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기 시작했던 이야기

목요일 의식의 마무리

by 영무

#1

오전은 글쓰기 수업으로 광화문에 가고,
오후는 명상 수업으로 5호선 정반대인 명일동에 가는 일이었다.

오전 출석판에 이름을 쓰기 위해 이른 아침 지하철에 올라 메일함에 밀린 레터를 읽었고,
오후 매트에 눕기 전 본가에 들러 엄마와 매주 한번 점심 한 끼를 같이 했다.




#2

공허해지는 계절이 오자 축축해지는 대로 무겁게 가라앉던 마음을 내버려 둘 수 없어
일주일 중 하루라도 가득 채워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10월 뜬금없이 일하러 떠난 거제도가 그 계기였다.

처음 와본 바다를 보며, 처음 본 사람들과,
처음 해보는 일을 하며, 생소한 감각을 느꼈다.
공허함과 무기력함에 투항하기엔 재밌는 일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했다.

​어쩐지 돌아올 것 같지 않은 몽돌해변에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3

아무도 없는 높은 언덕을 따라 올라가 책상에 앉으면 프린트물 흰 여백에 글이 가득 쓰였고,

각자의 무거움을 담고 옆에 나란히 누운 사람들과 싱잉볼 소리를 함께 따라가다 보면 그 무게가 덜어졌다.

어떤 감각적 표현으로 나의 경험을 전달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고,
생각이 날 덮칠 땐 심장소리를 들으며 현재의 나에게 집중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게 됐다.




#4

첫 목요일의 내가 떠오른다.

먹어도 비어버린 존재들이 떠난 만큼의 무게는 채워지지 않고,
아무리 관리해도 푸석하던 피부와 마음.

'고생했다고, 사랑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세요.
촛불에 나를 위한 소원을 담아 불어보며 마지막 수업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목요일 마지막 수업.




#5

둘러보니 바다다.
눈이 부시다.


힘들 땐 세상이 날 도와주니 운이 좋다.

내 손으로 돌을 골라 던진다.

다시 올지 모를 짠내 나는 물 앞에
모래 아닌 돌이 가득한 검은 해변에

두고 와야만 가벼워진다

뜨거운 빛이
검은 머리를 밝게 한다

23.12.01.



오늘은 작은 조각글이 여럿이네요.

아직 여러분들은 저와 함께 과거의 제 글 속을 떠다니고 계시는데요, 말씀드리자면 지금은 어두웠던 시기 중 가장 밝은 구간입니다.

어둠 밖으로 나아가는 시작이지요.


'먹어도 비어버린 존재들이 떠난 만큼의 무게는 채워지지 않고' 이 문장이 저를 아프게 합니다.

그때의 공허함과 상실을 너무 잘 담아서요.


채워도 채워지지 않던 영혼의 슬픔을 거제도 바다에 돌과 함께 던져버린 날, 저는 나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수업날, 그 처음을 떠올리며 이 글 조각들이 완성됐습니다.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고통에도 영원은 없더라고요.

아마 우리의 사랑에 영원을 주지 않기에 공평히 작용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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