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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Jan 12. 2016

잘 모르는 이야기와 잘 아는 이야기

1. 잘 모르는 이야기


20대의 절반 이상은 4년제 대학에 가지 못한다. 혹은 않는다. 그러므로 한국 사회의 '청년문제 담론'은 반쪽자리다. 우리 사회의 헤게모니를 지배하는 자들은 전부 4년제 대학을 나왔고, 그들이 인지할 수 있는 '청년문제'라는 것은 "저렇게 좋은 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안 된다는거야?" 정도에 불과하다. 


유병재는 똑똑한 개그맨이지만, 유병재가 보여주고 있는 청년이라는 것조차 그런 모습들이다. (본인도 한계를 알 거라고 생각한다) '적당한 4년제(인서울+지역별 원투톱 4년제) 에 적당한 스펙을 가지고 트라이하지만 잘 안풀리는, 그래도 '정규직'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있는, 그게 우리 사회의 '표준 청년' 아닌가.


본의아니게 '규격 외'가 되어버린 사람들. 죄송스럽게도 나도 그분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분들이 돈을 많이 버는지 못 버는지, 힘든지 안 힘든지 알기가 힘들다. 언론사에선 명문대 나온 기자가 명문대 나온 취재원에게 도움을 얻어 청년문제 기사를 쓴다 (예:달관세대) "우리 어떻게 살고 있어요"를 알리는 운동조차도 보통 명문대 안에서 시작한다. 그러니 '공동체'를 꾸리지 못한 전문대,고졸, 혹은 네임밸류가 낮은 4년제 학생들은 자신이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말할 기회조차 안 주어진다.


20대의 절반 이상은 대학2년만 다니고서, 혹은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돈을 버는데도, 20대의 핵심 문제가 '취업난'이라고만 생각하면 뭔가 이상한 것이다. 지금 '청년'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알기 위해선 분명 그 절반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파편화되었기에 오히려 '4년제 대학 나온 백수'들보다 더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간다. 그렇다면 그걸 하나하나 찾아내며 '청년'이라는 퍼즐을 맞춰나가고, 나머지 절반의 목소리도 수면 위로 끌어 올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게 언론매체종사자나 청년담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임무 아닐까.


2. (비교적) 잘 아는 이야기


앞서 전제를 깔았다. 나는 분명 절반의 이야기는 모른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 아니 10~20%정도 청년들의 이야기는 그럭저럭 안다. 청년문제에 대해선, 부끄러움을 감수하고 일단 '아는 이야기'만 하겠다.


그중 제일 잘 아는 사람들은 언론사 입사 시험을 준비했던 이들(이하 언시생)이다.  '이름 있는' 대학을 나와서, '이름 있는' 매체에 가려는 속물성과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견지할 수 있는 영민함이 공존하는, 그런 군상들이다. 물론 개중에는 멍청하고 게으른 사람도 있지만, 그들은 보통 스터디 내부에서조차 배제된다.


'언시생'은 고학력 집단이고 상향평준화 돼있다. 언시생(본격적으로 준비하는)은 기자, pd, 아나운서 지망생을 합해서 3000명 정도로 추정된다. 그런데 그들이 원하는 '이름 있는'언론사에선 전 직군을 합해봐야 1년에 150명도 안 뽑는다.(신입기준) 그러니까 '떨어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말하지 않는다. 언시생 카페인 <아랑> 을 보면 서류, 필기(논술, 작문, 상식 등등), 면접 전형등에서 떨어진 결과를 두고 "내가 무언가 부족해서"라며 자책하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그 분위기에 맞춰서 어떤이는 "떨어진 사람들은 다 이유가 있다. 나 현직인데 나한테 자소서 한번 보내봐라"라며 아량을 베푸는 척 쇼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떨어진 이들이 정말 자소서를 형편없이 쓰고, 시험을 아주 못 본게 아니다.


KBS, 한겨레, 경향 같은 경우에는 서류전형에서 정량화된 스펙으로 거른다는 것이 거의 통념처럼 굳어졌다. 그렇다면 "그곳을 가려면 어느 시험 점수를 올려놔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떨어진 사람들은 학점/토익/한국어능력시험의 점수가 부족한 것이다. '무언가 부족해서' 떨어진게 맞는 상황. 하지만 그게 저널리스트로서의 자질이 없거나 '자소서'를 못 써서 떨어졌다고 보긴 힘들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자소서로만 뽑아도 문제가 생긴다. 지원자 중 절반 정도 떨어트리는데 "기준이 없다"는 힐난을 많이 듣는다. SBS, 조선일보, YTN같은 경우에 전형에서 자소서만 봤는데 불만이 속출했다. 그리고 내가 볼때도 "글을 잘 쓰는데 자소서를 못 쓸리가 있나"싶은 사람들이 많이 떨어졌다. 실제로 SBS 서류 탈락자 중에는 괜찮은 언론사로 간 사람들이 꽤 있다.

필기 시험 같은 경우, 한겨레는 지난 공채에 약 300명 중에 12명만 필기에서 뽑았다. 12명에 든 사람이 대단한것일뿐, 290명 정도의 지원자가 못난게 아니다. 그런데 떨어진 290명은 또 자책을 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떠올리면서 잠못 이룬다. 그리고 결론은 "열심히 글 쓰자" 로 마무리.


하지만 '이들이 그렇게 부족한가?' 싶다. YTN 초기에는 공채를 100명 가까이 했다고 들었다. 88올림픽 시즌에 방송사도 어마어마한 공채 러쉬였고... 심지어 그 당시에는 대학생도 많지 않았으니 더 입사가 편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이 지금 전부 부장급 이상으로서 언론사를 좌지우지 하고 있다. 그러니 지금의 떨어진 언시생들이 '시험'을 기가막히게 잘 본게 아닐뿐, '저널리스트로서의 자질'이 없어서 지금까지 입사를 못했으리라고는 생각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붙은 사람들과 붙지 않은 사람들의 글 실력 차이는 크지 않다고 본다. 실제로 소위 '메이저'에 입사를 하거나 최종까지 간 이들의 글 역시 대단하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다. 다만 깔끔하게 쓰는 편이었는데, 그게 현장에서도 긴장하지 않고 무난하고 꼼꼼하게 쓸 수 있던 비결이었던 것 같다. 굳이 차이를 말하자면 결국 이것도 시험이라서, 논술이든 작문이든 예전에 썼던 것을 '잘 복기해서'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게다가 상식도 중요할테니, 붙은 사람들은 암기 능력이 조금 탁월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상식은 왕도가 없다. 책 같은 것도 있지만 거기서 전부 나오는게 아니므로 그냥 잘 외우는 게 짱이다. 순전히 머리 빨이다.)


나는  '로또 추첨하듯이 사람 뽑아도 괜찮겠다'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주변을 보면 다들 스터디도 성실하게 하고, 글도 곧잘 쓴다. 대체 "왜 이런 사람들이 안 붙지" 싶은 경우도 꽤 많다. 다들 스펙도 좋다. 나같이 토익 점수에 스트레스 많이받고 암기에 취약한 사람에게는 고통스러운 환경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왜 떨어졌는지'도 모르는 채 자신의 부족함을 끊임없이 찾는다. 2년 동안 지켜본 결과 떨어지는데는 큰 이유가 없다. 특히 필기를 제외한 모든 전형에서는 그냥 '운'이 안 좋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해 몇몇 매체에서 '실무' 기간 2~3주를  두고 지원자들을 평가했고, 그 중에서 몇 명을 떨어트렸다. 그곳에서 떨어진 사람들이 나는 '떨어질만해서' 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운이 '드~~럽게' 없었던 거지. 솔직히 나는 오랜 기간 실무전형을 할 필요나 있나 싶다. 필기전형과 면접 전형을 통과했다면, 저널리스트로서의 자질을 열심히 닦아온 것은 최대로 검증된 게 아닌가. 다들 '성실한 기자'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좋은 기자'냐, '기레기'냐를 만드는 것은 언론사 조직의 문제지, 개인의 역량 문제가 아니다. 상향평준화 된 지원자들 개인을 굳이 그렇게 수차례 평가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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