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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뮤즈 Jan 13. 2019

그때는 알지 못했고 지금은 아는 것

더 기다려줄 걸 그랬다. 


술을 달고 살았던 네가 그 안에 어떤 고충에 휩싸여서 술을 찾을 수밖에 없었는지, 너의 이야기를 들어볼 걸 그랬다. 왜 들어볼 생각조차 못했던 건지 그때의 내가 야속하기만 하다. 왜 아무 말없이 창 밖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이따금씩 "아, 그냥 다 포기해버리고 싶다." 했다가 "으, 내가 스스로 웃기다. 포기할 것도 없는데 나."라고 혼잣말처럼 이야기하곤 했는지. 


생각해보면 네게 질문을 한 적이 별로 없다. 그저 너의 생각을 먼저 이야기해주면 잘 들어주었고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노력이라고 짐작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너도 누군가가 너의 이야기를 기다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먼저 물어봐주고 그 안에서 같이 춤을 추고 노여워도 하며, 서로의 감정이 얽히고설켜 있다는 걸 확인하길 간절히 바랐다는 걸. 나의 마음이 수동적인 적은 없었다. 네가 좋았고 그래서 가까워지고 싶었으며 가까워지고 나니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너에게 나의 존재감을 느끼게 하고 너의 일상에 나의 자리를 만들어서 내가 없는 네가 불가능해지도록 하고 싶었다. 항상 어느 정도의 간격을 남겨놓는 네게, 너는 내가 없어져도 괜찮을 정도로만 나를 좋아하고, 허락하고 있다고 어리광만 피우던 나였다. 그리고 정작 그렇게 되었을 때는 내가 너에 비해 너무 어리다는 게 느껴졌고 우리의 관계 속에서 나는 점점 더 어린아이가 되어갔다. 너의 관심을 항상 몽땅 받고 싶었고 너의 흥미를 끄는, 내가 아닌, 다른 요소는 -사람, 사물 모두 다 포함하여- 나의 질투의 대상이었다. 나는 분명 너를 답답하게 했고 근데 그건 정말로 집착이 아닌, 사랑이었다. 나에게 이 세상의 중심은 너였고 모든 게 너로 시작했다가 너로 끝이 났다.


시간이 야속하다. 왜 그때는 내가 알던 너의 모습과 다르다고 너를 비난하기만 했을까. 너를 달라지게 한 요인이 뭔지, 그때 너의 머릿속과 마음속을 어지럽고 힘들게 하던 게 뭔지 왜 나는 알려고 하지 않았을까. 왜 달라진 너의 모습을 보며 껍데기만 볼 줄 아는 남들과 똑같은 생각을 했던 걸까. 

 

차라리 모를 거면 끝까지 모르지, 왜 지금에서야 알게 된 걸까 이렇게 가슴 아프게. 지금에서라도 알게 되었다고 기뻐하기엔 매일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눈물로 적셔지고 그 눈물의 바다로 멀리 멀리 빠져버리는 기분이다. 


나는 앞으로 뭐가 되었든, 어떤 사람이든 어떤 일이든, 기다릴 거다. 기다리는 사람의 자세를 가슴 깊이 새기고 기다릴 거다. 그 시간의 공백을 홀로, 외로이 메우는 일의 가치를 아는 사람의 자세로. 외롭고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라, 진정으로 그 가치를 깨우친 위대한 존재들임을 이제는 안다. 너무나도 아프게 알게 되었다. 



- 내가 네가 되어서 한번 써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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