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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Jan 12. 2016

"미쳤어"하면서도 벗어날 수 없는 공부중독

486 판타지 '공부', 이젠 벗어나자

내가 시민기자들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공부중독사회' 기획의 한 꼭지다. 사실 이 책이 '대담'을 옮긴 것이다보니 상당히 다층적인 내용이 포함되어있는데, 그것을 전부 풀어내기가 힘들어서 고민을 많이했다. 그리고 기사로 나갈 때는 적지 않았지만 난 이 책의 앞부분이 매우 보기 힘들었다. '공부중독'의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는 요즘 애들의 '증상'들이 나열되며 과도한 일반화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다. 엄기호도 그 점이 자꾸 신경 쓰였는지 "세대론으로 비치지 않았으면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지만 그렇게 무마하기엔 너무 심했다. 심지어 데이트폭력까지 '요즘 애들이 타인과 소통할줄 몰라서'라니...



"너희는 이제부터 6년 동안 죽었다 생각하고 공부해야해." 


중학교를 막 들어갔을 당시, 다니던 보습학원의 부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이 지금까지 뇌리에 깊숙이 박혀 있는 이유는 그렇게 폭력적인 말을 쉽게 내뱉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 하나 반발하지도 혹은 부모에게 일러바치지도 않았다. 아이들은 대부분의 어른들이 학생들에게 바라는 것은 '공부'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살던 금천구는 교육열이 높은 곳이 아니었다. 수능성적과 서울대 입학률이 서울시 26개 구 중 가장 낮은 구이며, 학원 수도 비교적 많지 않은 곳이다. 금천구가 이 정도라면 다른 곳의 분위기는 어땠을까? 나는 상상이 잘 가질 않는다.  


'공부를 통한 좋은 수능 성적→ 전문직 또는 대기업 입사'라는 성공 코스의 정석은 몇십 년 째 변하지 않고 있으며, 그 길에서 뒤처지거나 낙오된 이들은 열패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동시에 공부는 '앎'을 위한 것이 아닌, '정석'을 따르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식을 습득하고 한 사람의 주체로서 서기 위한 공부라는 행위가, 오히려 사람을 '공부의 노예'로 종속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 악순환은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다. 


연애도 '공부하는' 아이들 

이렇듯 '공부만이 답이라고 믿는 이들이' 여전히 사회 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상황을 사회학자 엄기호와 정신과의사 하지현은 '공부중독'이라고 명명한다.  

<공부중독>(위고)은 이들이 공부중독 현상에 대해 네 차례에 걸쳐 대담을 한 후 엮어낸 책이다.  

첫 장 '공부에 중독된 아이들'에서 이들은 대학강사와 정신과의사라는 입장에서 공부중독이 만들어 낸 '요즘 아이들'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 '공부 중'이라는 푯말만 든 채 사회로 나가지 않고 그냥 머물러서 나이만 계속 먹어가는 젊은 친구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는 거죠" (하지현, 23페이지) 


"어느 시점에서 한국 사회에서 아이가 양육되고 교육되는 방식이, "나는 중요한 사람이고, 나는 뭐든지 다 할 수 있고, 내가 다 컨트롤하고 평정해야 하고...' 이런 어마어마한 만능감을 심어준 것 같아요. 그런데 실상 자기 현실은 너무 비루하거든요"(엄기호, 32페이지) 




이들은 공부중독이 만들어낸 부작용이 어떤 것인지 요즘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낸다. 본문 속에서 나타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요약해보자면 이렇다.

 

- '공부 중'이라는 이유로 끊임없이 사회로 나가는 것을 유예시키는 학생들

- '슈퍼 노멀' 혹은 만능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이 있다

- 연애도 학원에서 배운다. 인간관계의 근육이 쇠퇴하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 머릿속 세계의 완전성과 현실의 불완전성으로 인해 괴리감에 시달리며 인생이 불만족스럽다

- 매끈하게 요약정리해서 정답을 향해 돌진하는 것, 그런 식으로 공부해야만 안심한다

- 삶을 최적화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 돌발적인 일이 생기면 견디질 못한다


얼핏 보면 단순히 "요즘 애들 문제 많다"는 흔한 어른의 지적으로 들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엄기호는 "태도와 행동은 조건, 구조, 상황의 산물"이라며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요즘 애들론'처럼 비춰질까봐 우려를 했다. '공부중독'은 사회 전체의 문제이지, 어느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말한 셈이다. 


'공부 판타지'에서 벗어나라 

두 번째 장 '누가 공부에 욕심을 내는가'와 세 번째 장 '중독에서 해독으로'에서는 이와 같은 공부중독 현상이 벌어지게 된 이유와, 이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인지 진단한다.  


"들인 노력에 비해서 하나만으로 가장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 공부였던 거죠. 따라서 모든 것을 공부를 통해서 해결하길 바라고 이에 몰입하다 보니, 그 반작용이 공정함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표출이 돼요. 결국은 공부 내지는 공부에 의한 평가가 전부인 세상, 공부라는 담론이 다 잡아먹고 있는 세상이죠."(하지현, 87페이지) 


한국 전쟁 이후 '제로베이스'에서 돈을 벌던 사람들이 부를 재생산하는 방법으로 '교육'을 택했고, 아이들의 공부에 올인해서 만들어놓은 게 지금의 486 세대이다. 그리고 486 역시 자신들이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공부를 통한 성공 신화'를 아이들을 통해 실현하려고 한다는 것이 이들의 분석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이 투자 대비 아웃풋이 떨어진 상태라는 데 있다. 486은 경제가 팽창하던 시기에 공부를 통해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다. 심지어 공부를 시키는 부모들도 이걸 알고 있다.  

그러나 "'미쳤어, 미쳤어'하면서도 나만 판에서 빠질 수는 없는 거예요. 이 라운드에서는 내가 이기고 나가고 새 라운드가 시작될 때 판이 깨지길 바라죠"라는 하지현의 말처럼 부모들은 그나마 '아는 길로', '이미 사회가 맞다는 길로' 가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더욱더 자식의 공부에 열중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이들은 구조적으로는 대졸자와 고졸자 간의 임금 격차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이와 같은 격차를 좁힌 이후에는 특성화고등학교와 같은 직업 학교가 더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아니다. 이들은 구조를 변화시키자는 거창한 주장 대신에, 개개인이 더이상 공부만이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해서 '공부중독'에서 탈출하자고 말한다.  


"부모고 아이고 리스크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커요. 그런데 그 두려움을 넘어서야 돼요" 

(하지현, 153페이지) 


'공부'가 오히려 우리 아이들의 삶을 망친다는 자각을 했다면, 이젠 과감해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이들이 갖는 희망적인 요소는 학교 공부가 중심이 되는 정형화된 삶의 방식에 문제를 느끼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고, 이에 따라 다른 길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공부중독에 빠지지 않는 사람들도 슬프다 


책 말미에선 공부중독에서 소외된 이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중산층 중심의 '강요된 공부 시스템'에서 소외되어, 학교에서는 피곤해서가 아니라,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시간을 때우기 위해 항상 잠을 자는 그런 아이들 말이다. 그들에게는 공부란 언제나 '실패'의 기억뿐이다. 한국 교육은 그들을 포기하다시피 한다. 


금천구에서는 서울권 대학에 가는 친구들이 많지 않았다. '공부중독사회'의 주류의 관점에서 보면 '실패한' 아이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국영수 성적이 낮았을 뿐 다른 공부는 해본 적도 없다는 사실, 그리고 '안정된 길'로 가는 게 아닐 뿐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이는 많지 않다. 공부중독사회에서는 언제나 '학교 공부 성적'만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수십년간 지속된 공부중독사회는 공부중독에 빠진 이들도, 공부중독에 빠지지 않은 이들도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2016년엔 수많은 시민들이 '공부중독' 현상에 반기를 들고, 변화시킬 수 있을까? 전망은 여전히 어둡다.                            


원문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72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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