ‘Merda’라는 밴드 로고 위에 광택이 나는 빨간색 박을 넣은 종이박스도 주문 제작했다. 무려 다섯 곳에 따로 맡겨서 조립하는 작업이었다. 작다는 것은 커다란 가능성에 양보한 결과인가 싶었다.
한국의 음악 카세트테이프 제작은 아직 미미하지만, 국외의 사례는 차고 넘친다. 야외 레코딩에서의 앰비언스를 이용해 명상 음악을 만드는 브라이언 그린은 <Milltown>의 케이스를 나무로 제작했다. 자연에 대한 그 나름의 정중한 접근이었다. 후쿠오카의 테이프 레이블 듀엔은 일본의 전자제품 회사 산코와의 협업으로 USB 카세트 플레이어 ‘칠 아웃’과 아티스트의 테이프, 그가 디자인한 패키지를 묶는 실험을 했다. 어학 카세트 케이스에 사이키델릭 록 밴드 헝그리 고스트와 헬의 앨범을 각각 한 장씩 넣은, 새로운 개념의 스플릿 앨범도 있었다. 실험음악 레이블 할테이프스는 마이크로테이프로만 앨범을 발매한다. 기자들의 녹음기나 자동응답 전화기에 쓰던, 그 옛날 25밀리미터 마이크로테이프가 맞다.
영기획의 대표 하박국은 제4회 서울레코드페어가 끝난 뒤, LP를 구매하는 여자들의 비약적인 증가가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소위 한국의 ‘문화’ 분야를 장악하고 있는 20~30대 여자들이 LP에도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고. 그는 물었다. “구매자 대부분이 턴테이블이 없을 거예요.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인증 샷 찍으려고 사는 거죠. 다운로드 코드로 듣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게 LP를 듣는 것과 같은 경험은 아니잖아요?” 음악 애호가 오태경은 <도미노>에 실린 칼럼 ‘판, 그리고 아날로그 오디오’에 이렇게 적었다. “LP에 담긴 정보량은 CD가 감히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지만 대충 LP를 재생하면서 발생하는 손실의 양을 감안하면 CD를 선택하는 것이 지극히 합리적인 행위다. 커버 아트를 원래 크기 그대로 보고 싶다면, 인쇄 상태가 더 훌륭하고 보기도 편하고 가격도 저렴한 커버 아트 북을 추천하고 싶다. 아날로그 오디오는 사용자가 만들어 완성해가는 소리라는 점에서 취미의 극한에 위치한다.” 아날로그 매체는 모든 사람에게 도달하기에 장애물이 많다. LP는 음악 매체로서 “취미의 극한”일 수 있지만 테이프는 ‘폼’도 나지 않고 귀찮다. 박정근은 “‘그냥 딴짓하지 말고 끝까지 들어’라는 의미도 테이프에 담겨 있어요”라고 했다. 앨범이 아닌 곡으로 소비되는 시대에, 테이프는 한 곡씩 골라서 듣기에 부적당하다. 아니, 집에 워크맨이나 데크가 있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지금 발매되는 대부분의 테이프에도 다운로드 코드가 동봉돼있다.
“쉼없이 이벤트를 만들고 공연을 기획하는 이유는요, 공연도 공연이지만, 공연 현장이 아니면 앨범이 팔리지 않아서예요.” 박다함이 말했다. 음악가가 창의력과 정성을 쏟아부은, 음반은 팔리지 않고, 음원 사이트에서는 청자에게 도달하기 어려우며, 심지어 왜곡된 소리를 낸다. “한 음악가는 한국의 음원 사이트에 올라간 자신의 곡을 듣더니 충격을 받고 다시는 음원 유통을 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일부 음원 사이트는 WAV도 아닌 MP3를 보내라고 해요. 음악을 배경음악으로 거는 사람들에게 거슬리지 않도록, 똑같이 ‘노멀라이즈’ 하고요. 음악가로선 기가 막힐 거예요. 다운로드 코드로 음악을 다운받아 듣는 게 음원 사이트에서 다운받는 것보다 훨씬 좋은 음질로 들을 수 있어요.” 하박국이 말했다. 재생 기기를 갖추고 매체 각각의 고유한 경험을 최대치로 이끌어낼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물리적인 음반을 가지면서 음악은 다운로드 코드를 통해 듣는 형태도 조금 이상한 채 합리적이다. 필요 없는 물건을 사들이는 게 어떻게 합리적이냐고? 음악이 멋이지, 그럼 아닌가. 박다함이 덧붙였다. “멋을 안 내는데 나오는 자연스러운 멋. 거기까지 가고 싶은 거죠.”
브라운 아이드 소울과 김광석의 CD가, 얼마 전 테이프를 포함한 패키지로 발매되면서 한국 언론에서도 테이프에 대한 작은 관심을 보였다. LP에 이은 또 하나의 복고라고 분석했다. 아무리 한국이 노령화 사회로 가고 있다지만, 10년이 넘게 같은 결론인 걸 보면 이젠 ‘향수와 추억’이 무슨 죄인가 싶기도 하다. 해외 매체에서는 힙스터 문화의 일부로 봤다. 하지만 ‘테이프의 레이아웃을 사랑한다’거나 ‘테이프는 너만의 이상을 가져야한다고 가르친다’거나 ‘나쁜 소리가 더 좋다’는 자칭 테이프 애호가의 항변은 타당하지만 상식적이지는 않다.
테이프의 매력이 소량 제작이라면, 한계도 소량 제작이다.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힙스터들이 구입할 뿐, 테이프를 별도로 판매하는 이상, 단일 앨범을 2천5백 장 이상 판매한 사례는 2000년대 들어 전 세계적으로 없다. “앨범 한 장을 내면 배포, 영업, 홍보를 해야 하는데, 안 그래도 짧은 음반 유통 주기에 맞춰, 작은 레이블이라면 두세명이서 음반에 대한 주목을 이끌어내야 해요. 쉬운 일이 아니죠. 하지만 테이프로 만들면 빨리 치고 빠질 수 있어요.” 박다함이 말했다. 거대 음반사가 테이프를 모른 척하는 건 돈이 될 만큼 많이 팔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음엔 들지 않지만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시장성을 무시하라는 터무니없는 요구를 할 수도 없다. 결국 ‘우리’가 일어서는 수밖에 없다.
영국에서는 지난해부터 카세트 스토어 데이가 열린다. 테이프 전문숍이 드물기에 부적절한 명칭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레코드 스토어 데이를 잇는 맥락에서 이해할 만하지만, 테이프 애호가들의 우려 역시 레코드스토어 데이라는 전례에서 온다. 테이프마저 ‘한정판 장사’가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테이프는 아날로그 매체라기보다 현대의 음악 산업에 저항하는 물리적 매체, 라는 상징성을 중요시 했다. “MP3가 아닌 물리적인 매체는, 만들 때부터 전혀 다른 자세가 됩니다.” 버거 레코드의 입장이다.
저항은 음악 산업이 아티스트와 팬, 아티스트의 팬인 레이블을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당위에서 나온다. “요즘은 그들이 매체를 발명하고 있어요. 엽서에 다운로드 코드를 넣어주고, 예쁜 USB를 만들어 담아주죠. 김일두의 가사집 역시 새로운 매체라고 생각해요.” 박정근이 말했다. 아티스트와 팬과 레이블은 추억을 먹고사는 게 아니라 진화하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얼마전 소니가 개발한, 콤팩트 카세트테이프 규격에 185테라바이트까지 담을 수 있다는 마그네틱 테이프가 음악에 적용되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그들이 직접 매체를 만드는 주체가 되고, 나란히 기술이 진보한다면 음악 산업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낮아질 것이다.
박정근은 카세트테이프 복사기를 빌려준다. 돈을 받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 제작된 테이프 몇 장과 맞바꾼다. 음악 산업은 1980년대 ‘테이프 복제가 음악을 죽인다’는 선전 문구로 복제시대를 막고자 했다. 2000년대에는 ‘MP3가 음악을 죽인다’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때 테이프를 복사하고 MP3를 불법 다운로드 받았던 사람들이야말로 음악을 사랑했다. 그들을 죄인으로 만들면서 음악 산업은 호황의 과실을 통째로 날렸다. 철학자가 염려하던 복제 시대는 ‘아우라’의 파괴에 관한 것이었지, 안정적인 재원의 파괴가 아니었다. ‘복제’는 많이 만들어서 많이 파는 자본주의적인 성장에 대한 저항일 수 있다. 하지만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으려면, 남의 것을 복제하는 게 아니라 자기의 것을 만들어 복제하는 게 중요하다. “음악만 있으면 테이프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에요.” 박정근이 말했다. 그가 하듯이 ‘거래’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테이프 현상’은 적극적인 선택이야말로 적극적인 거부라고 말한다. 박정근이 겪었듯이, 2014년 한국 사람들이 봤듯이, 산업사회가 만든 거대 조직이란 효율적이지도 않고 허점투성이며 윤리도 없다. 작아지면서 클 수 있는 드문 기회다.
사진| 정우영(現 고도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