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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영 May 03. 2024

결사적으로

MARCH, 2011 / <GQ KOREA>

강태환은 음악가다. 그에 따르면 ‘생활인과 다른’ 전문가다. 50년간 ‘나팔’을 불었고, 40년간 프리 재즈를 연구했다. 그를 만나고 세상에서 확신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생각했다.


라이브 연주를 할 때 색소폰과 방석, 그 외에 필요한 준비물이 있나요?
방석은 꼭 없어도 돼요. 피아노 커버 접어서 앉아도 되니까. 악기 수리에 필요한 도구를 챙겨가요. 악기는 고장 날 수 있으니까.


즉흥 연주를 위해 마음을 진정시킨다거나 하는 그런 준비는 없나요? 공연 전에 소리를 지른다든가, 명상을 한다든가, 그런 뮤지션들 많잖아요?
공연 전까지 친구랑 술 먹고 놀다가 음악하는 날 그러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 연주자는 체력이 뒷받침되는 가운데 좋은 소리를 낼 수 있어요. 나는 천재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항상 조심하는 편이에요.


‘조심’한다는 건 ‘준비’한다는 말인 거죠?
전문가는 생활인과 달라요. 감정에 휩쓸려서 오늘 할 일 안 하고, 내일 하자는 건 말이 안 돼요. 어떤 면에서 스포츠맨과 비슷해요. 스포츠맨이 몸 관리하듯이 해야 돼요. 그런데 요새는 그게 안 통한다고 주변에서 그러대요.


안 통한다고요?
후학들은 그런 자세를 별로 안 좋아한대요. 하지만 전문가는 그렇게 해야 돼요. 전문가는 포기할 것이 많아요. 누구나 인생의 길이는 거의 똑같아요. 뱅뱅 돌아가면 언제 도착하겠어요.


즉흥 연주를 하기에 앞서 어느 정도를 미리 정해놓으시나요? 그러니까 얼마만큼 즉흥인가요?
즉흥 음악에 요령이란 없어요. 공연 시간이 몇 분이니까 몇 분 안에는 끝내자, 중간에 네가 듀엣을 하고 그 다음에 내가 솔로 하고, 이 정도만 정해놔요.


사람들은 보통 예측할 수 없는 것에 불안을 느끼잖아요? 선생님은 어떻게 그 불안을 받아들이게 됐죠?
기질적으로 새로운 길을 가고 싶어 했어요. 새로운 걸 만나면 굉장히 흥미로워하고 반가워하고 기뻐하는 그런 기질이 있었어요.


처음 음악을 시작한 건 타의였다고 들었어요. 

집안에 예술가가 없어요. 양조장 집안이었죠. 학교에서 부잣집 아들이라고 자꾸 밴드부를 시켰어요. 클라리넷 안 하겠다고 만날 도망 다니면서 엄청 두들겨 맞았죠. 폐활량이 안 좋고, 몸도 약해서 약을 달고 살았거든요. 나팔 불 만한 신체 여건이 아니었어요. 공부도 잘 안 했는데, 막상 중학교 시험 보고 나니까 갈 데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인천 동산 중학교는 특차, 서울예고는 실기만 보고 남자는 저 혼자 합격했으니 내가 클라리넷에 재능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하하. 수업도 열외로 매일 연습 했고, 학교 다니는 동안 행사도 많이 돌았어요. 근데 하다보니 제 미래가 보였어요. 음대 가고, 유학 갔다 와서 교수하고 학장하다 은퇴하는 코스였죠. 왜 음악 교육을 받으면 전부 그렇게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서울예고 2학년 때 자퇴를 결심했죠. 내가 맞았다고 생각해요. 내 친구는 음대 학장까지 하고 은퇴해서 집에서 화초에 물주고 있는데, 전 아직도 쌩쌩하게 음악 하는 걸요. 뭐가 나은 거죠?


당신의 결단은 오로지 당신이 책임지면 되지만, 즉흥 협연의 경우에는 좀 다를 것 같은데요?
즉흥 협연은 솔로보다 더 심각한 거죠. 상대방이 내가 예측하지 못한 표현을 할 때도 그에 맞는 대처를 해야 작품이 되거든요. 그 사람한테 짓눌려도 안 되고, 그 사람을 눌러버려도 안 돼요. 젊은 사람들은 거의 누르려고만 해요. 기술 몇 가지로 눌러놓고, 자기가 더 잘했다고, 이겼다고 해요. 만약 음악가가 자기가 이겼다고 말했다면, 사실 그 무대는 버린 거예요. 특별한 기술로 누르는 사람은 역설적으로 기술이 부족한 사람이죠. 거기서 더 나아가야, 누르는 건 기술이 아니란 걸 알아요.


당신의 음악을 오선지에 옮기려는 시도를 해본 적이 있나요?
아니 그게, 옮겨지지가 않아요. 상당히 오래 전에 기록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무용보나 마찬가지에요. 무용보 보는 사람이 아주 드물거든요. 입체적인 거니까요. 그래서 외우는 버릇을 들였어요. 최근 3년간 정리 했다고 말한 게 외우고 있는 것들을 남들도 알아보게 정리하는 작업이었죠. 처음엔 그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어요. 그저 내게 남은 앙금을 좀 깨끗하게 하고 싶은 거였으니까.


어떤 방식의 정리였나요?
집에 있는 옛날 카세트에 매일 녹음하고, 들어보고, 다시 녹음하고 그랬어요. 3년 동안 한 5백 곡을 정리해서 스물다섯 곡으로 줄였어요. 같은 표현 자르고, 참 좋은 것도 구식 표현은 없앴어요. 대중적으로 너무 많이 쓰는 가락도 지웠고요. 좀 허탈하긴 했지만, 옛날 대가들도 1천 곡 이상 써서 지금까지 전하는 명작은 몇 곡 안 되니까, 나야 뭐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죠. 25년 전에 썼던 톤을 살리는 게 정말 어려웠어요. 열정이나 현장감 때문인가봐요. 음악은 흘러가면 정말 끝이더라고요. 어떤 때는 거의 한달 내내, 한두 가지 문제로 기를 쓰고 매달렸죠. 빨리 답 찾겠다고 밥도 서서 먹고 다시 붙들고 그랬어요.


후학을 위한 작업이었나요?
나를 위해서죠 뭐. 운 좋게 누가 받아준다든가, 후학이 필요로 한다면 도움은 될 거예요. 정리해놓으면 전달이 쉽잖아요. 근데 그것까진 바라지도 않아요.


하지만 당신의 ‘곡’이라는 게 일반적인 기승전결처럼 명확하진 않잖아요? 스물다섯 곡을 나누는 기준은 오로지 자신의 ‘느낌’이 되는 건가요?
제 나름의 기승전결이죠. 뭐냐면, 기술이나 톤의 변화를 느끼는 건 쉬워요. 일례로 제가 일주일에 두 곡을 쓰는 동안 제 주변에는 아무런 사건도 없었어요. 근데 한 곡은 방황해요. 물론 그 나름의 음악적 가치는 있죠. 하지만 한 곡은 너무 차분해요. 기술이 거의 똑같은 두 곡인데 이렇게 달라지는 게 음악이에요. 하지만 딱 내가 기준이란 뜻은 아니에요. 예술은 혼자 하는 게 아니에요. 궁극적으로 내가 행복하고 상대방도 행복한 거죠. 프리 재즈 문외한의 지적이라면 모르겠지만, 나에 대해 잘 알고 소양도 있는 분이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하면 문제의식을 가져요.


프리 재즈의 시작에는 ‘재즈 전통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측면이 있었죠. 하지만 당신의 음악은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정말 아니라기보다, 완전히 지워버려서 애초부터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까요?
그렇죠. 저는 사실 스윙 밴드부터 시작했으니까요. 그런데 요즘 프리 재즈하는 사람들은 대중적인 표현을 잘 몰라요. 외국 연주자들조차도 스탠더드 재즈를 못해요. 우리는 다른 걸 하니까 그건 뭐 연구할 필요 없어, 하고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뿌리 없는 음악인 거죠. 기둥이 튼튼하지 않은 집 위에 자꾸 한 층씩 쌓기만 한다면 너무 불안해 보이지 않을까요? 굉장히 위험한 거예요. 그 끝이 행복하지 못할 것 같아요. 다른 건 몰라도 상대방에게 감동을 주기는 어려울 거예요.


당신의 즉흥 음악 뒤에 굳이 재즈라는 장르 명을 붙일 필요가 있을까요?
처음부터 재즈를 진지하고 무겁게 생각했고, 재즈를 기본으로 연구를 진행했어요. 그래서 처음엔 프리 재즈라고 했지만, 점점 재즈의 요소가 없어져서 지금은 그저 ‘즉흥 음악’이라고 하는 게 더 맞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즉흥이 아무리 매끄럽고 재치 있어도, 그게 아름답지 않으면 별 가치가 없다는 거예요. 즉흥을 하고 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아름다운 게 중요하다는 거죠. 너무 아름다워서 다시 듣고 싶게 만드는 거요. ‘결사적으로’ 한다고 그러잖아요? 어떤 천재적인 능력을 지닌 사람도, 결사적으로 하는 사람은 못 당해요. 아름답게 연주하고 싶어서, 저는 결사적으로 했어요.


하지만 단지 ‘순환호흡’으로 신화화된 면이 있어요.
그렇죠. 그게 참 민망하더라고요. 사실 그건 결사적으로 연구해서 개발한 기술도 아닌데 말이에요. 관악기는 단음악기라 숨 쉴 때 음이 끊어지거든요. 피아노나 기타는 여음이 있어서 연결이 되는데, 나팔은 맥이 끊길 수 있어요. 그래서 익힌 게 순환호흡이에요. 풍문으로 들은 게 있어서 혼자서 쉽게 터득했어요. 자료가 없어서 그렇지, 어느 나라 민속 음악에도 다 그런 호흡법이 있었을 거라고 봐요. 전 세계적으로 저만 쓰는 것도 아니고요. 뭔가 표현하고 있는데 관객들이 숨은 언제 쉬나, 보고 있으니 민망해요. 물론 순환호흡에도 깊이는 있죠. 처음 배우면 2~3분은 너끈히 해요. 하지만 10~20분이 어려워요. 산소 부족으로 얼굴이 빨개져요. 침도 잔뜩 고이죠. 그 침을 삼키면서 불 수 있는 수준이 돼야 40분까지 가요.


사람들이 아는 거장은 어떤 경지에 이르면 극도의 단순성을 보여주죠. '기술'보다는 '깊이'의 관점에서 이야기돼요. 하지만 당신은 기술을 위한 훈련을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있어요.

음악가에게는 기술이 상당히 필요해요. 음악가의 경우 기술을 연구하다가 막히면 다른 악기를 해보는 경우가 많은데요. 전 그게 '환기'라고 봐요. 함정이죠. 환기가 된 거지, 연구는 아무런 발전이 없는 상태예요. 새로운 기술은 상당히 많은 사람에게 그 악기의 가능성을 넓혀줄 수 있어요. 집을 짓는다고 해도 시멘트만 있는 사람보다는 시멘트, 유리, 벽돌, 자갈, 모래가 있는 사람이 좀 더 자신이 원하는 집을 지을 수 있지 않겠어요. 저는 한 사람을 예술가라고 인정하는 데 세 가지 기준이 있어요. 첫째, 기술을 완성시킨 사람. 둘째, 자기 철학이 서 있는 사람. 셋째, 자기만의 새로운 '유流'가 있는 사람. 하지만 일단 어떤 작품을 판단하는 기준은 새로운가에서 시작하죠. 새로우면 보통 호감이 안 가요. 미친 짓 같죠. 하지만 호감이 가면 새롭지 않아요. 예술은 방종이 아니에요. 제멋대로 보여도 멋있어야 해요. 멋있으려면 자기 결과물에 책임을 져야 해요. 자신이 생각하는 고상하고 멋있는 걸 지키겠다는 책임감이 저는 예술가의 소질이라고 봐요. 



"큰 붓으로 작은 글씨 쓰는 거랑 비슷해요." 앉아서 연주하는 게 더 어렵다고, 하지만 앉아서 쓸 수 있는 기술이 더 많다고 했다. 나팔꽃 관을 다리로 막는 기술도 그 중에 하나다. "최저음에서 반음 내릴 수 있고, 음파를 방해해서 새로운 소리도 만들 수 있어요." 이 다양한 소리의 파편은 직접 경험해야 알 수 있는 경이다. 그러나 강태환은 말한다. "그 기술은 아직 자유자재로 쓰진 못해요."



타고난 재능이라기보단 음악의 '멋'에 대한 눈높이가 높은 사람이 소질이 있다는 말이군요.

그렇게 생각해요. 왜냐하면 음악 자체가 멋 때문에 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있어요. 제 악기는 40년을 써서 다 썩었어요. 수년간 길들이고 탐구해온 소리가 달라지니까. 관리만 잘할 뿐 보기 흉해도 닦지 않고 그냥 썼거든요. 하지만 인기 많은 음악가들 악기를 봐요. 새 것처럼 반짝반짝해요. 저는 오직 음악으로서 그 멋을 보여주려고 한 거예요.


꼭 그럴 필요까지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건 악기 하나로 몇 겹의 소리 층을 쌓으려고 했던 노력을 밴드로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 때문이에요. 배음은 다른 사람이 넣고 당신은 좀 더 솔로에만 치중하는 식으로요. 왜 그렇게 가지 않은 걸까요? 

86년에 강태환 트리오를 해체하고 솔로곡을 개발하고 싶었어요. 스탠더드 재즈란 색소폰의 명인들이 나오기 한참 전의 작품들이에요. 작곡가들은 색소폰을 활용할 수 있는 범위가 그렇게 큰지 미처 몰랐죠. 그래서 오래된 솔로 곡 중에 그렇게 바람직한 곡이 없어요. 또 단음악기로 솔로를 연주한다는 게 상당히 어려운 일이어서, 도전해보고 싶었죠. 내 평생 솔로 하나라도 잘 만들어서 남길 수 있다면 했어요. 이 부분에서 젊은 사람들과 세대차를 느끼는 것 같아요. 가능성 있는 후학이 가끔 보이는데, 당장 결과를 보고 싶어 해요. 일일이 참견하진 못하고, 가끔 만나 충고는 해요. 다들 고집이 세서 말이에요. 하지만 지금 잘못된 것으로 보여도, 얼마든지 좋은 쪽으로 갈 수도 있다고 봐요.


'개성'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시는 거군요.

그렇죠. 저도 젊은 사람의 순수한 톤에서 많이 배워요. 나도 고집은 세니까, 잘 알죠. 나 같지 않다고 나쁜 음악이라고 보지 않아요.


하지만 당장 기쁨을 얻고 싶은 건 젊음의 속성이잖아요.

잘은 모르겠지만, 우리는 너무 좋은 거장의 음악이 있으면 파고들었어요. 그걸 누가 만들었나, 그 사람은 어떻게 살았나, 뭘 어떻게 연주했나, 전부 말이죠. 지금 내가 스무 살인데, 딱 쉰살까지 결사적으로 하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었어요. 그래서 늘 조금이라도 감동이나 상처를 받으면, 어떤 식으로든 그에 대한 해결을 봤어요. 해결하지 않고는 잠을 못 잤어요. 욕심이 큰 거고, 아까 말한 식으로 보자면 자기의 소질을 크게 보는 거죠. 우리가 거장의 소리와 작품을 꿈꿨다면, 요즘 젊은 사람들은 돈을 꿈꾸는 것 같아요. 그 기준에서는 내가 한 게 무슨 가치가 있어 보이겠어요.


꿈꿀 수 있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하지만 젊은이들은 말하죠. "요즘 세상에 꿈꾸게 만드는 어른이 있나?" 있었다고 해도 한국 사회는 그 어른들에 대한 존중이 없었고요. 

예술가가 돈을 존경하는데, 대중들이 예술가를 존경할 필요는 없죠. 예술가 거칠 필요 없이 바로 돈을 존경하면 되잖아요. 예술가들이 세상과 너무 친해졌어요. 예술가 지망생들과 예술을 좋아하는 관객들의 실망이 크다는 걸 알아요. 우리 책임이 커요. 예술가가 세상과 싸우지는 못할망정, 어깨동무하고 있으니까, 얼마나 꼴보기 싫겠어요.


음악을 하는 목적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요?
어렸을 때는 스타가 되고 싶었죠. 턱시도 입은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요. 대부분의 음악 하는 사람들이 그런 꿈을 꾸죠. 그러다가 우리의 미묘한 감성을 건드리는, 그 소리의 여운을 알았어요. 내가 음악 감상실에서 들은 그 대가들의 소리를 꼭 한 번 내보고 싶은 데, 그게 어렵더라고요. 스무 살도 안 됐을 때였지만, 지금까지 그 마음 그대로예요. 남이 못 듣는 소리를 이제는 더 많이 듣죠. 행복해요. 그걸로 족한데, 일면식도 없는 외국 사람들이 날 초청하고, 신문에도 실어주고, 음반도 내줘요. 외국에서 초청이 와도, 연구 시간 줄어드는 게 아까워서 안 가는 걸요.


당신이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모든 관객이 들을 수는 없죠. 통념적으로 알려져 있는, 즉흥 음악은 관객을 배반하는 음악이다, 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팝 음악만 듣던 사람이 들으면 불쾌할 테고, 음대생이 들어도 참 기분이 나쁘겠죠. 둘 다 고정관념으로 음악을 들을 테니까. 실제로 미대 가서는 연주를 많이 해봤는데, 음대에서는 거의 못해봤어요. 그게 아니라면 연주자의 발표가 잘못됐겠죠. 즉흥 음악에는 이런 부분이 있어요. 정적인 부분과 격렬한 부분의 조합을 5대5로 해도, 격렬한 부분의 인상이 강하니까 관객은 9대1로 느껴요. 곡을 만드는 사람은 모르고 지나가는 부분이죠. 제가 젊어서 ‘공간 사랑’에서 연주할 때는 스님 불러다 반야심경 시켜놓고 그걸 반주로도 음악을 했어요. 무모한 실험이었지만, 참 격렬했죠.


당신도 젊었으니까요.
하지만 관객을 위해 이렇게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내 공부라고 생각했지. 지금 그 스타일로 하면 젊은 사람들한테 인기 좀 끌지 않을까 싶어요. 하하. 예술가는 항상 뒷모습을 보여줘야 해요. 스치고 지나가 버려서 뒷모습밖에 못 보는 게 이상적인 예술가예요. 인기가 있다면 재빨리 앞으로 가라는 거죠. 음악은 늘 설명하기 어렵지만, 고정관념화되는 것, 그러니까 말로 설명할 수 있다면 이미 구식이에요.


'말로 설명하는', 음악 비평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문학이나 미술에 비해 한국의 음악 비평은 너무 약한 것 같아요. 논리성이 심각하게 떨어져 있고요. 무엇보다 열정이 부족해요. 물론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비평은 필요한 거예요. 하지만 음악 비평이나 대중매체의 수준이 매한가지로 보인다면, 큰 문제죠. 


언어의 힘을 빌려야 하는 경우, 그러니까 대부분이 라이브 연주인 당신의 음반에 사후적으로 제목을 달아야 하는 그 '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음반 기획자들이 알아서 제목을 붙여요. 열 몇 장 되는 음반 중 제가 만든 제목이 붙은 적이 거의 없어요. 제목 가지고 싸우기도 뭐한 게, 어떤 때는 음악도 기획자 맘대로 바꾸는 걸 뭐. 한 곡과 다음 곡 사이를 딱 10초만 띄어야 한다.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내 말대로 안 되면 계약도 취소하겠다 했는데도, 그걸 붙여놨어요. 영업하는 사람이 그런 걸 몰라요. 제겐 그 10초가 작품 전체보다 중요하게 보는 부분이었어요.


제목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군요. 

처음에는 후배가 숫자로 붙여줬어요. 나중에 한 300까지 갔는데, 180이 뭐였지? 하게 되더라고요. 하하. 음악에도 표제음악이 있고 절대음악이 있지만, 절대음악 같은 경우 숫자로 노래를 구분한다는 건 소리로 승부를 보겠다는 얘기거든요. 미술이나 문학의 영향을 받아서 넣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음악은 음악의 언어가 있죠. 얽매일 필요 없다고 봐요. 표제음악은 그대로 좋은 점이 있고, 이쪽은 이쪽대로 좋은 점이 있어요. 특별히 어느 쪽을 고집하진 않아요.


김석출이나 이광수 같은 한국 전통 음악의 장인들과도 협연한 바 있죠? 한국 전통 음악과 재즈가 퓨전에 매달린 시기도 있었고요. 어떤 가능성을 엿보신 바가 있나요?

전 세계적으로 동양과 서양 음악을 합치려는 시도는 많았죠. 하지만 명작이 나왔다는 말은 못 들어봤어요. 동양화가랑 서양화가가 화판 하나 갖다놓고 작품 만드는 것과 비슷해요. 가능성이 거의 없어요. 서양 음악의 본질과 한국 음악의 본질이 만나야하는데, 외관상으로 만나려니까 어색하고, 쇼 같아요.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는 수준에서는 모르겠지만, 예술성까지 끌고 가긴 어렵다고 봐요. 정선아리랑을 피아노로 쳐봤자 우리나라 고유의 미분음이 안 나요. 북한이 우리 고유의 음정을 버리자 서커스 음악으로 변했죠. 중국은 평균율에 전통 악기를 맞춰서, 전통 악기로 바이올린 소리까지 낼 수 있지만, 그게 예술성인가는 곰곰이 생각해봐야죠. 음정이 안 맞는데, 그냥 연주하다니요. 한참 잘못된 생각이에요. 우리 선조들은 그 머리보다 훨씬 앞서 있었어요. 세종대왕 같은, 그러니까 정치가가 작곡까지 했잖아요.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어요. 귀 나쁜 사람들 앞에서만 음악 하겠다는 건가요? 

당신은 소리로, 가능한 끝을 추구했습니다. 그런데 왜 수많은 거장들이 도달한다는 '도인'의 경지로 보이지 않죠?

인간은 다 똑같아요. 대중들이 도인을 보고 싶어하는 것이고, 도인인 척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언젠가 제가 도인이 됐다는 생각이 들 때까 있었어요. 처음 만나는 유명한 음악가인데, 명상에 들어가니 그 사람이 어떻게 연주할지 예상이 되더라고요. 이러다가 교주가 되겠다 싶었죠. 하하. 깨달음의 지극한 경지가 정신에만 있다고 보지 않아요. 운명의 신은 필요도 없는 육신을 준 걸까요? 육신의 즐거움도 하나의 축복이에요. 즉흥 음악은 음악이라는 단어조차 없을 때의 자연스러운 소리를 지향하니까, 그런 소리를 찾으려면 도를 닦는 자세가 필요하긴 해요. 하지만 도인은 별 게 아니에요. 자기반성을 해야죠. 제가 그렇게 오래 했어도, 성찰을 하면 잘못된 것도, 새로운 것도 보여요. 인류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 보면 우리는 실 한 가닥이잖아요. 실 한 가닥으로 무슨 이 세계 전체를 움직이는 것처럼 착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 따라갈 건 따라가야죠. 따라가서 좋은 게 또 참 많아요. 서두를 필요도 좌절할 필요도 없어요. 10년을 하루같이 살면 돼요. 


10년을 하루같이 살았다면, 음악은 몰라도 다른 쪽은 엉망이었을 것 같은데요? 

열심히 해도 가족들은 만족을 못했죠. 제 나름 최선을 다했는데, 그게 그 사람들 보기에는 최선이 아니었던 거예요. 바캉스 가서 졸고 앉아 있는데 어떻겠어요? 제가 있고 싶은 곳은 늘 음악이 있는 곳이었으니까요. 가족들은 나 때문에 평생 자존심상해 했고, 헌신해야 했어요. 참 미안하고, 안아주고 싶고 그래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있고, 그런 채 너무 긴 세월이 흘렀죠. 전문가는 생활인의 삶을 망치지나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분야가 아니라 알토 색소폰의 전문가가 된 필연성이 있었다고 생각하나요?

학교를 자퇴하고 산으로 갔어요. 선생님에 대한 기대와 회의가 있어서, 속리산, 무악산 등의 곳에 집을 짓고 살았죠. 내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고, 클라리넷이 산에서는 어떻게 울리는지도 들어보고 싶었어요. 자신감이 있었어요. 심지어 인천서부터 걸어서, 그 산들을 다 다녔죠. 그러고 돌아와서 보니 제 밥벌이는 제가 해야겠더라고요. 미군 부대를 연주를 시작했어요. 거기에서 알토 색소폰이 필요하다 그래서 클라리넷이랑 같이 분 거예요. 좋아서 시작한 것도 아니었고, 클라리넷이나 바리톤 색소폰은 취직이 잘 안 된다는 이유도 잇었죠. 나중에 클라리넷과 알토 색소폰을 어쩌다가 잃어버렸는데, 집에 알토 색소폰이 하나 더 있었어요. 지금까지 불고 있는 40년된 색소폰이 바로 그거예요. 클라리넷이 재즈에는 무리가 있었고, 저음 표현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생각해보니 그런 거 저런 거 다 떠나서, 사건들이 있었네요. 


어떻게 보면 꼭 자신의 선택은 아니었던 길로, 지금까지 왔습니다. 앞으로는 당신의 의지대로 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나요? 

운이 좋았어요. 하지만 나의 길이었다고 생각해요. 운명의 신이 과연 나한테 어디까지 갈 수 있께 했나, 정말 궁금해요. 그걸 밝히는 게 내 음악이고 인생이라는 생각이에요. 스스로 시작하진 못했지만, 스스로 끝은 내야죠. 제가 지금 나팔을 50년이나 불었는데도, 계속해서 실력이 올라가고 있어서, 자만하는 생각마저 들어요. 한편으로 나는 꽤 똑바로 결사적으로 한 사람에 들어가는데도 무대에서 두려워요. 관객이 두려운 게 아니에요. 음악이 두려워요. 관객이 어려운 게 아니라, 음악이 어려워요.


사진| 안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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